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와 유럽 생산거점 확보 이어 북미서도 경쟁…실적 부진 모회사들도 동박 자회사들 성과 절실
#두 회사 모두 올해 안에 북미 부지 선정 추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올해 안으로 미국 공장 부지를 선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롯데케미칼이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를 완료하면서 지난 3월 출범했다. SK넥실리스도 올해 미국, 캐나다 내에 공장이 들어설 곳을 선정할 예정이다. 4월 18일부터 적용되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세부지침에 따르면, 동박은 배터리 부품으로 분류되지 않았다. 배터리 부품은 2023년 50% 이상, 2029년부터는 100%를 북미에서 생산해야 미국 전기차 생산공제 혜택 절반인 3750달러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국내 동박업체들은 북미(미국, 캐나다, 멕시코) 증설 계획을 그대로 추진하고 있다.
동박업계 한 관계자는 “동박을 조달하는 데 비용도 들고 소재 산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위험요소를 최소화하고 납기 경쟁력을 살리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설명했다. 동박업체의 주요 고객사인 배터리 업체들도 북미에서 동박을 바로 납품 받기를 원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 배터리 업체들은 북미로 향하고 있다. 2026년 기준 북미 지역에서 가동 예정인 공장은 LG에너지솔루션이 7개, SK온이 5개다. 중국 CATL은 포드, 테슬라와 미국에 합작공장을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일본 파나소닉도 북미에 세 번째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다.
동박업체들은 꾸준히 생산거점을 늘리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말레이시아다. 말레이시아에는 일진머티리얼즈가 롯데에 인수되기 전인 2017년 말레이시아에 진출했다. 지난해 말 기준 연간 생산능력은 4만 톤(t)이다. 올해 하반기에는 2만 5000t의 생산능력을 갖춘 5~6공장을 가동한다. 내년엔 7~8공장도 가동해 총 9만t까지 생산능력을 늘린다. SK넥실리스는 올해 하반기 5만t의 생산능력을 갖춘 말레이시아 공장을 처음 가동한다. 말레이시아는 전기료가 국내보다 50% 이상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박은 전기요금이 원가의 30% 정도를 차지한다.
유럽에서는 SK넥실리스가 폴란드,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가 스페인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SK넥실리스는 폴란드에 5만t 규모의 공장을 내년 상반기까지 건설한다. 2025년에는 해당 공장 생산능력을 10만t으로 늘릴 예정이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스페인에 2만 5000t 공장을 올해 착공할 예정이다. 2025년까지 5만t으로 증설할 계획이다.
올해 동박 생산능력은 SK넥실리스가 총 10만 2000t,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가 8만 5000t이다. SK넥실리스는 2026년까지 26만t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2027년까지 23만t의 생산능력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공장 증설에 들어간 두 회사의 자금도 상당하다. SK넥실리스는 말레이시아 공장 건설에 6500억 원을 투입했다. 폴란드에는 2024년까지 90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의 말레이시아 투자 규모는 6000억 원이며, 유럽 투자 규모는 5000억 원이다.
#중국 업체 영향 주목…모회사는 동박 자회사 성과 필요
동박은 리튬이온 배터리에 들어가는 얇은 구리막이다. 전기차 배터리 4대 소재 중 하나인 음극재를 감싸 전류를 흐를 수 있게 한다. 동박 원재료인 구리는 IRA 법안에서 규정하는 핵심광물에 속하지 않는다. 즉 동박은 핵심 광물이 아닌 광물로 만든 구성소재라 특별한 제약이 없다. 중국 동박업체들은 주로 중국산 구리를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이유로 보조금을 받으려는 국내외 배터리 기업들이 중국산 동박을 아예 배제하지 않으리란 전망도 나온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글로벌 동박 시장 점유율은 SK넥실리스(22%), 중국 왓슨(19%), 대만 창춘(19%),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13%, 옛 일진머티리얼즈) 순이었다. 최근 중국 동박업체들도 생산능력을 확장하는 추세다. 중국업체들의 동박 생산능력은 2021년 36만 3000t에서 지난해 말 63만 2000t으로 74%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2차전지 업계 관계자는 “동박은 아직 ‘그레이존’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명확히 분류되지 않은 상태로 향후 구체화될 것 같다. IRA 법안에 구리가 핵심광물에 안 들어간 것은 맞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항은 아직 명확하지 않아 아무데서나 만들어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등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중국 동박은 주로 내수용이라 해외에 적극 진출하려 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단 국내 업체들은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늘리기 위해, 생산능력 확장과 더불어 기술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SK넥실리스는 지난해 8월 기존 표준제품 대비 두 배 이상으로 잡아당기는 힘에도 견딜 수 있는 초고강도 동박 양산기술을 확보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전기자동차의 주행거리·출력·안정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차세대 동박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구리 가격도 두 회사의 수익성에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KOMIS)에 따르면 지난 3월 30일 기준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거래되는 구리 5월 선물가격은 t당 9038.5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7월 7000달러 대비 30% 올랐다. 원재료인 구리 가격이 오르면 가격을 올리지 않는 한 수익성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한편 모회사들 입장에서 동박 자회사들의 실적이 한층 중요해지는 분위기다. SK넥실리스의 모회사인 SKC는 연결 재무제표 기준 영업이익이 2021년 4015억 원에서 지난해 2203억 원으로 45% 감소했다. 화학 시황이 악화하며 회사 전체 매출의 62%를 차지하는 화학 분야 영업이익이 3322억 원에서 1409억 원으로 56% 하락한 탓이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모회사인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7626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이 1조 5356억 원이었던 2021년 비교해 실적이 급락했다. 롯데케미칼은 기초소재사업부 사업 비중이 전체 매출의 82%를 차지한다.
이런 가운데 동박 자회사들은 선전하고 있다. 지난해 SK넥실리스의 매출은 8101억 원, 영업이익은 912억 원이었다. 2021년 대비 매출은 22%, 영업이익은 14% 늘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의 지난해 매출은 2021년 대비 6% 오른 7294억 원, 영업이익은 2021년보다 21% 상승한 848억 원을 기록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실적은 롯데케미칼에 올해 2분기부터 반영된다.
이와 관련, SK넥실리스 관계자는 “적기에 배터리를 공급하기 위해 북미 지역에 공장 설립을 추진하는 단계로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된 부분은 없다”고 말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관계자는 “말레이시아, 스페인, 미국 등에 생산 거점을 두고 선점 효과를 누리려는 것이다. 롯데케미칼의 지원 등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답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