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이어 아시아나항공 해외 기업결합심사 불승인 위기…산은 책임론도 대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2021년부터 세계 경쟁 당국에 기업결합신고서를 제출해 왔다. 둘 이상의 기업이 하나로 합병되는 ‘기업결합’ 시에는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를 심사한다. 해외에서도 사업을 하려면 합병 시 다른 나라 정부의 승인도 받아야 한다. 다른 나라 회사 간 결합으로 자국 기업이나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튀르키예를 시작으로 14개국 중 11개국에서 기업결합을 승인받았다. 남은 국가는 유럽연합(EU), 미국, 일본이다.
그러나 EU와 미국이 두 기업 합병에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최근 중간심사보고서를 통해 “합병이 진행되면 한국과 독일·스페인·이탈리아·프랑스 간 4개 노선에서 승객 운송 서비스 경쟁이 위축되고, 유럽과 한국 사이 모든 화물 운송 서비스의 경쟁도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의 입장도 비슷해 보인다. 한국경제에 따르면 미국 법무부(DOJ)는 지난 22일 대한항공에 아시아나항공급 경쟁자가 없으면 합병 승인이 어렵다고 대한항공에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항공은 “미국 DOJ로부터 합병 승인이 어렵다는 내용을 접수받은 바 없고, 합병 불허 소송 여부 또한 전혀 결정된 바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EU와 미국의 현재 반응이 기업결합 최종 결과와 직결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오는 8월 내로 기업결합 승인을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한항공과 아시나아항공 합병이 무산된다면 불똥은 산은에 튈 수 있다. 산은은 이미 해외 기업결합심사에서 국내 기업 간 합병이 무산된 경험이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1월 현대중공업그룹 조선 부문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에 대해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 두 기업 결합이 LNG운반선 시장 지배력을 키워 경쟁을 저해한다는 이유에서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마저 해외 기업결합심사에서 좌절된다면 산은은 국제적인 불명예를 안을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대우조선해양과 아시아나항공이 국가기간산업에 해당하기 때문에 다른 기업보다 더욱 신중하게 접근했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산은은 국내 항공산업 정상화와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양사의 기업결합 승인을 위해 노력 중으로, 해외의 기업결합심사 승인 여부까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며 "두 사례는 별개의 건으로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물론 당시 산은은 공적자금을 회수해야 했지만 대우조선해양이나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기업이 마땅치 않았다. 특히 아시아나항공은 코로나19로 실적에도 큰 타격을 입고 있던 터라 이전 협상자인 HDC현대산업개발이 인수를 포기하기도 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당시 산은이 해외 결합심사까지 검토할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며 “아시아나항공에 수조 원을 쏟아부었기에 공적자금 회수가 더 중요했고,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수 있는 기업은 대한항공밖에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산은이 주관사로서 이들의 인수 과정을 더 세심히 살폈어야 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해외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하기에 더 잘 챙겼어야 한다. 산은은 (대한항공을 선택한 것이) 나름의 묘수였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들의 결합을 ‘조건부’로 승인하면서 삐끗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다른 나라들도 공정위의 기조를 따라가는 것이라고 본다. 산은이 공정위에 더 긴밀하게 협조를 요청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산은의 선택으로 합병에 참여했던 기업들만 피해를 떠안고 있다. 대한항공은 심사 기간이 길어지면서 법률 비용이 늘어나고 있다. 대한항공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변호사 자문 수수료 등이 포함된 지급수수료가 2020년 약 616억 원, 2021년 약 1120억 원, 2022년 약 2479억 원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금전적 손실보다 인수·합병 추진 과정에서 노조와 갈등이 상당했다.
일각에서는 산업은행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산은은 대우조선해양 매각 불발 당시 “EU 측의 불승인 결정에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 두 업체 간 기업결합은 어렵게 됐으나 정부와 관계기관은 조선산업 여건 개선을 최대한 활용해 국내 조선산업 경쟁력 제고와 대우조선 정상화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했을 뿐이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책임론을 묻는 말에는 답변을 거부했다.
문제는 향후 유사한 사례들이 더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는 자산 효율화를 이유로 공공기관의 자산 매각에 적극적이다. 강석훈 산은 회장 취임 후 산은의 기업 경영 컨설팅 기조도 바뀌었다. 부실기업 구조조정보다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 원자력, 전기차 등 유망 신산업에 집중적으로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그 결과 대우조선해양은 약 21년 만에 산은 품에서 벗어나 한화그룹에 새 둥지를 틀었다.
현재 산은이 자산 매각을 추진 중인 기업은 HMM, KDB생명, 한국GM, 케이조선 등이다. 산은의 기조 변화가 성급한 매각 협상대상자 선정과 인수 과정에서 부실한 협조가 도마 위에 오를 수도 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산은에는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기업들을 위탁하는 국책은행으로서 역할이 있다. 산업을 어떻게든 발전시키고 기업들을 회생시키는 매각 주관사 같은 역할이 있기에, 이에 대해서는 회장의 경영 철학이 개입되는 게 아니라고 본다”고 조언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