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김연경 잔류에 김수지 합류…박정아·정대영 이탈한 도로공사 전력 약화 불가피
#'배구여제' 김연경의 향방
이번 FA 시장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김연경의 선택이었다. 앞서 시즌 중 현역 은퇴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던 김연경은 소속팀 흥국생명이 챔피언결정전을 거치고 준우승으로 시즌을 마무리하며 현역 잔류로 결론이 지어지는 듯했다. 이적과 잔류 사이에서 다시 한 번 선택을 해야 했다.
김연경의 언행 하나하나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만 35세지만 여전한 위력을 과시했다. 2022-2023시즌 국내 선수 득점 1위를 기록했고 수비에서도 존재감을 보였다. 흥국생명의 정규리그 우승,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에 큰 기여를 했다. 이적이 성사된다면 V리그 여자부 판도에 큰 변화가 따를 수 있었다.
김연경은 "우승 전력이 되는 팀으로 가고 싶다"며 힌트를 내비쳤다. 2022-2023시즌 정규리그 2위에 올랐던 현대건설 이적 가능성이 대두됐다. 실제 제의까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 선택은 원소속팀 흥국생명과 재계약이었다. 재계약 과정에서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의 간곡한 설득과 구단의 전력 보강에 대한 약속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연스레 김연경의 잔류와 동시에 흥국생명의 추후 움직임에도 눈길이 쏠렸다.
#대어급 선수들의 이동
그간 V리그에서는 굵직한 선수들의 이동이 많지 않았다. 대부분 원소속팀과 재계약으로 매듭이 지어졌다. 각 팀들은 10년 내외의 긴 기간 동안 의리를 지킨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에어컨리그에서는 다수의 대어급 자원들이 FA 자격을 얻었다. 2년 전 4위에 오른 2020 도쿄 올림픽에 나섰던 국가대표 멤버 12명 중 6명(김수지, 김연경, 김희진, 박정아, 염혜선, 오지영)이 시장에 나왔다. 모두 A급으로 분류되는 자원들이다.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한 한국도로공사는 FA 대상자만 5명이었다. 우승팀으로서 선수들의 높은 고과가 책정돼야 하나 샐러리캡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선수 이탈을 막기 어려웠다. 배유나, 문정원, 전새얀과 재계약을 맺었지만 핵심 자원인 박정아와 정대영이 각각 페퍼저축은행과 GS칼텍스로 떠났다. 이뿐 아니다. 김수지가 IBK기업은행에서 흥국생명으로, 황민경이 현대건설에서 IBK기업은행으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A급으로 분류되는 이들 외에 채선아(KGC인삼공사→페퍼저축은행)도 이적했다.
20명의 FA 대상자 중 5명만 이적을 했으나 그 영향으로 선수 이동이 이어졌다. 5명 중 3명이 1억 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A급이었기에 보상선수가 발생한 탓이다. 박정아, 김수지, 황민경을 영입한 구단은 이고은, 임혜림, 김주향을 각각 떠나보냈다.
#FA 손익계산서
비교적 활발했던 FA 시장에서 가장 큰 전력 보강 효과를 누린 팀은 페퍼저축은행으로 꼽힌다. 국가대표팀 주장이자 리그 내 가장 위력적인 공격수로 꼽히는 박정아를 손에 넣었다. 채선아를 데려오며 수비도 보강했다. 페퍼저축은행은 2021-2022시즌부터 리그에 합류, 7구단 체제를 완성시켰으나 두 시즌 연속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FA 시장을 거치며 '꼴지 탈출'을 위한 경쟁력을 갖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퍼저축은행의 다음 시즌을 낙관할 수만은 없다. 박정아의 보상선수로 한국도로공사가 주전 세터 이고은을 지목했기 때문이다. 이고은은 불과 1년 전 페퍼저축은행이 창단 첫 FA 영입으로 야심차게 데려 온 선수다. 이고은을 제외하면 팀 내 경험 많은 세터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단은 이고은의 전 소속팀이던 한국도로공사가 그를 선택할 가능성을 낮게 보고 보호선수 명단을 작성했으나 뚜껑을 연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박정아, 채선아 영입으로 레프트 보강은 확실하게 이뤘으나 주전 세터 공백을 메워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FA 두 명이 이탈한 한국도로공사는 전력 약화가 불가피하다. 팀의 중심 박정아와 정대영이 동시에 팀을 떠났다. 정대영은 보상선수 지명도 없다. 보상선수로 데려온 이고은을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평이 나올 정도다. 둘을 떠나보내며 챙긴 보상금은 다음 시즌 FA 시장에서 투자가 점쳐진다.
김연경을 보유한 흥국생명은 김수지 영입으로 높이를 더해 우승 전력에 한발 다가섰다. 지난 3년간 2회 준우승에 그친 아쉬움을 달랠 기회를 잡았다. 동갑내기 절친으로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춘 김연경, 김수지 콤비의 존재는 흥행면에서도 기대를 받고 있다. V리그 최대 흥행카드는 김연경이지만 김수지도 국가대표 활약 등으로 무시 못할 존재다.
반면 지난 두 시즌간 우승후보 1순위로 꼽히던 현대건설은 날개가 꺾였다. 막강한 전력으로 평가를 받았으나 2021-2022시즌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시즌 조기 종료, 2022-2023시즌에는 주축 선수 부상으로 우승을 이루지 못했다. 이번 FA 시장에서 살림꾼 황민경을 놓치며 차기 시즌 우승 도전은 미지수가 됐다.
#남아 있는 변수들
2023-2024시즌 V리그는 최초로 아시아쿼터 제도가 도입된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드래프트 방식으로 제도를 진행했다. 태국, 필리핀, 일본 등 아시아 각지에서 23명의 선수가 V리그 입단 의사를 밝혔고 7구단이 각각 선수를 선발했다.
지난 4월 21일 진행된 아시아쿼터 드래프트에서 1순위 행운을 얻은 팀은 IBK기업은행이다. 이들은 첫 번째 기회를 잡은 만큼 모든 팀이 눈독을 들였던 것으로 알려진 태국 국가대표 주전세터 폰푼 게드파르드를 선택했다. 1993년생으로 아시아쿼터 지명 선수 중 최고령 선수이자 태국, 일본, 폴란드, 루마니아 등 다양한 무대를 거치며 경험을 쌓았다. 다만 국가대표팀 활동으로 IBK기업은행 합류가 늦어져 호흡을 어떻게 맞추느냐가 관건이다.
폰푼의 뒤를 이어 인도네시아, 일본 등 그간 V리그에서 보기 힘들었던 국적의 선수들이 선발됐다. 각 팀은 FA 시장에서 생긴 공백을 메우는 등 비교적 저렴한 비용(최대 10만 달러)으로 전력을 보강할 수 있는 기회에 집중했다.
최초로 도입되는 아시아쿼터이기에 이 제도가 차기 시즌 리그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미지수다. 공격수 선발 일변도로 진행되던 기존 외국인선수 제도와 달리 아시아쿼터는 다양한 포지션에서 선수 선발이 이뤄졌기에 예측이 더욱 어렵다. 다가오는 5월 중순 터키에서 진행될 예정인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도 각 구단 전력을 요동치게 만들 요소 중 하나다. 많은 변화가 생긴 다음 시즌 V리그를 팬들은 벌써 기다리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