윤석열 대통령 지시에 840명 규모 특수본 가동…검찰 수사 주도 피력 “과하다는 말 나올 정도로 쳐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국회 본청에서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비판하며 한 얘기다. 한동훈 장관은 다른 자리에서도, 수사권 회복을 시행령으로 하는 조치의 필요성을 언급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마약 수사’를 거론했다. 그리고 최근, 강남 학원가에서 '마약 음료'가 유통되는 사건이 터졌다. 윤석열 정부는 검찰의 마약 수사권 확대 및 회복 계기로 삼으려는 분위기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사건을 언급하며 ‘검찰과 경찰의 수사’를 명령했고, 이원석 검찰총장도 기다렸다는 듯 수사 협력을 지시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부산지검을 찾은 자리에서 “과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력한 단속이 필요하다. 검찰이 그 역할을 다 할 것”이라며 검찰의 마약 수사 주도를 시사했다. 과연 마약과의 전쟁으로 검찰의 수사권 회복 필요성 여론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는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마약 수사 기능 줄여
문재인 정부 당시 검찰은 검수완박법과 별개로 마약 수사 기능을 줄여갔다. 2018년 대검찰청 강력부를 반부패·강력부로 통합했고, 2020년에는 대검 마약과를 조직범죄과와 합쳤다. 2021년에는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마약범죄 범위를 ‘500만 원 이상 밀수’로 제한했다. 그리고 2022년 9월 시행된 검수완박법으로 검찰의 마약 수사 범위는 더욱 축소됐다. 검찰은 마약 대량 유통과 밀수 범죄만 직접 수사가 가능해졌다.
검찰 내에서 ‘검수완박 관련 마약 수사 제한’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던 지점이기도 하다. 마약 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검사는 “마약은 투약하는 최종 소비자가 소매를 하기도 하고, 유통을 하기도 하는 구조라서 밀수와 유통, 투약을 구분해서 보면 안 된다”며 “대량 유통과 밀수만 검찰에게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아예 ‘하지 말라’고 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마약 사건은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나 피고인의 수사 협조를 이끌어내는 게 중요해 기소권이 있는 검찰은 더 효율적으로 진술 협조를 받아낼 수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그는 “마약 수사는 단순 투약자나 밀수 조직 등 하나의 단서에서 시작해, 하나씩 다 수사 협조를 받아 윗선이나 아랫선으로 가면서 일망타진하는 게 목적”이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공급의 각 단계마다 어떻게 수사 협조를 끌어내는지가 관건이고 마약 조직을 수사하는 노하우는 검찰이 더 많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정부는 시행령 개정으로 검찰의 마약 수사가 가능하도록 손을 봤다. 곧바로 서울중앙지검은 재벌가 3세들이 연루된 마약 사건을 적발하는 등 마약 직접 수사를 확대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시행령을 비판할 때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왜 검찰에게 마약·깡패 수사를 못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저는 시행령으로 국민의 공익이 훨씬 증진이 됐다고 본다”며 끊임없이 맞섰다.
이런 상황에서 ‘강남 마약 음료 사건’이 터지자,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 ‘검찰’의 수사 참여를 지시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과 경찰은 마약의 유통·판매 조직을 뿌리 뽑고 범죄수익을 끝까지 추적해 환수하라”고 당부했다.
그러자 평소 “마약 범죄가 임계점을 넘었다”고 강조해 왔던 이원석 검찰총장이 곧바로 “서울중앙지검 등 6대 권역 마약수사 실무협의체를 즉시 가동해 유관기관과 대응을 협의하라”고 지시했다. 강남 마약 음료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담당하고 있는 사건이지만, 검찰도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지시라는 평이다.
#매머드급 특수본 통해 ‘검찰’ 존재감 과시?
4월 11일 검찰과 경찰이 주도하는 매머드급 마약범죄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출범했다. 검찰·경찰·관세청·교육부·식품의약품안전처·지방자치단체 등이 참여하는 특수본은 규모만 840명에 달한다. 신봉수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과 김갑식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형사국장이 공동 본부장을 맡는다.
검찰과 경찰이 따로 움직였던 수사를 손보는 게 특징이다. 마약범죄특별수사팀을 중심으로 각 지방검찰청 소재 강력부에서 마약 범죄를 전담했다. 경찰도 소지·투약 사범 검거에 나서는 방식이었다. 검찰은 주로 밀수 조직을 시작으로 투약자, 유통자를 찾는 방식이었다면, 경찰은 단순 소지·투약자를 시작으로 밀수 조직을 추적하는 방식이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검·경 수사권 조정과 검수완박을 거치면서 검찰의 마약 수사 범위는 더욱 유통 쪽으로 집중됐다.
이번 특수본 출범은 경찰과 검찰로 구분돼 이뤄진 수사를 ‘단일화’하는 체계를 마련하는 데 의미가 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확인된 소지·투약자 정보를 신속하게 경찰에 제공하고, 경찰도 수사 과정에서 획득한 유통 조직 정보를 검찰에 알리는 식이다.
검찰청 내 마약범죄 전담검사가 마약 사건 담당 경찰관과 협력해 사건 초기부터 압수수색 및 구속영장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방식도 도입한다. 6대 권역을 중심으로 운영되던 마약수사 실무협의체도 18개 지방검찰청과 17개 지방경찰청·전담경찰서로 확대할 방침이다.
수사 단계에서는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공급사범은 범죄단체죄(범단죄)를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범단죄가 적용되면 양형이 10년 이상으로 늘어나, 징역 3년 이하에만 가능한 집행유예 선고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검찰은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마약범죄의 양형 강화 안건 상정을 추진하는 한편, 마약류 거래를 통해 얻은 수익도 특별법을 적용해 환수 조치한다는 계획이다.
#"수사 환경도 개선되는 게 중요"
검찰 내에서는 특수본 출범에 대한 환영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면서도 ‘진화하는 마약 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시스템 개선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 마약통 검사는 “마약범죄 모니터링 시스템은 2016~2017년에 구축된 이후 4~5년 가동했지만 현재는 노후화된 상태”라며 “인터넷과 SNS(소셜미디어) 등에 올라오는 마약 광고 등을 자동으로 포착하기 위해 구축된 것이지만 현재는 제대로 활용하지도 않는다. SNS에서도 빠르게 진화하는 마약 유통사범들을 검거하기 위한 기술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마약 수사의 중요성’을 거듭 설명했다. 그는 “투약한 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마약 사건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해명하지만, 한 번 마약의 늪에 빠지면 인생이 돌이킬 수 없는 길로 갈 수 있는 위험한 범죄이고 국가가 나서서 지켜야 하는 것”이라며 “마약에 대한 경각심이 높다 보니 한동훈 장관도 그렇고 검찰 수사권 관련해서 얘기가 나올 때마다 마약이 거론되는 것 아니겠냐. 수사권 논란보다는 마약 범죄가 진화하는 것에 맞게 수사 환경도 개선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