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꼴찌 했지만 6연패 때 이미 경질 논의…‘이기는 야구’ 내세운 손혁 단장, 최원호 감독 선택
한화가 4월 26일부터 5월 2일까지 6연패에 빠졌을 당시 이런 발표가 났다면 충격이 덜했겠지만 최근 5승 1패를 기록하며 10위에서 9위로 상승세를 타던 시기라 타이밍이 애매했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한화 측은 발표 시기가 11일이었을 뿐 수베로 감독의 계약 해지 논의는 이미 6연패 때 진행됐었고 11일 최종 결정됐다는 입장이다.
수베로 감독 경질 관련 뒷이야기를 정리한다.
#5월 11일 삼성전 끝난 후 무슨 일이?
11일 대전 삼성전 승리로 3년 만에 위닝시리즈를 달성한 한화 선수들은 다음 날 있을 인천 SSG전 원정을 위해 라커룸에서 짐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구단 관계자가 수베로 감독과의 미팅이 있다고 공지했다. 선수들은 영문도 모른 채 감독실에서 사장, 단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수베로 감독을 기다렸다.
잠시 후 클럽하우스로 들어선 수베로 감독. 감정을 추스른 그는 애써 밝은 표정으로 선수들에게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인사를 전했다. A 선수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정말 깜짝 놀랐다. 선수들 모두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라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게 한화 선수들과 수베로 감독과의 마지막 인사였다. 선수단 버스가 인천으로 출발해야 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작별 인사를 나눌 여유가 없었다. 선수들은 수베로 감독과 악수와 포옹 등을 나누고 복잡 미묘한 감정을 추스른 채 선수단 버스에 올랐다.
한화 구단의 한 관계자는 수베로 감독과의 이별은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말한다.
“올 시즌 FA 선수들을 영입하며 팀 성적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4월 내내 10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가장 큰 책임은 선수들이지만 그 선수들을 이끄는 수장이 감독이다. 그리고 선수 기용은 감독의 고유 권한이지만 가끔은 수베로 감독이 너무 선수 육성에만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또 다른 구단 관계자는 이미 수베로 감독도 6연패 했을 때 구단으로부터 해임 관련된 사인을 받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단 측에서 그룹의 재가를 받는 동안 시간이 늦춰졌을 뿐 수베로 감독은 자신의 거취 관련해서 인지했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수베로 감독이 경질되면서 수베로 사단에 합류했던 호세 로사도 투수코치, 대럴 케네디 작전주루코치도 함께 팀을 떠났다.
#한화와 수베로와의 ‘동상이몽’
수베로 감독이 한화 사령탑을 맡는 동안의 성적을 살펴보면 106승 15무 198패 승률 0.349를 기록했다. 처참한 성적에도 팀을 이끌 수 있었던 건 수베로 감독이 처음 한화를 맡을 당시 내세웠던 ‘리빌딩’ 때문이었다.
2020년 10월 한화가 창단 첫 외국인 감독으로 수베로 감독을 전격 발표했을 당시 팀 사정은 어수선했다. 팀의 중심타자였던 김태균이 은퇴했고, 김회성, 송광민, 안영명, 양성우, 이용규, 최진행 등 베테랑 선수들이 팀을 떠났다. 이런 작업은 수베로 감독이 아닌 당시 정민철 전 단장과 프런트가 선수단 운영 변화를 위해 이끌었다. 수베로 감독은 2021시즌부터 젊은 선수들로 채워진 선수단을 이끌고 ‘리빌딩’을 내세우며 선수단 육성에 중점을 뒀지만 팬들이 2년 연속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한 수베로 감독의 지도력에 비난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2022시즌 종료 후 한화 구단은 전력강화 코디네이터로 한 시즌을 보낸 손혁을 신임 단장으로 선임했다. 당시 야구계에선 2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한 수베로 감독이 경질될 것이라는 예상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손혁 신임 단장은 수베로 감독을 교체하지 않고 2023시즌도 맡겼다. 대신 손혁 단장은 스프링캠프 때부터 매일 훈련장에 나와 선수들을 면밀히 체크했다. 다른 팀 단장들이 단기 출장 형식으로 캠프를 방문한 것과 달리 손혁 단장은 1차 미국, 2차 일본 전지훈련에 계속 동행했다.
