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동안 26명 확진, 숨은 감염자 더 많을 수도…일상 접촉 감염 가능성 낮지만 토착화 가능성 여전
4월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김성호 중대본 제2총괄조정관(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엠폭스는 밀접 접촉으로 인한 제한적 전파 등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감염병은 아니지만, 국내 전파를 조기에 차단하기 위해 감염이 의심되는 분들께서는 자발적으로 검사에 참여해 주시고 의료계에서는 조기 진단 의뢰 등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처럼 방역당국은 엠폭스가 밀접 접촉으로 인한 제한적 전파로 위험도는 그리 높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게다가 엠폭스에 확진되면 발열과 두통, 오한, 몸 또는 손에 수두와 유사한 수포성 발진이 생기지만 증상은 2∼4주일 정도 지속된 뒤 대부분 자연 회복한다.
시민들의 반응 역시 비슷하다. 엠폭스가 일부 제한된 이들 사이에서만 유행하고 있어 자신들과는 무관하다고 바라보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점이다. 실제 엠폭스가 먼저 유행한 해외 사례를 보면 유행 초기 위험군은 20∼40대 남성이지만 지역사회 전파가 이뤄진 뒤에는 점차 여성은 물론이고 임신부와 소아 환자 비율도 높아졌다. 문제는 임산부와 수유자, 소아 등은 기저질환자, 면역저하자 등과 함께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는 점이다. 고위험군이 엠폭스에 감염되면 드물게 출혈, 패혈증, 뇌염, 융합된 병변 등 중증으로 진행되기도 하며, 2차세균감염, 심한 위염, 설사, 탈수, 기관지폐렴 등의 합병증도 발생할 수 있다.
물론 현재 상황에서 위험군은 20∼40대 남성이다. 대다수의 환자가 이 나이대에서 발생하고 있다. 50대 이상의 남성은 천연두 백신을 맞은 세대라서 비교적 안전하다. 엠폭스가 천연두 백신과 교차 면역이 되기 때문이다. 2022년 5월 이후 유럽과 북남미를 중심으로 엠폭스가 유행했는데 해외 사례를 보면 남성 간 성접촉을 통해 엠폭스 환자 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4월 15일 기준 전 세계 엠폭스 환자의 96.4%가 남성이다. 국내에서도 성소수자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3.6%에 불과하지만 여성 확진자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엠폭스가 성접촉을 통해 전염된 사례가 많지만 그렇다고 성병은 아니다. 질병관리청은 엠폭스의 감염경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선 감염된 사람이나 동물의 체액, 피부·점막 병변(발진, 딱지 등)에 직접 접촉이 있고 감염된 사람이나 동물이 사용한 물건이나 천(의류, 침구 또는 수건) 및 표면에 접촉, 호흡기 분비물(코, 구강, 인두, 점막, 폐포에 있는 감염비말)에 접촉 등이 있다. 또한 태반을 통해 감염된 모체에서 태아로 수직감염도 존재한다.
이처럼 주로 유증상 확진자와의 직접접촉을 통해 감염되고 드물게 비말전파도 가능하다. 다만 비말전파는 장시간(3시간 이상) 밀폐된 공간에서 근접거리(1m 이내)에서 노출될 경우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다. 예를 들어 비행기 옆자리에 감염자가 있을지라도 공기 중 전염을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팔걸이 등을 공유하다 피부 접촉이 이뤄지면 감염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가장 흔한 감염 경로는 키스, 포옹, 성관계 등의 성접촉이다.
문제는 이런 특성으로 인해 깜깜이 전파가 이뤄지며 지역유행 규모를 키워가고 있다는 점이다. 낙인효과를 우려해 진단검사 및 신고를 꺼리는 숨은 감염자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터라 확인된 감염자보다 방역망에 포착되지 않은 감염자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게다가 잠복기가 최장 3주나 되고 초기 증상이 감기몸살과 비슷해 감기 정도로 여겨 감염 사실을 모른 채 지역사회에서 여러 명과 밀접 접촉하며 계속 유행 규모를 키워나갈 수도 있다. 엠폭스의 가장 큰 특징은 민감한 신체 부위에 생긴 피부 병변(발진이나 수포)인데 확진자가 충분히 감출 수 있다는 점도 유행을 확산시키는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다.
방역당국 역시 감염병 환자에 대한 낙인효과 예방과 개인정보보호 등을 위해 확진자의 성별과 나이 등 기초정보를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확진자와 유사집단의 고위험군이 조심할 수 있게 나이와 성별 등 기초 정보는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도 개진되고 있다. 최소한 익명검사는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방역당국은 익명검사의 경우 밀접접촉자 확인 등의 역학조사에 한계가 분명해 큰 의미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확진자 기초 정보 공개나 익명검사 등 보다 강력한 조치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까닭은 엠폭스의 지역유행 규모가 보이지 않게 확대돼 토착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외 사례를 보면 토착화 수준의 지역 유행이 이뤄지면 여성과 소아 등 고위험군에서도 확진자가 등장한다. 우선 남성 간 성접촉으로 감염된 양성애자 확진자가 이성 간 성접촉으로 감염을 전파할 수 있다. 또한 성접촉은 아닐지라도 다양한 직접접촉으로 감염될 수 있으며 오염된 의류, 침구 또는 수건 등을 통해서도 감염될 수 있다.
계절적인 요인도 감안해야 한다. 엠폭스 예방을 위해서는 긴팔 옷 등으로 피부 노출을 최소화해 타인과의 피부 직접 접촉을 줄여야 하는데 차츰 날씨가 더워지면서 반팔이나 민소매 등 노출이 많은 옷을 주로 입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행히 일상생활에서의 접촉 정도로 엠폭스에 감염될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증상 확진자와의 직접 접촉, 유증상 확진자가 사용한 물건 접촉 등으로 감염될 가능성은 분명 존재하지만 감염 확률은 그리 크지 않다. 현재 상황에선 성접촉 정도의 매우 밀접한 접촉이 이뤄졌을 때의 감염 확률 정도만 유의미한 상황이다.
이런 까닭에 엠폭스 확산 방지를 위해 질병관리청은 “위험노출력(성접촉 등)이 있고 의심증상이 있을 땐 콜센터로 문의해야 한다”며 “모르는 사람들과 성접촉, 피부접촉 등 밀접접촉에 각별히 주의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