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팅 논란’ 리쉬안하오 와이파이 차단하자 꼴찌로…반면 리쉬안하오 저격한 양딩신 1위 차지 ‘극적인 결과’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지난해 9월 개최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1년 연기된 바 있다. 중국바둑협회는 지난해 선발전을 열어 남자 6명, 여자 4명을 대표로 선발했었는데 그럼에도 다시 선발전을 개최한 것은 중국 국가체육총국의 요구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양딩신 1위, 리쉬안하오 꼴찌
이번 중국의 아시안게임 재선발전이 한국에서도 시선을 끈 것은 이른바 ‘치팅 바둑’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리쉬안하오 9단과 양딩신 9단이 드디어 이 무대에서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던 이 사건은 지난해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14회 춘란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8강전과 4강전에서 당시 중국랭킹 20위권 밖이었던 리쉬안하오가 양딩신 9단과 신진서 9단을 연파하고 결승에 진출했다. 그러자 양딩신은 리쉬안하오가 신진서를 이긴 날 소셜미디어(SNS)에 이런 글을 올린다.
“리쉬안하오, 나는 당신과 20번기를 제안한다. 그 대결은 화장실에 갈 수 없고, 시간제한도 없이 하루 한 판씩 두는 조건이다. 대국장은 모든 전파신호를 차단해야 한다. 그리고 대국을 끝낸 후 기보를 공개하여 만인의 평가를 받도록 하자.” 이어 그는 “만일 내가 당신을 누명 씌운 것으로 드러난다면 나는 기꺼이 은퇴하겠다. 감히 나와 겨룰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리쉬안하오의 AI(인공지능)를 이용한 치팅을 의심하는 내용이었다.
이 글은 중국은 물론 전 세계 바둑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양딩신은 결국 확증 없이 동료를 저격했다는 이유로 중국바둑협회로부터 6개월간의 대국 정지 처분을 받는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나 맞이한 재선발전은 중국바둑 팀의 전력을 강화한다는 목적이 있었지만, 리쉬안하오의 실력을 다시 한번 검증해 보겠다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1일부터 중국을 대표하는 기사 10명이 대국장에 와이파이 차단기를 설치하고 치른 재선발전에서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6개월 만에 징계에서 돌아온 양딩신이 8승 1패로 1위를 차지했고, 지난해 열렸던 선발전에서 전승으로 중국 국가대표팀에 승선했던 리쉬안하오는 3승 6패 최하위로 밀리면서 결국 아시안게임에 출전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결과가 나오자 중국의 팬들은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 결국 양딩신이 옳았다”, “양대협이 리쉬안하오의 가면을 벗겼다”며 리쉬안하오를 맹비난하고 나섰다. 리쉬안하오의 부정행위를 사실상 인정하는 분위기인 것이다. 이는 리쉬안하오가 춘란배 4강에서 신진서를 꺾었을 때 치팅 의혹을 제기했던 양딩신에게 잔칫상에 찬물을 끼얹는다며 맹비난했던 분위기와는 백팔십도 다른 모습이다.
#국내 바둑계에도 ‘AI 치팅방지’ 비상
이로써 중국은 지난해 선발된 인원 6명 중 판팅위, 퉈자시, 리쉬안하오, 구쯔하오 등 4명이 탈락하고, 재선발전 예선을 통해 올라온 리친청, 양카이원, 자오천위, 미위팅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중국 국가대표 위빈 총감독은 이번 결과에 대해 “지난해 성적이 좋았던 리쉬안하오 등이 탈락한 것은 유감이다. 하지만 재선발전을 통해 가장 우수한 기사들이 선발됐다. 작년 선발된 선수들에 비해 랭킹은 높지 않지만 젊은 기사들이 더 많아졌다. 또 리친청, 미위팅은 속기파 기사들이어서 아시안게임과 잘 맞는다. 그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1위로 선발전을 통과한 양딩신은 자신의 징계나 리쉬안하오에 대해 특별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재선발전 성적이 좋은 것은 뜻밖이었다. 아시안게임의 목표는 당연히 금메달이다. 우리는 중국의 최정상급이기에 (한국과) 5 대 5로 싸운다면 자신이 있다. 하지만 개인전은 선발전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는 소감을 남겼다.
그런데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리쉬안하오의 부진은 한국에도 숙제를 안길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5월 29일 곤지암리조트에서 개막하는 제28회 LG배 세계기왕전에 리쉬안하오가 중국 국가 시드를 받아 참가하기 때문이다. 주최 측 입장에서는 중국과 같이 대국장에 와이파이 차단기를 설치하는 등 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한국기원 관계자는 “리쉬안하오 9단의 급작스러운 부진은 우리도 인지하고 있는 상태다. 그래서 대국장 주변에 전파 차단기 설치를 검토했는데, 정보통신부에 확인한 결과 국내법상 불가능하다는 통지를 받았다. 따라서 기기 설치 대신 대회장 보안검색을 더욱 강화해 혹시 있을지 모르는 불미스러운 일을 미연에 차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한국은 아시안게임에 지난해 선발된 대표들이 그대로 출전한다. 남자는 신진서, 박정환, 변상일, 신민준, 김명훈, 이지현 9단이며 여자는 최정 9단, 오유진 9단, 김채영 7단, 김은지 5단이 출전한다. 국가당 2명이 출전할 수 있는 남자 개인전에는 신진서 9단이 랭킹 1위로 자동 출전하며, 나머지 한 자리는 박정환-변상일의 결승3번기로 결정된다.
목진석 한국대표팀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중국의 경우 지난해 선발자보다 랭킹은 낮지만 최근 상승세의 기사들로 채워진 것 같다. 제한시간 1시간인 아시안게임 규정에 맞게 미위팅, 리친청 등 속기에 강한 선수들이 선발된 것이 눈에 띈다”고 평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바둑 경기는 9월 24일부터 28일까지 개인전을 먼저 치른 뒤 9월 29일~10월 3일 남녀 단체전이 이어진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