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사 어트랙트 “멤버들 빼가려는 배후 있다” 주장에 “수익금 정산 등 신뢰 깨져 멤버들 주체적 결정” 맞서
지난해 11월 데뷔해 올해 2월 발표한 ‘큐피드’라는 곡으로 영미권 차트에 진입해 가요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피프티 피프티가 돌연 법정 분쟁에 나섰다. 6월 말 소속사 어트랙트가 보도자료를 통해 “멤버들을 빼가려는 외부 세력이 있다”고 폭로하면서 양측의 갈등이 표출됐고, 관련 회사들까지 합류하면서 법적 분쟁이 본격화됐다.
피프티 피프티와 어트랙트의 갈등은 연예계에서 흔히 벌어지는 가수와 소속사의 갈등으로만 보기 어렵다. 피프티 피프티는 그동안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세븐틴 등 인기 케이팝 그룹들의 전유물로 여겨진 영미권 차트 진입을 단숨에 일궈낸 신인 그룹이다.
심지어 피프티 피프티는 가요계 괴물 신인으로 꼽히는 뉴진스처럼 대형 엔터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탄생한 그룹도 아니다. 소속사 어트랙트는 그동안 아이돌 등 케이팝 그룹 제작 경험이 없는 중소 규모의 기획사임에도 하이브를 비롯해 YG엔터테인먼트와 JYP엔터테인먼트 등 거대 엔터사들만이 해냈던 성과를 일궈내 ‘중소 회사의 기적’이라는 평가까지 받던 곳이다. 피프티 피프티를 두고 ‘중소돌의 기적’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중소돌의 기적’ 왜 법정으로?
피프티 피프티는 2월 24일 발표한 곡 ‘큐피드’의 성공으로 단숨에 해외 시장에 진출했다. ‘큐피드’가 SNS(소셜미디어) 기반 플랫폼 틱톡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덕분이다. 방탄소년단이 SNS를 기반으로 전 세계에서 팬덤을 구축하기 시작한 흐름과 유사하다.
피프티 피프티는 불과 4개월 만에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 100’에 진입했고, 영국 오피셜 싱글차트 ‘톱 100’에도 14주 연속 진입하는 성과를 거뒀다. 지금 막 데뷔한 한국 걸그룹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성과다. 이 같은 인기 덕분에 7월 개봉을 앞둔 할리우드 대작 ‘바비’의 OST를 부르는 주인공으로도 발탁됐다.
이제 미국 등 해외로 활동 무대를 넓힐 일만 남은 피프티 피프티를 둘러싼 분쟁은 소속사 어트랙트가 6월 23일 “멤버를 빼가려는 외부 세력이 있다”는 입장을 발표하면서 표출됐다. 이후 어트랙트는 “배후에 모 외주용역업체가 있다”고 추가로 폭로했다. 그러면서 배후 세력으로 피프티 피프티의 프로듀싱을 맡았던 안성일 프로듀서와 그의 회사 더기버스를 지목했다. 안성일 프로듀서 측이 멤버들과 소속사 사이를 갈라놓고, 멤버들을 세계 3대 음악회사의 국내 법인인 워너뮤직코리아로 넘기려 한다는 게 어트랙트의 주장이다.
그동안 인기 가수나 연예인들이 계약 기간이 남은 상태에서 소속사를 옮기는 일은 연예계에서 흔하게 일어났다. 하지만 피프티 피프티처럼 데뷔하자마자 빌보드에 직행하고, K팝 신흥강자로 부상한 신인이 데뷔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소속사와 분쟁을 벌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더욱이 그 과정에서 분쟁을 야기했다는 의혹을 받는 주체들이 잇달아 폭로되고, 이들이 한데 얽혀 법적 분쟁을 벌이는 경우도 처음이다. 가요계에서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하면서도 안타까운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배경이다.
#중소 기획사가 일군 ‘역사’ 그러나…
어트랙트는 안성일 프로듀서를 업무방해 등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멤버들을 빼가려는 외부세력이 확실하다는 의심 때문이다. 특히 해외 작곡가가 ‘큐피드’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안성일 프로듀서 측이 몰래 저작권을 양도받는 등 업무를 방해했다고도 주장한다.
안성일 프로듀서는 피프티 피프티의 성공을 이끈 ‘큐피드’를 만들고 음반을 프로듀싱한 인물이다. 업무방해 당사자로 지목되자, 안 프로듀서와 그의 회사 더기버스도 입장을 내고 “업무용역을 받아 2021년 6월 프로젝트를 시작해 2023년 5월 31자로 업무를 종료했다”며 “‘큐피드’는 피프티 피프티 프로젝트 전부터 당사가 보유한 곡으로 어트랙트의 고소 사유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한 법적 대응도 예고했다.
양측이 첨예한 갈등을 벌이는 주요한 배경에는 피프티 피프티의 소속사가 중소 기획사라는 사실이 있다. 가수 바비킴 등을 배출한 전홍준 대표가 이끄는 어트랙트는 실력 있는 뮤지션들과 다수 작업했지만 아이돌 그룹 기획 경험은 거의 없다. 피프티 피프티가 본격적인 시작인 셈이었다. 때문에 어트랙트는 안성일 프로듀서에게 일종의 ‘외주’를 주고 아이돌 그룹에 적합한 곡 등 프로듀싱 전반을 맡겼다.
이후 안성일 프로듀서 측이 곡 작업은 물론 그룹의 활동 방향과 스타일 등 전반적인 프로듀싱을 전담하면서 피프티 피프티는 빌보드에 진입했고, 본격적인 북미 시장 진출을 위해 워너뮤직코리아와도 손을 잡았다. 대형 음반사와 계약을 맺고 북미 시장 진출에 탄탄한 활로를 마련한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그 과정은 멤버들과 소속사의 갈등이 증폭되는 ‘지뢰’가 됐다.
#멤버들 “신뢰 깨졌다” 계약해지 요구
소속사의 공개적인 폭로로 시작한 피프티 피프티를 둘러싼 갈등이 프로듀서 회사 및 워너뮤직코리아까지 한데 얽힌 법정 공방으로 확산되자 침묵하던 멤버들도 마침내 입을 열었다. 예상한 대로다. 소속사 어트랙트를 상대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내고 계약 해지를 요구했다. “투명하게 진행되지 않은 수익금 정산”을 이유로 들며 “멤버들이 건강 문제를 피력했음에도 활동을 일방적으로 강행하고자 하면서 신뢰관계가 파괴됐다”는 주장이다.
멤버들은 법무법인 바른을 대리인으로 선임하고 “어트랙트가 계약위반 사항에 명확한 설명을 하지 못하면서 ‘외부 세력에 의한 강탈 시도’라며 멤버들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있다”며 “특히 멤버 수술 사유를 당사자 협의 없이 임의로 공개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 실망과 좌절을 했다”고 밝혔다. 소속사가 주장하는 ‘외부 세력의 개입’에도 선을 그었다. 외부의 개입이 아닌 “멤버가 한마음으로 주체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설명이다.
결국 지난한 법정 다툼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 싸움에서 과연 누가 웃을 수 있을까.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의 뒤를 이어 해외 케이팝 시장의 신흥 주자로 떠오를 수 있었던 피프티 피프티는 이번 분쟁으로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어트랙트도 마찬가지. 이들의 분쟁이 케이팝 시장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