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범사업 거쳐 제도화 추진 수순…의약계 “법제화한다면 안정성 확보 위해 선행돼야 할 것 많아”
의약업계에서는 비대면 진료 도입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다만 비대면 진료를 원하는 환자들이 있고, 사회적 상황을 고려해 결국 도입해야 한다는 데는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도 도입 이전에 선행돼야 할 것들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비대면 진료 의료 수가 상향 △재진부터 허용 △의원급 한정 △주기적 대면진료 실시 △환자의 약국 선택 자율성 등이다.
현행 비대면 진료 플랫폼이 비급여 처방약을 손쉽게 처방받을 수 있는 도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약 배달로 인한 진료기록 유출, 의약품 변질 등에 대한 우려도 해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3월 발표한 ‘한시적 비대면 진료 현황’에 따르면 2020년 84만 명이었던 이용자는 지난해 1272만 명으로 15배 이상 늘었다. 비대면 진료가 처음 허용된 2020년 2월 24일 이후 2만 5697개 의료기관에서 총 1379만 명을 대상으로 3661만 건의 비대면 진료가 실시됐다. 이 중 코로나19 관련 질환을 대상으로 실시된 재택치료는 2925만 건이었다.
코로나19 재택치료 건수를 제외한 736만 건 중 재진이 600만 건으로 81.5%를 차지했고 초진이 136만 건(18.5%)이었다. 연령 기준으로는 만 60세 이상이 288만 건(39.2%), 만 20세 미만이 111만 2000건(15.1%)을 차지했고 60~69세가 127만 5000건(17.3%)이었다. 질환별로는 고혈압(15.8%), 급성기관지염(7.5%), 비합병증 당뇨(4.9%)의 순서로 비중이 컸다.
보건복지부는 의료법 개정을 통한 비대면 진료의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인다. 특히 비대면 진료를 이용한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자의 처방지속성이 증가했다며 비대면 진료가 고령층의 처방지속성 향상 등 건강 증진에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한시적 비대면 진료를 실시하면서 비대면 진료의 효과성과 안전성을 확인했고, 대형병원 쏠림 등 사전에 제기됐던 우려도 상당 부분 불식된 것으로 판단한다”며 “환자의 의료 선택권과 접근성, 의료인의 전문성이 존중되고, 환자와 의료인 모두 안심하고 안전하게 비대면 진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보완 장치를 마련, 제도화를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의약계는 비대면 진료에 대한 불안한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환자들의 만족도와 요구 등을 고려해 비대면 진료를 법제화한다면 안정성 확보를 위해 선행돼야 할 것들이 있다고 말한다. 김이연 대한의사협회(의협) 홍보이사 겸 대변인은 “배달 플랫폼으로 음식을 시켜먹는 것, 택시 플랫폼으로 택시를 부르는 것과 진료 플랫폼은 차원이 다르다”며 “진료 서비스는 서비스를 받은 후 상당 기간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문제기 때문에 비대면 진료가 질 낮은 약 자판기가 되지 않으려면 초진부터 허용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2022년 12월 발표한 ‘비대면 진료 필수 조건 연구’에서 “진료 형태 중 주기적 대면 진료에 대해서는 국내외 모두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며 “해외에서는 (주기적 대면 진료가) 제도적으로 규정돼 있다. 주기적 대면 진료의 실시를 규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대한약사회는 지난 4월 24일 입장문을 통해 “모든 비대면 진료 플랫폼은 환자가 약국을 선택할 때 별도의 조건 없이 모든 약국을 대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정부는 시범사업을 시행할 때 반드시 기준과 원칙을 세우고 이에 대한 감독과 처벌이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약 배달로 인한 진료기록 유출, 의약품 변질 등에 대한 우려도 해결해야 한다. 박정래 대한약사회 시도지부장협의회 회장은 “비대면 진료 허용으로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약의 유통 관리, 약물 오‧남용 문제 등이 우려된다”며 “약 배달화에 따른 환자들의 우려도 늘어날 것으로 보여 이 문제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 수가에 대한 논의도 선행과제다. 현재 비대면 진료 수가는 전화 상담 관리료 30%가 더해져 기존 외래 진료의 130%로 책정돼 있다. 복지부는 전화 상담료와 관련해 환자 본인의 부담을 늘리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의견이 분분해 합의에 이르기까지 진통이 예상된다.
지난 4월 24일 열린 국회 복지위에서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외국은 비대면 진료 재진료를 더 낮췄으며 심지어 같은 상병에 같은 성분의 약을 투약할 때는 처방전 리필을 활용해 약국에 맡긴다”며 “외국처럼 (수가를) 낮게 해야지, 수가를 올린다고 하면 누가 동의하겠냐”고 주장했다.
김이연 의협 대변인은 “(비대면 진료) 의료 수가를 올려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비대면 진료로 인한 리스크는 의료계가 부담해야 하는데 (수가 상향이) 선행되지 않으면 질 낮은 서비스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