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관 출신 ‘왕차관’들 대통령과 직통하며 과제 수행…김영호 후보자 등 지명하며 보수 결집 의지 투영
#개각, 용산의 깃대 잡기
윤석열 대통령은 6월 29일 취임 1년여 만에 처음으로 개각을 단행했다. 신임 통일부 장관에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지명하고, 장관급인 국민권익위원장에는 고검장 출신인 김홍일 변호사를 임명했다. 당초 예상대로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장관은 통일부 한 자리만 교체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안정권에 접어들지 못한 상태에서 정치적 부담이 큰 인사청문회를 최소화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번 개각의 특징은 차관급 13명을 바꾸면서 절반 가까운 5명을 대통령실 비서관 출신으로 채웠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의 경우 신임 차관 2명 모두 대통령실 비서관 출신으로 보임했다. 차관급 인사 윤곽은 대체로 예상된 것이지만, 막상 명단이 나오고 보니 “윤 대통령은 한다면 하는구나”라는 목소리로 이어졌다. ‘장관 패싱’ ‘왕차관 전성시대’ ‘대통령 직할통치’ 등의 사전 공세에도 이를 정면 돌파한 것이다.
차관 인사에 대통령실 출신이 많이 들어간 것과 관련, 대외적 명분은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부처의 구체적 정책으로 실현시킨다는 것이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도 6월 29일 인사에 대한 언론 브리핑을 하면서 대통령실 비서관 출신 차관 인선 배경에 대해 “집권 2년 차를 맞아 개혁 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 가서 이끌어줬으면 좋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실 출신들의 차관 발탁은 윤 대통령의 뜻이 직접 투영된 것으로 본다. 윤 대통령이 ‘직전 정부의 과오가 도처에 널려있어 각 부처마다 바로잡고 뜯어고쳐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도, 국민들에게 소상히 알리지도 않고 국민의 권익을 되찾아줄 수정 정책도 나오지 않고 있다’는 강한 질타를 틈만 나면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개각이 발표된 날에도 대통령실 비서관 출신 차관 내정자들에게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고위 공무원으로서 약탈적인 이권 카르텔을 발견하면 과감하게 맞서 싸우라”는 지시를 내렸다.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이 이번 개각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길 것이란 얘기가 나왔지만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도 이번 개각의 핵심 키워드인 ‘나쁜 관행 깨기’에 적임이 아니라는 판단이 나온 때문으로 알려졌다. 교육부를 중심으로 한 중앙부처 국장들의 자리 돌리기 인사 악습이 언론 보도로 드러났는데, 이 책임에 국무조정실도 자유로울 수 없어 인사가 전면 보류됐다는 여권의 전언도 나온다.
용산의 의도대로 비서관 출신 차관들은 향후 각 부처에서 ‘왕차관’으로 통하며 윤 대통령의 국정개혁 드라이브를 부처에 접목하는 가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직접 전화기를 들고 업무지시를 하는 성향임을 감안하면 이들 비서관 출신 차관들은 향후 현안에 대해 대통령과 직접 대화를 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그럼 여러 국정과제 진행 속도가 종전보다 훨씬 빨라질 수 있다.
‘역도 여제’로 불렸던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신임 2차관은 공정과 상식이라는 윤 대통령 국정 기조에 맞는 스포츠맨 정신이 고려돼 발탁됐다. 곁눈질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온 데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면서도 학업에도 열중해 용인대 교수, 장미란 재단 등의 이력을 쌓았고 김대기 비서실장이 적극 추천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직진 아니면 하지 않을 것 같은 용산이지만, 이번 개각에서 잠시 멈춘 부분도 있다. 발표가 예상됐던 차기 방송통신위원장 인사는 밀린 것. 여권에서는 늦으면 8월 초까지 밀릴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아들의 학교폭력 등 여러 의혹에 휘말린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보가 내정된 상태는 그대로지만 숨고르기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반영됐다.
방통위는 현재 김효재 위원장 직무대행 체제인데 당분간은 이대로 가도 바쁜 현안을 처리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상황이라는 판단을 대통령실이 내린 것으로 보인다. 야권이 반대하고 있는 KBS 수신료 분리 징수 등 현안을 직무대행체제에서 끝낸 뒤 새 위원장을 지명, 야권 반발을 줄이려는 의도도 포착된다. 윤 대통령의 정치 전술이 과거와 달라진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국정성과로 총선 심판?
대통령실은 과거 사례를 보듯 내년 4월 총선이 현직 대통령의 중간 평가 성격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때문에 이번 개각이 목표하는 것처럼 구체성 있는 국정성과가 곧 총선 성적표라는 인식을 대통령실은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내년 총선은 대통령 중심의 여권 전체 동조화를 가져오는 기회로도 작용한다.
