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에서 대대적으로 상표권 사용료 수취…HD현대(주) “브랜드 통합 따른 유·무형 이익 제공”
지난 1분기 HD현대(주)가 계열사를 상대로 올린 매출(이하 배당금 수익 제외)은 267억 원으로 전년 17억 원에서 1436%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계열사들이 지난해부터 HD현대(주) 소유의 사옥 판교GRC(글로벌R&D센터)에 입주하고 낸 임대료가 158억 원 수준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상표권료 수익이 늘어난 점도 내부거래액 증가의 요인으로 보인다. HD현대(주)는 지난해 포워드 마크의 권리를 독점한 후 계열사에서 대대적으로 상표권 사용료를 수취하고 있다. 기존 CI의 권리는 HD현대그룹(옛 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 6곳이 나눠 가졌지만 새 포워드 마크가 도입되면서 이를 독점한 HD현대(주)의 상표권 사용료 매출이 가파르게 증가했다.
실제 HD현대(주)가 예상한 HD현대오일뱅크, HD현대중공업,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HD현대인프라코어, 5개 계열사를 대상으로 수취하는 올해 상표권 사용료는 255억 원이다. 이는 지난해 HD현대(주)가 거둬들인 상표권 사용료 51억 원에서 5배 증가한 액수다. 여기에는 50억 원 미만의 거래액에 해당하는 기업들이 제외됐기 때문에 실제 HD현대(주)의 상표권료 수익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분위기는 지난 1분기에 이미 감지된다. 이 기간 HD현대(주) 내부거래액은 부동산 임대 수익을 제외하면 109억 원이다. 이는 전년 17억 원보다 6.7배 많다. 이 액수에는 상표권 사용료 수익과 용역비가 포함됐다.
눈길을 끄는 곳은 HD현대(주)가 지난해 1분기 1억 원 미만의 매출을 기록했다가 올해 1분기 매출이 급증한 계열사다. 해당 계열사는 HD한국조선해양(37억 원), HD현대중공업(32억 원), HD현대일렉트릭(18억 원), HD현대건설기계(18억 원), HD현대인프라코어(29억 원), HD현대글로벌서비스(15억 원), HD현대로보틱스(8억 원), HD현대사이트솔루션(19억 원), HD현대쉘베이스오일(신규, 1억 원), HD현대케미칼(신규, 1억 원), HD현대코스모(신규, 1억 원), 11개사다. 현대미포조선(4억 원→11억 원), HD현대오일뱅크(7억 원→46억 원), 현대삼호중공업(5억 원→12억 원), HD현대에너지솔루션(1억 원→5억 원), 4개 계열사는 HD현대(주)가 지난해 1분기 상대 매출액 1억 원이 넘었지만 올해 1분기에는 매출이 급증한 곳들이다. 이에 힘입어 HD현대(주)의 예상 상표권료 수익은 앞서 밝힌 255억 원을 웃돌 것으로 파악된다.
일각에서는 HD현대(주)의 상표권 관련 수익이 급증하는 것을 두고 오너 일가 사익 편취 가능성을 의심하기도 한다. 더욱이 HD현대(주)는 포워드 마크를 독점하면서 기존 CI 권리를 가지고 있던 계열사에 별다른 보상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기존 CI 권리를 가지고 있던 계열사들은 HD현대(주)로부터 별다른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상표권료를 수취하는 회사'에서 '지불해야 하는 회사'로 처지가 뒤바뀌었다. 실제 HD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기존 CI 소유로 20억 원의 CI 사용료를 계열사에서 수취했는데, 포워드 마크가 적용되면서 CI 사용료 수취는 없어지고 오히려 CI 사용료로 올해부터 133억 원을 HD현대(주)에 지불해야 할 신세가 됐다. HD현대중공업도 같은 이유로 지난해 25억 원을 수취했지만 올해부터 50억 원을 지불할 예정이다.
문제는 이들 5개 계열사 가운데 4개 회사(HD현대일렉트릭, HD현대건설기계, HD한국조선해양, HD현대중공업)가 상장사라는 점이다. 이들 주주들이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공교롭게도 이들 계열사 가운데 오너 일가가 1% 이상 지분을 가지고 있는 회사는 없다. 반면 HD현대의 최대주주는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으로 지분 26.60%다. 그의 아들 정기선 HD현대(주) 사장도 5.26%로 적잖은 지분을 갖고 있어 오너 일가 사익편취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은 모습이다.
HD현대그룹에서 사명에 ‘HD현대’가 포함된 계열사는 지난해 말 1곳에서 올해 1분기 22곳으로 급증했다. HD현대그룹 계열사가 31개(지주사 포함)인 점을 감안하면 70.9%의 계열사가 ‘HD현대’로 간판을 교체했다.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은 ‘HD현대’란 사명으로 교체하지는 않았지만 포워드 마크를 사용하고 있어 이를 포함할 경우 77.4%까지 오른다. 이처럼 대부분 계열사에 새로운 CI를 도입하면서 HD현대(주)의 상표권 관련 수익이 적절한지 검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HD현대(주)는 올해부터 2~3년간은 상표권 사용료 수취에 따른 실질적인 이익은 없다고 보고 있다. 실제 이번 1분기 HD현대(주)가 광고선전비로 지출한 비용은 158억 원으로 상표권 수익으로 추정되는 액수(109억 원)를 크게 웃돈다. 다만 이는 새로운 CI를 도입하면서 발생한 일시적 비용으로 보인다. 이 기간이 끝나면 다른 기업들의 사례를 비춰볼 때, 상표권 수익의 15~20% 수준으로 광고비를 지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LG의 경우 지난 1분기 880억 원의 상표권 사용 수익 가운데 164억 원을 광고선전비로 지출했다. 이는 상표권 사용 수익의 18.6% 수준이다. HD현대(주)의 올해 5개 계열사에서 수취하는 예상 상표권 수익 255억 원이 매년 비슷한 수준으로 발생한다고 보고 해당 비율을 적용하면 매년 약 46억 원이 홍보비로 쓰일 가능성이 있다. 매년 200억 원의 수익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재계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HD현대오일뱅크는 영업력이 좋아 딱히 HD현대그룹 소속으로 편입된다고 해서 영업력이 크게 좋아질 것 같지 않다”며 “HD현대오일뱅크 입장에서 해마다 돈을 받다가 오히려 100억 원 넘는 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으로 처지가 바뀌었는데 불만이 상당할 것이고 특히 피해가 의심되는 다른 (기존 CI 권리를 가지고 있던) 상장사를 중심으로 검증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HD현대그룹 관계자는 “HD현대(주)의 지난 1분기 매출이 급증한 것은 지난해 말부터 각 계열사가 판교GRC에 입주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상표권과 관련 “HD현대그룹 각 계열사를 하나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이들 회사는 유·무형의 이익을 볼 것으로 판단된다”며 “실제 HD현대그룹이 출범하고 나서 채용시장에서 인재들의 지원이 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HD현대그룹의 새로운 출범을 오너 일가의 사익 편취로 보는 시각은 안타깝다”며 “기존 CI 관련 권리를 보유하고 있던 회사들은 새로운 포워드 마크 도입으로 얻는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해 (별다른 보상 없이) 회사의 방침을 따른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