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는 무난, 사법부에 대한 여야 입장차 부각…올가을 대법원장 임명 앞둔 숨 고르기 시선도
하지만 이보다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두 대법관에 대한 논란보다 대법원을 둘러싼 각종 이슈들이었다. 여당은 김명수 대법원장의 정치적 중립성 위반을 지적했고, 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 의혹을 제기하며 대법관 인사 과정을 문제 삼았다. 대법관 후보자보다 대법원을 향한 여야의 입장 차가 두드러지는 자리였다는 평이다.
#권영준 후보자, 건당 3000만 원 넘는 의견서 비용 논란
권영준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권 후보자가 법률의견서 작성을 대가로 대형로펌으로부터 지나치게 많은 보수를 받았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권 후보자는 최근 5년 동안 서울대 로스쿨 교수로 재직하면서 총 63건의 의견서를 써주고 18억 1561만 원을 챙겼다. 의견서 1건 당 3000만 원에 달하는 수준이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교수 연봉이 보통 1억 2000만~1억 3000만 원인데 거의 3배에 가까운 수익을 매년 올렸다”다고 지적했고, 같은 당 김회재 의원은 “후보자에게 3000만 원, 5000만 원짜리 의견서를 요구하는 사건은 대부분 큰 기업 사건이나, 효과가 엄청나게 큰 대형사건”이라고 비판했다.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도 “최고의 대학에서 누리는 명예와 더불어 이익까지 좇았다는 비판의 시선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야당 의원들은 로펌의 의뢰에 따라 작성한 총 63건의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할 것을 권 후보자에게 요구했다.
권 후보자는 “독립성을 생명으로 여겼고, 학술적 소신에 따라 학자적 의견을 개진했고, 세후소득액으로 따지면 연봉(1억 2000만~1억 3000만 원)보다 많지는 않았지만 국민들 눈높이 기준에 과한 부분이 있는 것에 대해서는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이어 의견서 공개에 대해서는 “해당 로펌의 비밀 유지 의무가 있다”고 거절했다.
#서경환 후보자, 비상장 법인 주식 소유 논란
다음날 열린 서경환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 청문회는 서 후보자의 재산 형성 과정 의혹에 대한 공세가 이뤄졌다. 서 후보자 재산공개 내역에 따르면 서 후보자 장남이 보유한 비상장 주식이 3년 사이에 7배 넘게 뛴 것으로 나타났다. (주)한결이라는 비상장법인 주식을 배우자와 아들이 15만 주(1억 5000만 원), 5만 주(5000만 원)를 각각 매입했는데 이 평가액이 10억 원 넘게 인정받았다.
서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투자 내용을 모르고 있다가 최근에 들어보니 (주)한결이 최대주주의 자본을 더 들여 부동산 등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평가액이 올라간 것일 뿐”이라며 “6월 20일 가족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 전부를 취득가액인 2억 원에 모두 처분 완료했다”고 해명했다.
두 후보자의 청문회 모두 ‘무난했다’는 평이 나온다.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두 후보자 모두 법조계에서 정치적 성향보다는 ‘훌륭한 법조인’으로 평가를 받는 인물들이고 서경환 후보자의 경우 재판 성향이 ‘진보적’이라는 평가도 있다”며 “그러다 보니 소득이나 자산 관련 약간의 논란은 있었지만 다른 인사 청문회에 비해서는 여야 모두 공세가 약했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또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김명수 대법원장의 대법관 선택이었고, 윤석열 정부의 승인 하에 이뤄진 인사이다 보니 여야 모두 ‘강력 공세’를 펼칠 필요는 없었던 것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후보자’ 앞 전·현직 대법원장 공세
7월 11~12일 열린 청문회에서는 되레 두 후보자를 앞에 두고 여야 의원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김명수 현 대법원장, 윤석열 대통령 등을 비판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했다. 각각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법행정권 남용이나 김명수 대법원장의 법관 탄핵 관련 발언 논란을 언급하며 두 후보자에게 ‘동의하느냐’고 묻는 형태였다.
국민의힘 간사인 정점식 의원은 11일 권 후보자에게 “김명수 사법부 6년 동안 많은 사람이 사법부의 이념적 편향화를 걱정했다. 대법관이 된다면 사법부의 탈정치화를 위해 많이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고, 같은 당 김형동 의원은 “김 대법원장이 사법부 권위를 실추시킨 사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고 지적하며 입장을 재차 따져 물어 권 후보자로부터 “일부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는 답을 얻어냈다.
이른바 노란봉투법을 놓고 인식차이도 드러났다.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은 12일 ‘대법원에서 6월 15일 나온 조합원 관련 판결’을 언급하며 우리법연구회 출신들이 주도한 정치적 판결이라고 비판했고, 이에 서경환 후보자는 “재판 관여하지 않아 잘 모르지만 국회 갑론을박 시기 중 선고한 것에 대해서 논란이 있는 것 같다”고 에둘러 답했다.
반면 민주당 강민정 의원은 “양승태 사법부 시절, 사실상 재판 거래를 하고 법관들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사법농단을 자행했다”며 서 후보자를 상대로 의견을 재차 물었고, 서 후보자는 “국민들의 신뢰를 많이 잃은 사건”이라고 말했다.
야당은 현 정부도 겨냥하며 두 후보자의 입장을 물었다. 대법관 임명 제청에 대통령실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대법원장의 임명권 행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논란을 꺼내든 것. 두 후보자와 함께 대법관 추천 후보자로 오른 정계선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27기)와 박순영 서울고법 판사(25기) 등 2명을 김명수 대법원장이 낙점할 경우, 대통령이 임명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거부하는 방법까지 거론됐음을 지적하며 ‘대법원장의 인사권 침해’를 언급한 것이다.
강민정 의원은 “대법관 임명권을 가진 대법원장의 권한과 사법부 독립을 침해한 것”이라고 지적했고, 이에 권 후보자는 “실제로 대통령이 그런 사실을 공표했다면 안타까운 사태”라고 답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두 후보자를 크게 흠집내기보다는, 여와 야 모두 현 정부와 앞선 정부의 사법부를 비판하며 ‘대법관 후보자의 동의 발언 얻어내기’에 집중하는 청문회였다고 생각한다”며 “올가을에 임명될 대법원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숨고르기를 하는 상황 아니겠냐”고 풀이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