이런 연장선에서 용산은 이번 개각에서 차관으로 발탁된 비서관 상당수를 다용도로 쓸 것으로 전망된다. 국정성과를 내는 임무도 띄지만 차기 총선 출마 후보군으로도 이들 차관들이 거론되는 것. 박성훈 신임 해수부 차관은 부산, 임상준 신임 환경부 차관은 충남 아산, 김오진 신임 국토부 1차관은 대구 출마가 이미 거론돼왔다.
용산 대통령실에 근무하던 ‘젊은피’들이 잇따라 사표를 내고 내년 총선 출마 준비에 나서는 행보도 국정 성과 직접 심판론과 연결돼있다. 홍보수석실 산하 뉴미디어비서관실 이동석 행정관이 6월 2일 사직하면서 출마를 위한 사표 제출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이 행정관은 언론인 출신으로 지난 대선 때 윤석열 대통령 후보 캠프에 합류했고 지난해 5월부터 대통령실에서 일해 왔다. 그는 고향인 충북 충주 출마를 준비 중이다.
정무수석실 이승환 행정관도 서울 중랑을 출마를 염두에 두고 6월말 사직서를 냈다. 이 행정관은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정병국 전 의원 보좌관 출신이다. 이 행정관이 지역구로 정한 중량을은 박홍근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지역구로 여당에 ‘험지’로 분류되는 곳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손자’ 정무수석실의 김인규 행정관도 조만간 대통령실을 떠나 출마를 준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출마지역은 김 전 대통령이 7선을 지낸 서구가 포함된 부산 서·동이 유력하다. 김 행정관은 권영세 의원의 비서관으로 근무하다가, 대선 캠프가 꾸려지면서 부대변인으로 발탁됐다.
이들뿐만 아니다. 시민사회수석실 등 다른 수석실에서도 총선 출마 준비를 위해 퇴직 시점을 고심하는 행정관들이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추석 전후가 되면 대통령실의 실무진들이 대거 출마를 위해 자리를 정리할 것이라는 전언이다. 역대 정부 초기 대통령실 근무자들 대다수가 그러했듯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근무라는 이력이 당내 경선은 물론, 본선에서도 큰 이력으로 작용하기에 대통령실 출신의 총선 도전은 꽤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행보를 보면 개인 결심도 있지만 용산 대통령실 입장도 상당 부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철학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 국회에 입성, 윤 정부의 철학을 실현하는 입법 활동을 해주는 것만큼 든든한 것이 없기 때문. 또한 윤 대통령은 패기를 많이 강조하는데 용산 출신 ‘젊은피’들이 도전에 나서면 여권 전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작용도 기대할 수 있다.
용산 대통령실이 밀고 있는 ‘성과’ ‘카르텔 깨기’ ‘젊은피의 패기’ 등 키워드가 먹히면 내년 총선에서 좋은 성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낙관론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사석에서 내년 총선 목표로 170석을 언급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이 수치 역시 이런 인식이 공유된 것으로 판단된다.
#보수 결집 효과도 겨냥?
정치권에서는 6월 29일 개각 발표를 보면서 윤 대통령도 이제 완전한 정치인이 됐고 여권 전체에 정무 기능이 확실히 갖춰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개각 발표 전날 나온 윤 대통령의 고강도 발언 때문이었다.
윤 대통령은 6월 28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자유총연맹 제69주년 창립기념행사에 참석,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세력들은 핵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에 대해 유엔 안보리(안전보장이사회)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고 맹폭했다.
윤 대통령 축사가 진행되는 동안 현장에서는 15차례가 넘는 박수가 나왔으며 “윤석열”을 외치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현직 대통령이 자유총연맹 창립기념행사에 참석한 것은 1999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 이후 24년 만이었다.
이번 개각에서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 대북 원칙주의자로 불리는 김영호 교수를 지명한 것도 윤 대통령의 이날 발언처럼 보수진영은 물론, 최근 2030세대까지 가세하고 있는 남북관계 바로잡기의 일환으로 정치권에서는 본다. 북한의 도발에 대해 명확한 행동을 취하고 할 말을 하는 남북관계를 통해 한반도 평화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윤 대통령이 높은 볼륨의 스피커를 가동하면서 보수결집 메시지를 냈고 이후 대통령실의 향후 힘 발휘가 예상되는 개각을 단행했다”며 “총선을 앞두고 용산의 지휘봉 그립 잡기는 더 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