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로코 여신’ 20년 만에 스크린 복귀…“영화 다시 해도 되겠다는 자신감 얻었죠”
‘원조 로코 여신’의 무려 20년 만의 스크린 복귀였다. 공개 직전까지도 사람들의 평이 무서워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는 배우 김희선(46)은 8월 7일 있었던 영화 ‘달짝지근해: 7510’의 언론배급시사회에서 쏟아진 호평에도 여전히 얼떨떨하고 믿어지지 않는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함께한 유해진 오빠가 워낙 이미지도 좋고 팬도 많아서 그런 게 아니겠냐”며 그 공을 상대 배우에게 돌릴 여유도 생긴 것처럼 보였다.
“정말 오랜만에 영화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도 제 변화나 연기 변신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제 전공을 살리러 온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만일 제가 안 해봤던 장르였다면 오히려 선택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내가 제일 잘하는 걸로 시작하자 했는데 심지어 상대가 해진 오빠잖아요? 살짝 기대서 얹혀 가야지(웃음). 처음에 이한 감독님께 출연 제의를 받았는데 아무래도 영화가 너무 오랜만이다 보니 겁이 나서 몇 번이나 거절했어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A4용지 두 장에 제가 일영이 역을 맡아야 하는 이유를 빽빽이 적은 손 편지를 주신 거예요. 너무 감동이었죠. 그걸 받고 나서 ‘이렇게 아직 나를 찾고 원하는 분이 계신데 내가 뭐라고 거절하나’ 해서 바로 전화를 드렸어요. ‘제가 소심했어요.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저 일영이 하고 싶어요.’”
김희선이 선택 받고, 또 선택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 ‘달짝지근해: 7510’은 과자밖에 모르는 천재적인 제과 연구원 치호(유해진 분)가 직진밖에 모르는 세상 긍정 마인드를 가진 대출심사 콜센터 직원 일영을 만나면서 인생의 맛이 버라이어티하게 바뀌는 이야기를 그린다. 김희선의 20년 만의 스크린 복귀라는 점도 그랬지만 유해진과 김희선이라는, 맞는 듯 맞지 않는 듯한 독특한 커플 케미스트리라는 점에서도 대중들의 눈길을 끌었다. 실생활 코믹 연기로 정평이 나있는 유해진에 로코 여신 김희선의 조합이라니. 그들이 그려낼 ‘어른들의 풋풋한 로맨스’라는 다소 생소하고 모순적인 이야기가 듣기만 해도 호기심을 자아냈다.
“이 영화는 어른들의 욕구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맞는 것 같아요. 4050의 사랑은 무겁고, 깊고, 진하니까요. 우리 나이대에서만 볼 수 있는 치호와 일영의 순수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나이가 있지만 둘의 사랑은 풋풋하다’는 리뷰를 많이 써주셔서 너무 좋더라고요. 사실 풋풋한 사랑이라고 하기엔 둘 다 연세가 있으시지만(웃음). 그래도 치호와 일영이가 순수함을 지니고 있어서 관객 분들도 이 둘을 풋풋하게 보시는 게 아닐까 싶어요.”
치호와 일영의 순수한 사랑이 바탕이 된 ‘로맨틱 코미디’에서 김희선의 일영이 로맨틱 쪽에 조금 더 기울어져 있다면 유해진의 치호는 관객들의 기대 이상으로 코믹한 면모를 자유자재로 뽐냈다. 김희선과 유해진이 그냥 서 있기만 해도 감독과 스태프들이 전부 빵 터질 정도였다는 촬영 현장은 늘 웃음으로 가득했다고. 특히 치호와 일영의 어른다운(?) 스킨십 신을 찍을 때면 김희선은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웃음을 참아내야 했다는 후문을 들려줬다. 쉴 새 없이 터지는 유해진의 애드리브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촬영장에선 저희가 무슨 연기를 해도 감독님과 스태프 분들이 다 빵 터졌어요. 다들 촬영하고 조명을 조절해야 하는데 어깨가 들썩이고 있더라고요(웃음). 카메라 감독님도 촬영하시면서 막 웃고 계시고. 특히 일영이가 치호에게 스킨십하는 그 신에서 제가 다가가고 있으면 오빠는 이미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고 있어요(웃음). 그 신이 아마 NG가 제일 많이 났던 신일 거예요. 오빠가 너무 애드리브를 많이 해서, 서로 뽀뽀하고 있으면 혼자서 ‘거기까지, 거기까지’ 이러는 거예요(웃음). 그 바람에 제가 안 웃으려고 제 허벅지를 계속 꼬집고 있었다니까요.”
공개 이후 “오랜만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웃을 수 있는 영화를 만났다”는 실관람객들의 호평이 쏟아진 것도 이처럼 얼굴만 봐도 웃기 바쁜 출연진과 제작진의 호흡 덕은 아니었을까. 7월부터 8월까지 연이은 텐트폴 무비와 블록버스터들의 향연으로 살짝 지쳐있는 관객들에겐 그야말로 단비 같은 영화였다. 시사회가 끝난 뒤에도 이어지는 호평에 ‘에이, 설마’라며 내려놓으려고 했던 기대가 조금씩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저희는 ‘틈새시장’이죠(웃음). 홍보 멘트 중에 이런 게 있어요. ‘안 블록버스터’ ‘8월 15일 소 개봉, 중 개봉, 대 개봉’(웃음). 시사회 때 동료 배우들에게 ‘언니,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영화인 것 같아’라는 말을 들었는데 저는 그 말이 정말 좋더라고요. 제가 너무 궁금해서 VIP 시사회가 끝난 뒤에 해진 오빠보고 ‘오빠, 영화를 봤는데 영 아닐 때는 동료들이 뭐라고 그래?’ 물어봤더니 ‘어, 고생했다’ 하고 그냥 간다는 거예요(웃음). 그런데 저희는 시사회 끝난 뒤에도 뒤풀이 장소에 저희 자리가 없을 정도로 엄청 사람들이 모이고 화기애애했어요. 그거 보고 제가 막 들떠 있으니까 해진 오빠가 또 ‘워워’ 하면서 이제 시작이니까 너무 흥겨워 하지마, ‘짠’ 하지마 그러더라고요(웃음).”
1993년 데뷔 이래로 단 한 번도 정상이 아닌 적이 없었던 ‘그’ 김희선임에도 관객 앞에 설 땐 신인 못지않은 두려움이 있었다. 왜 스크린에서 그를 다시 보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을까. 앞으로 우리는 다시 김희선을 더 많은 스크린에서 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김희선은 유해진이 그에게 남긴 말을 곱씹어 답했다. “야, 봐봐. 좋잖아. 영화 많이 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용기를 준 말이라고 했다.
“사실 그동안 영화 출연 제의를 하도 거절당해서 마음의 상처가 컸어요. 왜 (흥행 실패 등) 안 좋은 이야기는 고스란히 내가 들어야 할까,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어서일까. 캐스팅에 비판을 받으면 이건 내 잘못도 아닌데…. 그렇게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상처를 많이 받고 흥행도 못 하다 보니 ‘김희선이 드라마는 되지만 역시 영화는 안 되네’란 말도 듣게 됐어요. 그렇게 저 혼자만의 벽을 쌓아 왔는데 이렇게 좋은 반응이 나오고, 현장도 너무 좋았으니까 ‘아, 영화 다시 할 수 있겠다. 다시 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