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 불합리’ 첫 대의원회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전국 회장은 회계문제 지적한 지역 회장 고소
#첫 회의부터 '위법' 논란
경찰 직협은 지난해 여름부터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 반대' 행동에 앞장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저마다 휴가를 내고 각 지역 혹은 상경을 무릅쓴 채 릴레이 삭발과 삼보일배 및 피켓시위 등을 이어가며 '경찰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 수호를 기치로 연대해 주목 받았다.
'공무원직협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지난해 11월 기대와 응원 속에 전국 단위 직협이 설립됐지만, 현재 내부는 한탄과 한숨으로 가득하다. 임원과 구성원들의 공방전이 법정 다툼으로 이어졌고, 일부는 회계상의 문제를 제기하다 명예훼손 등 혐의로 피소돼 같은 경찰한테 수사를 받는 상황에 놓이기까지 했다.
지난 3월 28일 전국 직협이 개최한 정기 대의원회의는 효력을 정지해야 한다는 가처분 신청이 접수됐다. 설립총회를 제외하면 사실상 처음 진행한 대의원회의인데 6월 28일 청주지방법원에서 첫 심문기일이 진행됐다. 회비를 인상하는 등의 안건이 통과됐으나, 신청인은 의결정족수가 허위로 꾸며져 무효라고 주장한다.
신청인은 서강오 전남 무안경찰서 직협 회장이다. 그는 재적 대의원 212명 가운데 절반인 106명 이상이 참석했어야 하지만 96명만 안건 결의에 참여해 무효라고 주장했다. 회의에 출석한 인원도 102명으로 공지됐으나, 참석하지 않은 인원의 서명이 기재됐다는 의혹 등이 제기했다.
표면상으로는 서 회장 개인이 대의원회의 절차를 문제 삼는 듯 비치지만, 이면에는 전국 직협 운영 전반의 불합리성 등을 지적하는 경찰관들이 힘을 합친 행동으로 알려졌다. 현재 상황은 마치 수사가 필요하다는 듯 진행 중이다. 대의원회 당일 CC(폐쇄회로)TV와 차량 출입 기록 등의 증거보전 신청까지 이뤄졌기 때문이다.
CCTV 등 보전은 개인정보 등을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만 이번 가처분 신청을 지지하는 경찰관들은 별도의 방식으로 증거를 확보해 진상을 규명할 필요성도 내비친다. 실제 일부 경찰관들은 이를 입증할 녹취 파일 등을 이미 확보해 추가 대응을 준비 중이라고 전해졌다. 오는 7월 14일 두 번째 심문기일이 예정됐다.
서강오 무안서 직협 회장은 "경찰 집단에서 이런 상황이 전개된 데 대해 참담하고, 시민들이 어떻게 보실지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라면서 "단 법적 절차와 결과적 정의를 확보함에 있어 경찰 직협은 더욱 엄격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여러 사실관계를 명백히 확인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화와 타협은 어디 가고…
전국 직협은 지역 단위의 협의회가 연합한 형태로 운영된다. 지역마다 사정이 다른 만큼 의사결정 과정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 그런 탓인지 법정 다툼 이전부터 직협은 어지러운 상태였다고 한다. 법을 수호하는 경찰관들로 구성된 조직이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되레 법을 무기로 구성원에 압박을 가하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민관기 전국 직협 회장이 한 지역직협 회장을 고소한 일이 대표적이다. 피소된 지역직협 회장은 전국 직협의 불투명한 회비 사용 내역과 일방적인 회비 인상 추진을 꼬집으며 3월 16일 지역 회원들을 대상으로 전국 직협 탈퇴 찬반 투표를 부쳤다. 그 결과 업무방해와 명예훼손 등 혐의로 동료 경찰에 수사를 받는 처지에 놓였다.
