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배임 혐의만 적시해 2333억 추징보전 청구…검찰 “기소할 땐 당연히 자본시장법 적용할 것”
일요신문 취재 결과, 서울남부지방법원은 권 대표 재산을 추징보전해 달라는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의 청구를 4월 21일 일부 인용했다. 추징보전액은 2333억 6109만 2749원이다.
추징보전은 피의자가 범죄로 얻은 것으로 의심되는 수익을 재판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임의로 처분하지 못하게 하는 조치다.
남부지법은 "피의자(권 대표)는 피의사실로 인하여 부패재산을 취득했다"며 "부패재산의 몰수 및 회복에 관한 특례법 제5조 제1항에 의하여 추징해야 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며, 추징재판을 집행할 수 없게 될 염려가 있거나 집행이 현저히 곤란하게 될 염려가 있다고 인정된다"고 밝혔다.
그런데 남부지검은 권 대표 재산 추징보전을 법원에 청구하면서 사기와 배임 혐의만 적시했다.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신현성 전 테라폼랩스 공동대표를 기소하기 전 재산 추징보전과 몰수보전 청구할 때와 대조된다. 당시 검찰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루나의 증권성은 테라·루나 폭락 사건의 핵심 쟁점으로 꼽히고 있다. 루나가 증권으로 인정된다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가 적용돼 관련자들 처벌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혐의 입증이 쉬워질 뿐 아니라 형량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서인지 검찰은 루나가 증권이라고 강조한다. 남부지검은 4월 25일 신 전 대표 등을 자본시장법상 사기적 부정거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면서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테라·루나 폭락 사태를 '테라 프로젝트' 금융사기 사건이라고 명명했다. 또한 보도자료 15쪽 가운데 4쪽을 루나가 증권이라는 근거 설명에 할애했다.
단성한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장은 5월 5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루나는 증권의 정의에 부합하는 구조로 설계, 광고됐다"며 "이에 대해 법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상은 녹록지 않다. 검찰은 루나의 증권성 입증에 애를 먹고 있다. 검찰은 신 전 대표에게 구속영장을 두 차례 청구했다. 하지만 모두 기각됐다. 재판부는 기각 이유를 설명하며 루나의 증권성 여부에 대해 "법리상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법원은 2월 16일 신 전 대표 재산에 대한 몰수보전 청구를 기각하면서 "루나는 금융투자상품(증권)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관련기사 [단독] 법원 "루나, 증권 아니다" 검찰의 신현성 재산 몰수보전 불발).
권 대표에게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남부지검 공보관은 5월 8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추징보전 결정을 확실하게 받아내기 위함이었다"며 "법원이 이미 루나의 증권성과 관련해 '법리상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향후 권 대표를 기소할 때는 당연히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은 권 대표의 재산 추적에도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부지법이 권 대표 재산 추징보전 청구에 대해 '인용'이 아닌 '일부 인용' 결정을 내린 것은 검찰이 가압류 재산 특정을 적게 한 탓이었다. 법원이 기각한 부분은 권 대표 명의의 국내 대다수 은행과 증권사 계좌에 대한 포괄적인 가압류 신청이었다. 법원은 권 대표 잔고가 확인된 우리은행과 미래에셋증권 계좌에 대해서만 가압류 신청을 받아들였다. 검찰은 법원의 일부 인용 결정에 반발해 4월 26일 항고장을 제출했다.
이외에 추징보전 명령으로 가압류된 권 대표 재산은 권 대표의 서울 성동구 성수동 자택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신축 오피스텔 분양권, 외제차와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계좌 등이다.
가압류된 자택은 권 대표가 2020년 10월 매입했다. 매입가는 42억 원이었다. 지분 90%는 권 대표, 나머지 10%는 권 대표 아내 이 아무개 씨 명의다. 권 대표 자택과 같은 평형 아파트는 2021년 7월 50억 원에 마지막으로 거래됐다.
가압류된 오피스텔은 서울 강남구 역세권에 2023년 12월 준공 예정인 고급 오피스텔이다. 100실 미만 규모라 분양권 전매 제한 규제에서도 자유로운 곳이다. 권 대표가 취득한 호실 분양권 가격은 18억여 원이다.
권 대표 재산 추적 현황에 대해 남부지검 공보관은 "수사 중인 사안이라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권 대표와 공범들의 배임 혐의로 크게 네 가지를 지적했다. △테라·루나 유통량 조절에 실패해 폭락 사태를 막지 못했다 △폭락 사태를 막기 위해 사용했다던 테라폼랩스 지원 재단 '루나파운데이션가드(LFG)' 소유 비트코인 8만 개 중 1만여 개(약 3800억 원 상당)를 테라폼랩스 관계사 계좌로 이체했다 △서류상 회사인 테라 버진아일랜드 법인 소유 루나를 최고재무책임자(CFO) 한창준 씨 계좌로 보내 현금화, 540억 원 상당 부동산 매매 자금을 마련했다 △테라 프로젝트와 무관한 '프로젝트 던(Dawn)' 운영비에 루나를 사용했다 등이다.
540억 원을 현금화한 CFO 한 씨는 권 씨 최측근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한 씨는 권 대표와 함께 해외 도피생활을 하다가 지난 3월 23일 몬테네그로 공항에서 체포됐다. 한 씨는 테라폼랩스 관계사였던 차이코퍼레이션을 설립하고 초대 대표를 맡았다. 신 전 대표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동문이기도 하다.
검찰은 권 대표의 사기 혐의로는 미러 프로토콜과 앵커 프로토콜 범행을 지목했다. 권 대표는 루나를 미러 프로토콜에 예치하면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효과를 볼 수 있고 앵커 프로토콜에 예치하면 연 19.56%에 달하는 고율의 이자를 지급한다고 공표했다. 하지만 알고리즘 자체에 하자가 있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이 권 대표 신병을 언제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재 권 대표는 한 씨와 함께 몬테네그로에 구금돼 있다. 권 대표는 위조 여권으로 두바이행 비행기에 오르려다 발각돼 공문서 위조 혐의로 몬테네그로에서 구속기소됐다. 권 대표에 대한 몬테네그로 재판은 5월 11일(현지시간)로 예정돼 있다.
권 대표가 몬테네그로 재판이 끝난 후 곧바로 국내로 인도될지도 알 수 없다. 권 대표가 미국에서도 기소됐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 역시 한국 정부와 마찬가지로 몬테네그로에 권 대표에 대한 송환 요청을 했다.
남경식 기자 ng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