올 시즌 한화가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외국인 투수와 타자의 부진이었다. 연봉 총액 100만 달러 계약을 통해 한화에 입단한 버치 스미스는 시즌 개막전이었던 4월 1일 등판해 어깨 통증을 호소하며 3이닝을 채 채우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이후 병원 검진에서 근육 미세 손상 소견을 받았고, 개막전 등판 이후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하지 못했다. 2차 병원 검진에서 상태가 호전됐다는 소견이 있었지만 선수가 자신의 부상 회복에 확신을 갖지 못했고, 더 이상 마운드에 오를 수 없었다. 한화는 새 외국인 투수로 리카르도 산체스를 영입했고, 5월 11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르며 4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쳤다.
외국인 투수보다 더 큰 문제는 홈런을 기대하고 영입한 브라이언 오그레디의 부진이었다. 오그레디는 시즌 개막 후 17경기서 타율 0.127리(63타수 8안타), 삼진 개수가 무려 31개였다. 이후 2군으로 내려갔지만 2군에서도 반전의 기회를 만들지 못하면서 타율 0.179(28타수 5안타) 1타점을 기록했음에도 11일 1군으로 콜업됐다.
버치 스미스와 브라이언 오그레디를 영입한 이는 손혁 단장이다. 아무리 스카우트 파트에서 추천을 했다고 해도 최종 결정은 단장이 한다.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외국인 투수와 타자한테 문제가 생기면서 한화는 시즌 초반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수베로 감독의 책임이 없는 게 아니다. 선수들 사이에서도 수베로 감독에 대한 불만이 존재했다. ‘언제까지 실험 야구만 할 것이냐’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해 안 되는 선수 기용, 정립되지 않은 투수 보직, 그리고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 관련된 지적들이 튀어나왔다.
수베로 감독이 부임한 2021년 한화는 49승 83패 12무로 최하위에 머물렀다. 이듬해는 46승 96패 2무로 성적이 더 좋지 않았다. 한화는 더 이상 리빌딩을 내세우지 않기로 했다. 비시즌 동안 FA(자유계약선수) 채은성을 6년 최대 90억 원에 영입했고, 투수 이태양과 내야수 오선진을 영입해 전력을 보강했다. 당연히 구단과 팬들은 지난 2년과는 다른 모습을 기대했지만 한화는 올 시즌에도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과연 최원호 감독은 분위기 쇄신에 성공할까
수베로 감독의 뒤를 이어 한화 사령탑에 오른 최원호 감독은 2020년 한용덕 감독이 14연패의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을 당시 감독대행을 맡아 114경기를 소화한 바 있다. 2022시즌 종료 후 수베로 감독의 경질설이 나돌았을 당시 가장 유력한 차기 감독 후보로 꼽혔던 인물이다.
최원호 당시 퓨처스 감독은 지난해 북부리그 우승을 이끈 후 구단과 3년 재계약을 맺어 화제를 모았다. 2군 감독이 3년 계약을 한 건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원호 감독은 이번에 1군 감독으로 또 3년 계약을 이끌어 냈다. 계약 조건이 3년 총액 14억 원(계약금 2억 원, 연봉 3억 원, 옵션 3억 원)이다. NC 다이노스 강인권 감독이 3년 총액 10억 원, KIA 타이거즈 김종국 감독이 3년 총액 10억 5000만 원, 삼성 라이온즈 박진만 감독이 3년 총액 12억 원에 계약한 것과 비교하면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부 야구인들은 손혁 단장과 최원호 감독이 사촌 동서지간이라는 사실에 색안경을 쓰지만 한화 내부에선 최원호 감독이 새로운 사령탑에 오른 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본다. 문제는 최 감독이 ‘이기는 야구’를 내세운 한화 구단의 기조에 얼마나 결과로 증명해낼 수 있을지의 여부다. 손 단장과 최 감독은 프런트와 현장 책임자로 한배를 탔다. 같이 순항할 수도 있고, 같이 침몰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최 감독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감독대행이 아닌 감독으로 최 감독이 치를 올 시즌 경기는 113경기가 남았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