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의원면직 통보 후 ‘경찰국 뒷이야기’ 저술 집중…“이젠 모든 걸 말할 수 있다” 소신 행보
#1년 전 오늘
2022년 7월 23일. 류 전 총경은 1년 뒤 본인의 운명을 상상이나 했을까. 주말이었던 이날 전국의 총경급 경찰서장 56명이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 강당에 모였다. '응원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무궁화 화분을 보낸 경찰서장은 약 350명. 온라인으로 화상에 참여한 경찰서장도 150여 명에 달했다. 전국 경찰서장은 약 600명이다.
류 전 총경이 주도한 자리였다.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는 경찰서장들은 수많은 취재진 앞에서 얼굴도 이름도 가리지 않은 채 회의장에 들어섰다. 전부 "경찰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정치 중립과 독립성 확보를 위해 모이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강당 안팎에는 전국의 총경급 이하 경찰들이 응원 플랫카드를 들고 서 있었다.
회의가 끝난 지 불과 약 4시간 만에 류 전 총경은 대기발령 조치됐다. 이에 그는 "차라리 잘됐고 기쁘다"며 "경찰 인사권을 행안부 장관이 쥐면 상식 밖 일이 벌어질 것이란 저의 예측이 이번 인사 조치에 따라 사실로 입증됐다"고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경찰은 이후에도 추가 조치를 단행했다. 경찰서장 회의 꼭 1년이 지난 2023년 7월 23일 총경 344명 전보 인사에서 류 전 총경은 경남경찰청 112상황팀장으로 옮겨졌다. 통상 경정이나 갓 승진한 총경급 경찰관이 근무하는 자리다. 경찰서장 회의에 함께 참석한 총경 상당수가 당시 전보에서 비슷한 형태로 인사 조치됐다.
#"윤희근은 무능할 뿐 배후는 바로…"
7월 31일 사직서를 낸 류 전 총경은 약 열흘 지나 의원면직 통보를 받았다. 현재 책을 쓰고 있는데 발간까지 늦어도 올해는 넘기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조직 전반에 대해 썼지만, 핵심은 경찰국 이후 벌어진 상황이라고 한다. 그는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이제 공무원 신분이 아니라 모든 걸 말할 수 있다"고 예고했다.
책에는 어떤 내용들이 담겼을까. 류 전 총경은 "돌아보면 조금 후회되는 장면들도 있어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았다"고 귀띔했다. 좌천 등 불이익 때문에 후회하진 않는다. 그는 "오히려 더 적극적이고 강단 있게 경찰국 신설에 반대했어야 했다"며 "남은 후배들이 주눅 들지 않고 소신껏 행동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특히 본인 인사의 부당성과 함께 배후가 현 정부라는 의심은 여전히 거두지 않았다. 류 전 총경은 "좌천 인사가 예정보다 2주일가량 늦게 진행했는데, 윤희근 청장이 정부 압력을 버티다 마지못해 한 까닭으로 본다"며 "윤 청장의 무능은 유감이지만 그에게 개인적인 악감정은 없다"고 말했다.
언뜻 류 전 총경은 지난 1년 동안 자신의 뜻이라면 전부 시도한 듯 비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경찰서장 회의 도중 경찰청에서 내려온 해산명령이 위법이라는 점을 입증하고자 윤 청장 등 책임자들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하겠다고 여러 번 밝히고도 실제로는 이행하지 않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류 전 총경은 "고발장까지 완성해 놓은 상태였으나 주변의 만류를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경찰 안팎에선 윤 청장이 '윗선'의 압박으로 해산을 명령했을 뿐, 실제 배후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으로 봤다. 단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현실론이 대세였다고 한다. 그는 "언젠가는 진실이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경찰서장 회의 이후 전국에서 경감·경위급 회의도 추진됐으나 류 전 총경이 만류했다. 그는 "아쉽지만 잘한 결정이었다"고 떠올렸다. 총경보다 약 8배 많은 경감·경위급의 물리적 집결이 현실화할 경우 예기치 않은 사고들이 더 터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경찰서장 회의도 행안부 등에서 '쿠데타'로 정의한 시점이었다.