피소된 지역직협 회장은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전국 직협의 운영 방식에 관해 나름의 소신을 개진했을 뿐인데 이 같은 상황에 놓이게 돼 대단히 유감"이라며 "법을 준수하고 집행해야 할 경찰관이 어떻게 고작 이런 문제로 법적 압박을 가해 동료를 피의자로 만들 수 있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조사 도중에 고소인 측은 게시글을 올려 취하를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면서 "불송치 결정이 나올 경우 무고한 동료를 고소했다는 법적 결론과 다름 없는 만큼, 민 회장에 책임을 묻는 형태로 저 역시 대응을 검토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해당 고소 건으로 '현장활력소' 등 경찰 내부망도 들끓었다. 한 경찰관은 "피소된 지역직협 회장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같은 경찰관끼리 더구나 직협 업무 문제로 처벌을 촉구하는 고소장을 제출한 것은 전국직협 회장이 권력을 남용해 우월적 지위를 내세워 지역직협을 겁박하는 행태"라는 글을 게재했다.
또 다른 경찰관도 내부망에 "전국 직협은 경찰 일을 하면서 시민들의 분쟁을 고소, 고발, 입건 또는 형사사건으로 접수해 해결해왔나"라며 "대화와 토론 및 투명한 자료 공개 등 무수한 해결 방식이 존재하는데, 경찰 내외부에서도 이를 결코 좋은 광경으로 보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복수 직협' 생기나…심상찮은 상황
전국 직협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임원들을 향한 불신의 목소리가 크다. 회비의 세부 집행내역 비공개를 특히 지적한다. 정의기억연대 등 시민단체의 부실회계 논란에 이어, 최근에는 정부의 노조 회계 시비로 수사까지 검토되는 현실에서 막상 경찰 단체인 전국 직협이 문제를 외면한다는 것이다.
전국 직협 소속의 한 경찰관은 "직협이 비록 노동조합은 아니지만 법적으로 공인된 단체인 데다, 법 집행 기관에 속한 수만 명의 경찰관이 돈을 내고 가입한 곳인데 회계내역을 두루뭉술하게 알리는 게 이치에 맞나"라며 "구체적인 내역 공개를 계속 요구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아 몹시 찝찝해하는 지역 단위 직협이 많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회비 미납 등을 이유로 10여 곳의 지역 단위 직협이 제명되는 일이 있었다. 그러자 전국 직협 내 윤리위원회를 둘러싼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윤리위원회는 제명과 징계 등에 관한 심의를 하는 기구인데 해당 절차 없이 제명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특히 윤리위는 감사와 유사한 기능도 수행하는데, 위원장을 전국 직협 회장이 겸직하고 있어 파장이 크다.
일각에서 새 단체 설립까지 고민할 만큼 전국 직협 상황은 심상치 않다. 대세론은 아니지만 전국 직협의 대안적 역할을 할 연대체를 구성하고, 나아가 복수직협 입법발의까지 거론하는 이들이 일부 있다고 한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임원에 이름만 올리고 실제로는 전국 직협을 떠난 인원도 몇몇 있다"며 "대폭발 5분 전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잇따른다"고 설명했다.
전국 직협은 경찰국 반대 때처럼 일선 경찰관들이 뜻을 합치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한때 논란이 된 주취자 방치 사태 등 민생치안과 직결한 사안에서도 현장을 고려한 대책 마련에 힘을 보탤 때가 있었다. 그러나 설립 당시 약 5만 명이었던 회원은 현재 3만 명 정도로 줄었다. 공인단체가 되고 오히려 대표성이 희미해진 셈이다.
일련의 상황에 대해 민관기 전국 직협 회장은 "대의원회의 의결정족수는 분명히 충족했고 가처분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수용할 방침"이라며 "윤리위원장을 제가 겸직하는 부분은 회장 취임 전에 제정된 정관에 따른 것으로, 저 역시 문제로 인식해 언제든지 개선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민 회장은 또 "동료를 고소한 데 대해서는 저 역시 유감"이라며 "다만 법적으로 공인단체가 된 이상 현실적인 운영 여건에 비춰 온전히 정으로만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법적 절차를 밟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의원회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회원들의 탈퇴를 종용하는 행보는 납득하기 어렵다"고도 부연했다.
'회계 불투명성'을 놓고는 "정관 자체가 결산서를 공개하도록 돼 있다"며 "세부내역 열람을 원하면 신청 이후 직접 찾아와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부 규정에 의거한 조치로서 아무런 하자가 없는데, 운영상의 현실은 고려하지 않은 채 마치 의혹이 있다는 듯한 일부의 문제 제기가 저로서도 몹시 답답한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