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점유율 확대·포트폴리오 강화 예상 속 협상은 잠정 중단…HD한국조선해양 “입장 차이 좁혀지면 재개”
지난 4월 27일 HD한국조선해양은 1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STX중공업 인수는 현재 중단된 상황”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말 사모펀드 운용사 파인트리파트너스는 STX중공업 지분 47.79%에 해당하는 1356만 3000주를 시장에 내놓았다. 지난해 12월 HD한국조선해양은 STX중공업 매각 예비입찰에 참여했다. 당시 한화도 STX중공업 예비입찰에 참여했지만 이후 HSD엔진을 인수하기로 선회하면서, 3월 HD한국조선해양은 단독으로 STX중공업 인수 본입찰에 참여했다.
HD한국조선해양과 STX중공업의 협상이 중단된 이유는 가격이다. 당초 매각 대금으로는 1000억 원 이상이 거론됐다. 지난 5월 2일 종가 기준 파인트리파트너스가 보유한 STX중공업 지분가치는 754억 원이다. 시장에서는 파인트리파트너스가 STX중공업 매각가를 낮추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STX중공업이 과거에 비해 한층 '건강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2021년 마이너스(-) 8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STX중공업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113억 원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부채비율도 파인트리파트너스가 지분을 인수한 2018년 말 268.55%에서 지난해 말 116.66%로 줄었다.
HD한국조선해양도 원칙적으로 인수 이후 시너지 효과가 분명하다면 지갑을 열겠다는 의지다. 지난 1월 정기선 HD현대 사장은 미국에서 열린 ‘CES 2023’에서 “우리는 예전 두산인프라코어 때도 그랬고, 자신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시너지가 있다”며 “그 시너지가 큰 회사는 그에 대해 페어밸류(Fair Value·적정가치)를 많이 쳐줄 수 있고 시너지가 작은 회사는 적게 쳐줄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최근 협상 중단은 시너지 효과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HD한국조선해양이 처한 상황이 급박한 것도 아니다. 최근 실적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1분기 HD한국조선해양은 매출 4조 8424억 원, 영업이익 585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분기 대비 매출은 23.9% 늘었고, 영업이익은 –3964억 원에서 흑자 전환했다. 수주도 계속되고 있다. 5월 2일 기준 HD한국조선해양은 총 76척(97억 9000만 달러)을 수주, 연간 수주 목표(157억 4000만 달러)의 62.2%를 달성했다.
특히 HD한국조선해양의 자회사인 HD현대중공업은 자체적으로 엔진기계사업부를 운용하고 있다. 엔진 제작사들은 대형엔진은 독일 만에너지솔루션(MAN-ES), 스위스 윈지디(WinGD)와 기술제휴 계약을 맺고 제작하는데, HD현대중공업의 대형엔진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기준 36%다. HD현대중공업 엔진사업부가 보유한 자체 브랜드 ‘힘센 엔진’은 발전기용 중형엔진이다. HD현대중공업은 중형엔진 시장에서는 글로벌 점유율 40%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이 인수에 성공하지 못해도 당장 타격을 입을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STX중공업 인수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HD한국조선해양이 쉽게 포기하기 힘든 부문이다. 우선 인수에 성공해 시장점유율을 확대한다면 가격 협상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조선업 호황인 상황에서는 엔진 시장점유율을 많이 확보해 놓으면 장점이 된다. 엔진을 판매할 때 가격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포트폴리오 강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대형 선박용 엔진을 넘어 중소형 선박용 엔진까지 포트폴리오를 확장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엔진 시장에서 STX중공업은 HD현대중공업과 HSD엔진에 이어 점유율 3위 기업이다.
STX중공업을 인수한다면 HD한국조선해양 내부적으로 엔진 생산라인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지난해 말 기준 HD현대중공업 엔진기계사업부의 생산시설 가동률은 101%를 기록했다. 지난해 HD현대중공업의 엔진 수주액은 2021년 대비 62% 증가한 33억 6300만 달러다. 반면 지난해 말 STX중공업의 생산시설 가동률은 24%에 불과하다. 최근 현대미포조선에 중형 탱커 수주가 계속되고 있는데, 중소형 선박용 엔진을 주로 제작하는 STX중공업에 일부 물량 생산을 넘기면 생산능력을 효율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장현 인하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선박과 엔진 수주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생산능력은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막바지에 이른 데 따라 기존 1강(HD한국조선해양) 2중(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체제에서 2강(HD한국조선해양·한화) 1중(삼성중공업) 체제로 개편되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이 STX중공업을 인수하면 경쟁사인 대우조선해양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대우조선해양은 STX중공업 매출 비중 16%를 차지했다. STX중공업이 HD한국조선해양에 인수되면 HD현대 계열사의 엔진 물량이 우선 배정될 가능성도 있다.
반면 시너지 효과 측면에서 HD한국조선해양을 주저하게 만드는 부문도 있다. 친환경 엔진을 개발하고 있는 STX중공업을 인수하면 HD한국조선해양 입장에선 친환경 연료를 쓰는 엔진 개발에 속도를 낼 수 있다. 하지만 불확실성도 존재한다. 조선업계 다른 관계자는 “현재 선박 발주를 넣는 기업마다 연료전지, 메탄올, 암모니아 등 각각 다른 연료를 쓰겠다고 한다. 차세대 연료 시장에서 명확하게 방향성이 설정돼 있지 않은 상황이라 향후 인수 시너지가 얼마나 있을지 지금으로선 예측이 불확실한 면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인수전에서 또 다른 협상 변수는 다른 원매자의 등장이지만 현실적으로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한화의 경우 HSD엔진 인수를 추진 중이다. 지난 2월 한화임팩트는 HSD엔진 주식 2734만 5628주(지분 32.77%)를 2269억 원을 주고 취득한다고 밝혔다. 조만간 HSD엔진 인수를 위한 본계약을 체결한 뒤 기업결합 승인 심사를 받는다는 계획이다. 삼성중공업은 엔진회사 인수에 관심이 없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도 삼성중공업이 굳이 엔진회사를 인수하지는 않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와 관련, HD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최근 엔진 수주가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인데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 시설을 보완해 가는 식으로 투자를 진행 중”이라며 “STX중공업 인수 관련 협상 기한은 따로 없다. 양사의 입장이 좁혀지면 향후 협상을 이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