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 감사원 전면 감사 앞세워 위원 전원 사퇴 압박…야권, ‘선관위 길들이기’ 꼬집으며 감사원 국조로 대응
선관위는 설립 60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직원 자녀 특혜채용 의혹 등 각종 구설에 휩싸이면서다. 감사원 감사, 국민권익위원회 조사, 국회 국정조사 등 전방위적 압박을 받고 있다. 정가에서는 이번 선관위 사태가 내년 4월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뜨겁다.
선관위 전·현직 간부 ‘자녀 특혜채용 의혹’에 대해 확인에 나선 기관은 감사원, 국민권익위원회, 국회, 경찰 등이다. 앞서 감사원은 5월 31일 “선관위 대상 채용·승진 등 인력관리 전반에 걸쳐 적법성과 특혜 여부 등을 정밀 점검하겠다”며 직무감찰을 예고했다. 이에 대해 선관위는 헌법과 국가공무원법에 따른 독립기관이라 인사사무 감사를 받을 수 없다고 거부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부모 찬스’에 대한 국민 여론이 악화되자 선관위는 일주일 만인 6월 9일 노태악 선관위원장이 주재한 전원회의 끝에 “고위직 간부 자녀의 특혜채용 문제에 대해 국민적 의혹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조속히 해소하고자, 이 문제에 한해 감사원 감사를 받기로 결정했다”며 부분적 감사를 수용했다. 다만 감사원의 선관위에 대한 감사 범위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기로 했다.
감사원은 감사 절차에 들어가면서도 선관위의 부분 감사 수용 입장에 대해서는 “감사 범위는 감사원이 결정한다”고 밝혔다. 특혜채용 외 업무추진비 유용 등 추가 의혹도 들여다보겠다는 의미로 해석돼, 감사원과 선관위의 충돌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민권익위원회도 채용비리 실태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권익위와 경찰청, 인사처 인력을 동원한 총 33명의 채용비리 전담조사단을 만들어 지난 7년간의 선관위 채용·승진 기록을 전수조사하겠다는 방침이다. 선관위는 권익위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답했다.
국회는 6월 8일 여야가 선관위에 대한 국정조사를 합의했다. 대상은 자녀 특혜채용 의혹과 북한발 해킹 은폐 의혹 관련이다. 선관위 창립 이래 처음 이뤄지는 국정조사다. 당초 양당은 6월 13~14일 중 국조 요구서를 제출하기로 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국조 가동시기 등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경찰도 선관위 자녀 채용 의혹을 수사선상에 놓았다. 선관위 내부 특별감사위원회는 5월 31일 혐의가 있는 간부 4명을 자체 조사해 경찰에 수사의뢰했다. 고발장도 들어갔다.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6월 12일 시민단체 자유대한호국단으로부터 접수된 고발장 2건을 배당받아 수사에 착수했다. 자녀 채용 의혹이 불거진 전·현직 간부뿐 아니라, 노태악 위원장 등 선관위원 8명에 대해서도 감사원 감사를 거부한 혐의로 고발했다.
다만 경찰은 수사를 감사원 감사와 권익위 조사 이후 진행하기로 했다. 감사와 조사 결과에 따라 수사 범위가 늘어날 수 있는 만큼, 최종 결론이 지어진 뒤 수사에 착수하겠다는 의미다. 때문에 감사와 조사 진행 중에는 경찰의 수사는 잠정 중단된다.
민주당은 선관위를 향한 전방위적 압박이 내년 4월 22대 총선을 앞두고 정부여당이 ‘선관위 길들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은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을 통해 ‘언론장악’, 대법관 제청 거부권 행사 검토로 ‘사법부 압박’에 나섰다”며 “정부여당 입장에서는 내년 4월 총선에서 승리해야 진정한 정권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선관위를 자신들에 유리한 지형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러니 이번 특혜채용 의혹을 빌미로 노태악 선관위원장을 내쫓으려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부여당은 선관위를 향해 공세 고삐를 더욱 죄고 있는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은 6월 13일 주호영 전 원내대표를 비롯해 전임 국민의힘 원내대표단을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해 오찬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 참석한 한 의원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감사원 감사를 부분 수용한 선관위에 대해 “부정채용에 관련돼 문제가 많은데 선관위가 아직까지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국민의힘은 중앙선관위 과천청사를 두 차례 항의방문했고, 6월 5일 의원총회에서는 노태악 선관위원장 등 선관위원 9명 전원 사퇴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선관위가 감사원 부분 감사 수용 입장을 내놓은 것에 대해서도 전면 감사를 받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인사뿐 아니라 업무 전반에 대한 감사를 받으라는 취지다. 김기현 대표는 6월 9일 규탄대회에서 “선관위가 헌법재판소에 의뢰하겠다고 하는데 헌재는 이미 정치재판소로 전락한 지 오래된 곳”이라며 “헌재에 기대 가지고 자신들 정치적 생명을 연장해보겠다는 노태악 위원장과 선관위원들이야말로 가장 빨리 청산돼야 할 적폐”라고 비판했다.
과거 대선과 총선 등 여러 캠프에서 선거를 치러본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선관위는 유권해석을 통해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벽보나 책자, 현수막의 문구 하나까지도 관여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유권해석이라는 게 각 시도 선관위별로 위원 몇 명이 그때그때 판단한다”며 “정부여당이 선관위를 압박하고 길들이면 유리한 지형을 만들 수 있는 게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그럼에도 야권 입장에서도 선관위를 마냥 보호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자녀 특혜채용이라는 명백한 의혹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선관위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도 따갑다. 민주당이 서둘러 국정조사에 합의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으로 해석된다.
민주당에서는 선관위 문제와는 별개로 감사원의 행태를 지적하겠다는 전략이다. 민주당 또 다른 관계자는 “감사원은 독립적 헌법기관임에도 유병호 사무총장을 중심으로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을 지원하기 위해 야권 인사들을 탄압하는데 최전방 역할을 하고 있다. 헌법과 국가공무원법 사이에 충돌이 있음에도 선관위 감사에 가장 앞장선 것도 그러한 모습의 일환으로 보인다. 선관위의 문제도 밝혀내야 하지만 ‘정치 감사’에 앞장서는 감사원에 대한 국정조사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2022년 10월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에게 언론보도 해명 계획 등 주요 사안을 문자로 보고한 사실이 드러나 대통령실-감사원 유착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최근에는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 감사 결과 보고서 공개를 두고 직권남용 및 감사원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는 6월 9일 당 확대간부회의에서 “선관위에 문제가 있다면 여야 합의대로 국정조사를 실시하고, 부족하면 수사하면 된다”며 “감사원이 법에 맞지 않는 선관위 감사를 계속 주장하면 민주당은 감사원에 대한 국정조사를 추진할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독립성과 중립성을 버리고 ‘정치 감사’에 나선 감사원이 감사 대상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