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단독 처리 부담, 김진표 의장 협조 여부 불투명…‘총선까지 이슈화’ 늦어져도 손해 아니라는 분석도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와 이소영 원내대변인은 7월 27일 국회에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관련 대통령 처가 특혜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했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정조사 요구서는 재적의원 4분의 1 이상(75명)이 요구하면 제출할 수 있다.
앞서 민주당은 정책 의원총회를 열고 국정조사 요구서를 당론으로 채택, 박광온 원내대표가 대표 발의해 소속 의원 168명 전원이 이름을 올렸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이 김건희 여사 일가 부동산이 위치한 양평군 강상면으로 변경된 경위 △예비타당성조사 통과 후 신규 노선으로 변경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제반 절차에 대한 의혹 △사업 확정 및 노선 변경 관련 불법 개입 의혹 △5월 8일 강상면 종점안 발표 이후 국토교통부 및 한국도로공사 등의 사업 변경 관련 자료 파기 여부 등을 조사대상으로 담았다.
민주당은 요구서에 “대통령 처가 특혜 의혹이 확산되고 있음에도 대통령실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고,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대통령 처가 토지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고 전면 부인하고 있다”며 “국정농단이라는 비판에 대해 ‘야당의 거짓 공세가 계속되면 사업을 재추진할 수 없다’며 위법적 협박성 발언만 거듭하고 있어 진실규명 노력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대표는 의총 직후 “서울-양평 고속도로 문제는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명백한 국정농단 사례”라며 “국민들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드리고 원안대로 신속하게 추진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끊임없이 불필요한 거짓말, 거짓 해명, 불필요한 분란을 야기하고 있어서 안타깝다”고 밝혔다.
국정조사 요구서는 본회의에 보고됐다. 국회법에 따라 국회의장은 국회 교섭단체 대표들과 협의해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거나 상임위를 지정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구성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제출한 계획서가 본회의에 의결되면 국정조사를 개시할 수 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광온 원내대표에게 국정조사 관련 사항을 협의해달라고 요청했다.
국민의힘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양평 고속도로 관련해 민주당이 요구하면 언제든 상임위를 열어 충분히 질문하고 논의할 장을 열 것”이라며 “그럼에도 국정조사를 하겠다는 건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끌고 가 사업을 지연시키겠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원희룡 장관은 국정조사 대신 여야가 ‘노선검증위원회’를 꾸려 노선을 정한 뒤 서울-양평 고속도로 건설사업을 재개하자고 맞불을 놨다. 원 장관은 7월 30일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이미 노선검증위원회를 여야가 함께 꾸리자고 제안했기 때문에 국민의힘 간사를 중심으로 전문가 검증위원회 구성을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노선검증위를 처음 제안했던 심상정 의원은 7월 31일 “원희룡 장관은 ‘백지화’에 대한 대국민 사과와 ‘백지화의 백지화’를 공식선언하라”며 “공정한 노선검증을 위해 김건희 여사 일가의 강상면 일대 토지를 매각하라. 이를 원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답을 받아내 달라. 이것이 심상정 안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국정조사를 두고 여야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려 국정조사가 제대로 개시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국정조사를 거부하는 교섭단체는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에 따라 특위에서 제외하고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단독으로 국정조사를 추진하는 방안은 검토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지난 10·29 참사 국정조사도 처음에는 국민의힘이 강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단독 추진하려고 하자 결국 국민의힘도 따라왔다. 야당만으로 국정조사가 열렸을 때 여당이 방어할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이번 김건희 여사 일가 특혜 의혹 규명 국정조사도 상황 변화에 따라 국민의힘이 참여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또한 정부여당 협조없이는 국정조사 과정에서 증인 채택과 자료 요구, 결과보고서 채택 등 과정이 순조롭지 않다는 계산도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김진표 의장에 대한 설득도 민주당 입장에서는 넘어야 할 과제다. 앞서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당시 김진표 의장이 여야 원내대표에 국정조사 특위 위원을 기한 내 추천하라고 중재에 나선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중재에 나서는 것도, 친정인 민주당이 국정조사를 단독으로 밀어붙이는데도 긍정적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태원 참사 때는 159명의 청년들이 목숨을 잃었기에 국정조사 요구 여론이 높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김건희 여사 일가의 특혜 의혹을 규명하자는 것이다. 상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에서는 의혹 해소를 원하는 여론의 목소리를 높여 김진표 의장을 설득하겠다는 방침이다. 앞서 민주당 관계자는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이번 서울-양평 고속도로 논란에 김건희 여사 일가 특혜가 있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제2의 국정농단이라는 점을 강조해 국정조사 필요성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정식 민주당 사무총장 역시 7월 30일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김진표 국회의장에게 국정조사 요구서가 처리될 수 있도록 강력하게 건의할 예정”이라며 “국민의힘은 당당하면 말 바꾸기를 할 게 아니라 국정조사에 임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으로선 국정조사 처리가 늦어져도 손해는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의 말이다.
“어차피 10월부터는 국회 국정감사가 시작된다. 국토교통위원회를 중심으로 여러 상임위에서 김건희 여사 일가 특혜 의혹 문제가 거론될 것이다. 여기서 자료나 증언을 통해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수 있다. 이를 통해 다시 국정조사 개시를 주장하면 된다. 그럼 이슈는 내년 4월 총선까지 이어진다. 민주당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