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습 발사 기만전술 통했지만 로켓 결함 서해 추락…서울시 경계경보 소동 벌어지자 정치권 책임 공방
북한 기만전술은 일부 적중했다. 예상하지 못한 시기에 군사정찰위성을 탑재한 추진체 ‘천리마 1형’을 전격 발사했다. ‘북한 군부 2인자’ 리병철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5월 30일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오는 6월 곧 발사하게 될 우리 군사정찰위성 1호기와 새로 시험할 예정인 다양한 정찰수단들은 미국과 그 추종무력들의 위험한 군사행동을 실시간으로 추적·감시하는 데 필수불가결할 것”이라고 했다.
당초 4월로 예정돼 있었던 북한 군사정찰위성 발사체 발사는 이유 불명으로 연기되다가 발사 시기가 특정됐다. 북한 당국은 5월 31일부터 6월 11일 사이에 우주발사체 발사 계획을 한국과 일본에 통보했다. 이후 리병철이 ‘6월 발사’를 공언했고, 발사 시기는 6월 초가 될 것으로 보였다. 발사시기에 대한 기만전술이었다.
북한은 반 박자 빠르게 천리마 1형을 발사했다. 5월 31일 오전 6시 29분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발사장에서 천리마 1형이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동창리 발사장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전용버스로 알려진 연두색 차량이 포착돼 김정은이 참관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천리마 1형 발사는 실패했다. 로켓 자체에 결함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는 5월 31일 “우리 군은 오전 6시 29분 경 북한 평안북도 동창리 일대에서 남쪽 방향으로 발사된 ‘북 주장 우주발사체’ 1발을 포착했다”면서 “발사체는 백령도 서쪽 먼 바다 상공을 통과해 어청도 서쪽 200km 해상에 비정상적 비행으로 낙하했다”고 브리핑했다
북한은 이례적으로 추진체 발사 실패 사실을 빠르게 인정했다. 5월 31일 조선중앙통신은 ‘군사정찰위성 발사 시 사고 발생’이란 제목 기사를 게재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천리마 1형은 정상 비행하던 중 1계단(단계) 분리 후 2계단 발동기 시동 비정상으로 추진력을 상실하면서 조선 서해에 추락했다”고 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북한 국가우주개발국 설명을 인용해 “천리마 1형에 도입된 신형 발동기 체계 믿음과 안정성이 떨어지고 사용된 연료 특성이 불안정한 데 사고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고 해당 과학자·기술자·전문가들이 구체적인 원인 해명에 착수한다”면서 “발사 과정에서 발견된 문제점들을 보완한 뒤 여러 가지 시험을 거쳐 가급적으로 빠른 기간 내에 2차 발사를 단행할 것”이라고 했다.
국정원은 천리마 1형 발사 실패 원인을 ‘무리한 경로 변경’으로 꼽았다. 국정원은 5월 31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비공개로 열린 현안보고에서 “무리한 경로변경으로 기술적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국회 정보위원회 국민의힘 간사 유상범 의원은 국정원 보고 내용을 브리핑했다.
유 의원에 따르면 국정원은 “과거 1·2단체 비행경로가 일직선이었지만, 이번 발사는 서쪽으로 치우친 경로를 설정하면서 횡기동을 통해 동쪽으로 무리한 경로변경을 하다가 기술적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국정원은 “북한이 누리호 발사 성공에 자극받아 통상 20일이 소요되는 준비과정을 수일로 단축하며 새로운 동창리 발사장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발사를 조급하게 감행한 것도 (실패의) 한 원인이 됐다”고 했다.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북한 입장에서 이번 발사 실패는 꽤 큰 실책으로 여겨질 수 있다”면서 “통상적으로 미사일 시험발사를 하던 동쪽이 아닌 서쪽 루트로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했는데, 실패한 1차 추진체가 한국 수거 가능 범위에 떨어졌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2차 추진체 역시 태평양에 추락했는데, 이 역시 미국 수거 가능 범위”라면서 “1·2차 추진체 수거가 완료되면 북한의 현재 기술 수준을 보다 심도 있게 파악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동쪽으로 추진체를 발사할 경우 미국과 일본을 향한 도발 수위가 높아지기 때문에 부담이 있었을 것이고, 서쪽으로 추진체를 발사할 경우 중국과 한국 영역 공해에 1차 추진체가 분리돼야 하는 정밀함이 요구된다”면서 “그 과정에서 2차 추진 경로가 1차 추진 경로에서 방향을 틀어야 하는데, 여기서 기술적 결함이 발생된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애덤 호지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북한 천리마 1형 발사를 유엔 결의 위반으로 규정했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제1부부장은 6월 1일 조선중앙통신 담화문을 통해 “북한 자위권에 속하는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두고 미국이 체질적이 반공화국(반북)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면서 “북한 위성발사가 규탄받아야 한다면 미국 등 이미 수천 개 위성을 쏘아올린 나라들이 모두 규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김여정은 “군사정찰위성은 머지않아 우주 궤도에 정확히 진입해 임무 수행에 착수하게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6월 2일 한국 정부는 세계 최초로 북한 해킹조직 ‘김수키’를 대북 독자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김수키는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조직으로 각종 해킹 사건에 배후로 지목된 바 있다. 외교부는 “김수키가 외교·안보·국방 분야와 개인 기관으로부터 첩보를 수집해 북한 정권에 제공해왔고, 전세계를 대상으로 무기 개발 및 인공위성 우주 관련 첨단기술을 절취해 북한 위성개발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왔다”고 했다.
북한 군사정찰위성 발사 실패와 관련해 관계국들 움직임이 분주한 가운데, 국내에선 서울시가 경계경보를 오발령해 도마에 올랐다.
서울시는 5월 31일 오전 6시 41분 위급 재난문자를 통해 “6시 32분 서울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국민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주시길 바란다”고 알렸다. 문자가 발송된 지 23분 후인 오전 7시 3분 행정안전부는 또 다른 메시지를 통해 “서울특별시에서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 사항임을 알려드림”이라면서 경계경보를 물렀다. 이른 새벽부터 큰 소리로 울리는 재난문자 알림음에 서울시민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5월 31일 브리핑을 통해 “많은 분에 혼란을 드려 죄송하다”면서도 “이번 긴급문자는 현장 실무자 과잉대응일 수는 있지만 오발령은 아니다. 안전에 타협이 있을 수 없다. 과잉이라 싶을 정도로 대응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북한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강하게 규탄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북한이 유엔 제재를 위반한 것이 명백한 데다 계속해서 도발을 감행해왔기 때문에 엄중한 책임이 수반될 수 있는 국제적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대북 압박 수위를 높였다.
더불어민주당도 북한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대한 규탄 목소리를 냈다. 다만 경계경보 오발령과 관련해 대정부 공세 수위도 높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5월 31일 북한 군사정찰위성 발사와 관련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백해무익한 행동을 강하게 규탄한다”고 했다.
6월 2일 이 대표는 ‘경계경보 오발령’ 논란과 관련해 “무정부보다 못한 무능정부라는 오명은 윤석열 정부 몫이 되긴 하겠지만, 생명과 안전은 우리 국민 모두의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 불안과 불신을 초래한 이번 사태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즉각적으로 물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