류 전 총경은 "경찰서장 회의 참석자들마저 상당수가 보복성 인사로 불이익을 당했다"며 "만약 5만~6만 명의 경감·경위들까지 나섰더라면 그야말로 '피를 보는' 강대강 대치가 벌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뭣보다 경감·경위들이 나서려 한 때는 경찰국 신설이 잠정 확정된 시점이었다"며 "정부와 전면전이 되므로 위험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경찰서장 회의 참석자들을 향해서도 마음을 전했다. 류 전 총경은 "많은 분들이 보복성 인사에 시달려 저로서는 대단히 미안하고 감사하다"면서도 "제가 기자들 앞에 나서면서까지 여러 쓴소리를 내고 목을 내놓은 만큼, 경찰 조직이 앞으로는 이처럼 노골적인 보복 행위는 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할 뿐"이라고 했다.
#"경찰이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류 전 총경은 관두기로 다짐하기까지 주변 여러 경찰관들에 의견을 물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관두라'는 것이었다. 총경급 전보인사 당시 류 전 총경 스스로 "참을 수 없는 모욕"이라고 지적했는데, 이런 모욕을 견딘 채 조직에 머무르는 자체가 앞뒤가 안 맞는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었다고 했다.
류 전 총경은 "경찰이 돈이 없지, 가오(멋)가 없냐는 말 그대로"라며 "적어도 주변의 95% 이상이 제가 옷을 벗는 데에 찬성했다"고 전했다. 특히 "저에 대한 인사는 제 개인에 대한 처분에 그치지 않고, 경찰을 대하는 정부와 조직의 부당한 실태를 보여준 셈이므로 사직서는 이를 멈추라는 메시지를 담은 셈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부터 페이스북 등 SNS(소셜미디어)를 시작했다. 8월 14일 올린 첫 글에서는 해병대 고 채수근 상병의 사망 경위를 조사한 뒤 경찰에 이첩했다가 집단항명 혐의로 군검찰에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에 "퇴직금 나오면 밥 한 끼 대접하고 싶다"고 격려했다.
그러면서 '후배 경찰'들한테도 당부 메시지를 전했다. 여기에는 윤희근 청장도 포함된다. 류 전 총경은 경찰대 4기, 윤 청장은 경찰대 7기다. 류 전 총경은 "눈앞의 불이익을 우려해 국민을 외면하는 길을 걸어서는 안 된다"며 "모든 정권은 유한하니까 국민 눈높이에 좀 맞춰라"고 꼬집었다.
'좌천' 총경들의 낙담, 직협의 '지못미'
경찰서장 회의에 참석해 인사조치 된 A 총경은 "참석자 상당수가 지방청 112상황실 등으로 갔는데 이태원 참사 이후 중요도가 격상한 부서라 지휘부 입장에서는 보복인사가 아니라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다"며 "내년 인사에서 걸맞은 자리로 복귀하는 식의 정상화를 기대하는 분위기는 잘 안 느껴진다"고 전했다. 이어 "윤희근 청장 임기가 한참 남았는데 내년 총선 시점에 가까워질수록 정부 기조와 다른 인사를 하기는 더 어려워지지 않겠나"라고도 내다봤다.
경찰들 사이에서는 경찰서장 회의 참석자의 90%에 달하는 40여 명이 올 2월 좌천성 인사를 당했다고 분석한다. 일선 경찰서를 책임지던 총경들이 각 지역 지방청의 112상황실 팀장 등으로 배치된 사례가 대부분이다. 복수직급제 도입으로 총경이든 경정이든 맡을 수 있는 자리지만, 팀장으로 배치되면 같은 총경인 실장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 특히 팀장은 교대근무에도 직접 투입될 수 있어 경찰서장 등보다는 자리의 무게감이 다소 떨어진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런 가운데 류 전 총경이 옷을 벗자 경찰의 노동조합 격인 전국 경찰직장협의회(직협)에서도 충격이란 분위기가 일었다. 함께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며 릴레이 삭발과 1인 시위 및 삼보일배 등 전력 투쟁을 벌인 데다, 류 전 총경의 대기발령 조치 등을 놓고도 지휘부에 항의 메시지를 내는 등 지원사격에 나섰으나 일제히 무기력한 결과를 마주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전국 단위 직협이 공식 설립된 이후 구성원들의 내분으로 결집력이 되레 약해진 현실도 문제로 꼬집는다.
경찰 한 관계자는 "전국 직협이 출범한 뒤로는 류 전 총경이 속한 영남권의 지역 단위 직협 외에는 부당인사 등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면서 "전국 직협 안에서 파벌이 형성됐고, 서로가 결코 한 자리에 모이지 않는 등 감정이 안 좋아졌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런 탓인지 '총경도 엄연히 고위직인데 누가 누굴 지키나'는 식의 심술까지 나오는 등 분위기가 안 좋았다"고 덧붙였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