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로 실험한 유럽 와인대회 수상 스티커 충격적 결과

벨기에 소비자 잡지, 3500원짜리에 가짜 라벨 붙이고 고품질 데이터 제출…극찬과 함께 금메달 받아

[일요신문] 보통 와인을 잘 모르는 보통사람들은 마트에서 와인을 고를 때 무엇을 가장 눈여겨 볼까.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일반 사람들이 가장 신경쓰는 것은 와인병에 붙어있는 와인대회 수상 스티커다. 만일 이런 스티커가 붙어 있을 경우, 이 와인의 판매량은 최대 15%까지 증가한다. 사정이 이러니 와이너리들이 와인 시음 대회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전혀 놀랄 일은 아니다.

와인대회 메달은 실제 와인의 품질을 반영하고 있을까. 이런 궁금증에서 출발한 한 가지 재미있는 실험이 최근 벨기에에서 진행돼서 화제가 됐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와인대회 메달은 실제 와인의 품질을 반영하고 있을까. 정말 이 메달을 믿어도 될까. 이런 궁금증에서 출발한 한 가지 재미있는 실험이 최근 벨기에에서 진행됐다. 벨기에 소비자잡지이자 TV 프로그램 ‘온네 파 데 피죤스’ 팀이 벨기에 최고의 소믈리에인 에릭 보쉬만의 도움을 받아 이 스티커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쳤다.

먼저 제작팀은 보쉬만의 도움을 받아 시음 대회에 참가할 ‘최악의’ 와인을 하나 골랐다. 최종 선택된 와인은 마트에서 판매하고 있는 2.50유로(약 3500원)짜리 레드 와인이었다. 이 와인은 3유로 이하의 와인 가운데 가장 저렴하면서 맛없는 와인이었다.

이 와인을 프리미엄 와인으로 위장하기 위해서 제작팀은 ‘샤또 콜롬비에’라는 가짜 이름을 짓고, 그럴듯한 라벨까지 만들어서 부착했다. 심지어 이 와인에 대한 스토리도 거짓으로 꾸며냈다. 요컨대 벨기에 왈로니아 지역인 꼬뜨 드 상브르 뫼즈에서 재배되는 포도 품종을 블렌딩해서 만들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쥘베르 에 가이야르’ 국제 와인대회 수상 스티커.

이 와인을 출품할 시음 대회로는 3개월마다 메달을 수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명성 높은 ‘쥘베르 에 가이야르’ 국제 와인대회를 선택했다. 대회 참가업체들은 50유로(약 7만 원)의 참가비와 함께 시음용 샘플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알코올 및 설탕 함량과 같은 데이터도 함께 제공해야 했다. 다만 마지막 조건은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주최 측이 따로 비용을 들여서 와인 제조업체가 제공한 데이터를 재확인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제작팀은 대회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다른 고품질 와인의 데이터를 제출했고, 예상했던 대로 아무도 그 데이터가 진짜인지 확인하지 않았다. 보쉬만은 또한 동료 소믈리에와 와인 애호가들에게 이 2.50유로짜리 와인이 얼마나 훌륭한지에 대해 계속해서 칭찬을 늘어놓았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동료 소믈리에들의 발언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행동이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놀랍게도 이 싸구려 와인은 가장 최근에 열린 대회에서 무려 금메달을 수상했다. 대회 심사위원들은 이 와인에 대해 ‘부드럽고, 세심하며(신선한 와인의 특징), 깨끗한 어린 향이 나면서 입안의 풍미가 가득한 와인이자, 복잡하고 매우 흥미로운 와인’이라고 극찬했다. 어처구니없게도 이 와인에 ‘탁월하다’는 평가를 내리면서 ‘올해의 금메달’을 수여한 것이다.

대회 주최 측은 또한 60유로(약 8만 5000원)를 내면 금색 스티커 1000개를 구입할 수 있고, 이 스티커를 와인병에 부착하면 판매량을 늘릴 수 있다고 친절하게 알려주기까지 했다.

최근 이 실험 결과를 공개한 제작팀은 소비자들에게 와인병에 붙어있는 금메달 스티커가 반드시 품질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라고 경고했다. 물론 일부 대회는 보다 더 전문적이긴 하지만, 이런 대회가 단순히 돈벌이용 행사일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소비자로서 보다 똑똑한 소비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