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출 해결 없이 구제 어렵다는 지적…피해자 범위 놓고도 갑론을박 이어져
#피해자 구제 방안 놓고 갈등
2021~2022년 초까지의 전세가격은 상승세를 탔다. 당시 집값이 크게 오른 데다 임대차 3법 이후로 임대인들이 계약갱신청구권 행사를 감안해 4년치 상승분을 몰아서 보증금을 받는 경향 등이 영향을 미치며 전세가격이 덩달아 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의 매매·전세가격 동반 하락세인 현재 당시 맺은 전세 계약기간이 순차적으로 만료 시점이 도래하며 폭탄이 터지기 시작했다. 하반기에 피해의 정점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위원은 “전세가격이 떨어지는 역전세 이슈가 올해 내내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집값 상승기에 갭투자를 한 집주인들이 전세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는 경우가 꽤 많을 거라고 본다. 전세사기 이슈도 앞으로 더욱 본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우선매수권 부여와 LH(한국토지주택공사) 공공매입을 비롯한 지원 정책을 내놓고 있다. 문제는 세입자가 받은 기존 전세대출이다. 대규모 전세사기가 발생한 인천시 미추홀구의 경우 피해자들의 대부분 후순위 채권자다. 전세 보증금을 보전받지 못할 확률이 높은 피해자들은 기존 전세대출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채무를 끌어안은 상황에서는 우선매수권을 행사할 여력이 부족한 데다 LH 공공임대를 받아들여도 채무 상환과 월세 지출로 이중고를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우선 변제금조차 받지 못하는 피해자들은 전세대출 상환이 한층 막막한 상황이다. 최우선 변제금이란 소액 임차인의 경우(2023년 인천 기준 보증금 1억 4500만 원 이하) 선순위 채권자가 있더라도 우선적으로 변제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금액이다. 정부가 최근 변제기준과 변제액을 모두 높였지만 최근 2~3년 사이 전셋값이 급등한 데다 소액 임차인의 기준이 선순위 근저당권이 잡힌 일자를 기준으로 설정돼 지원 기준을 벗어나는 피해자가 상당하다.
미추홀구에서 세 번째로 숨진 피해자 역시 2017년 근저당권(2017년 인천 기준 보증금 8000만 원 이하)이 설정됐는데 보증금을 높여 재계약했다가 최우선 변제권을 잃은 사례다. 국토교통부와 인천시는 미추홀구 피해자 중 최우선 변제금을 받지 못하는 비율을 각각 30%, 70% 수준으로 각기 다르게 파악하고 있다. 현황 파악에도 괴리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전세대출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전세사기 피해자의 연체 정보를 삭제해주고 기존 전세 대출을 20년간 나눠서 갚게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상환유예와 분할상환이 아니라 아예 채무를 면제해주는 방식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태근 민변 변호사(세입자114 운영위원장)는 “지난해 서울회생법원에서 주식과 가상화폐 투자로 손실을 입은 사람들의 채무를 덜어줬다. 자기가 투자를 잘못한 사람들의 채무는 면제해줬으면서 전세사기 피해자들한테는 수십 년간 빚을 갚으라고 요구하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보증금 반환 채권 매입 여부도 치열한 쟁점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공공기관이 전세사기 피해자로부터 보증금 반환 채권을 할인된 가격에 사들이는 방안을 도입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 경우 피해자는 보증금을 일부 보전할 수 있고 공공기관은 경매에서 우선매수권을 행사해 주택을 낙찰받은 후 매각해 비용을 회수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보증금 반환 채권 매입과 관련해서는 선을 긋고 있다. 국가가 개인 간 사기 피해를 세금을 들여 구제하는 것은 타당치 않고 전세사기 전체 피해 규모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섣불리 결정할 수 없다는 논리다.
다만 경찰청이 전세 사기 일당에게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향후 보다 적극적인 구제책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다. 정나혜 법률사무소 결의 변호사는 “일반 사기죄와는 달리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하면 기소 전에 범죄수익의 몰수, 추징이 가능하다”면서 “국가는 범죄피해자 보호·지원 정책을 수립해야 하는 책무가 있다. 보증금 반환 채권 공공매입 방식을 무리라고만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근본적인 전세사기 방지 대책 마련 목소리
‘누구’를 구제할 것인가는 여전히 논쟁거리다. 국토부는 소위 심사 과정에서 피해자 인정 요건을 기존 6가지에서 4가지로 완화한 수정안을 제시했다. 그런데 여전히 동탄과 구리 등에서 벌어진 대규모 전세사기의 피해자들은 구제받기 어려울 전망이다.
정부는 ‘전세사기’와 이른바 깡통전세 등 ‘역전세난’을 구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도성을 가지고 전세보증금을 노린 사건들과 달리 선순위 근저당이 없는 데다 시세하락 등으로 인해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려워진 동탄이나 구리에서 발생한 사건들은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고’라는 것이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명예교수는 “손해를 봤다고 무조건 국가가 지원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매가 진행되면 바로 쫓겨나는 후순위 세입자랑 달리 선순위 세입자는 보증금을 돌려받을 때까지 버틸 수 있어 정부에서도 이를 감안하고 정책을 설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태근 변호사는 “‘무자본 갭투기’ 자체는 남의 돈으로 투기를 한 거고 돌려주지 못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리스크 전가 사기로 보는 게 맞다”며 “다만 평소에도 정상적으로 임대 사업을 하던 임대인이 집값이 떨어져 돈을 못 돌려주는 경우는 확실히 사기가 아니기 때문에 구제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규모 전세사기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문도 연세대 금융부동산학과 겸임교수는 “주택보증보험공사(HUG)가 전세보증보험을 계약금의 50% 수준으로 내려야 한다”며 “그러면 은행이 쉽게 대출해주지 않을 거고 전세가격이 떨어지면 투기세력이 몰리거나 감당 못할 사고가 날 확률이 줄어든다. 사고가 날 경우 공인중개사가 연대 책임을 지게 하는 것도 필요한 조치”라고 말했다.
임대차 계약절차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HUG가 임대인의 세금 체납 정보, 주택 수, 근저당 여부, 과거 전세금 반환 이력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이를 모두 조회한 후에 계약이 가능하게끔 해야 한다”며 “전세보증금 에스크로 계좌를 만들어 HUG에 전세금의 30% 정도는 예치해 보관할 수 있게 안전장치를 마련하면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