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바둑 현재와 미래 기업은행배·닥터지 번갈아 치러…기업은행배 1국 최정 역전승, 김은지 “졌잘싸”
6번기란 지난 8월 16일 막을 올린 2023 IBK기업은행배 여자바둑 마스터스 결승3번기와 오는 22일부터 시작되는 닥터지 여자최고기사 결정전 결승3번기를 말한다. 두 대회 모두 3판 2선승제로 우승컵의 주인공을 가린다.
16일 오후 7시 바둑TV 스튜디오에서 열린 IBK기업은행배 1국에서는 최정이 선취점을 따냈다. 전체 흐름은 90% 정도 김은지가 주도했지만, 노련한 최정이 상대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역전에 성공했다. 반면 결정적인 장면에서 착각으로 1국을 내준 김은지로서는 심각한 타격을 받을 만한 역전패가 되고 말았다.
#김은지, 신진서의 길 걸을까
최정과 김은지의 대결이 바둑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최근 열렸던 둘 간의 여자바둑리그 대결에서 김은지가 승리하면서부터였다.
그전까지 둘의 전적은 최정이 8전 전승, 일방적이었다. 그런데 김은지가 랭킹2위 오유진과의 최근 1년 동안의 대국에서 3연승 포함 8승 1패로 앞서고, 최정에게도 승점을 따내면서 바둑계에선 “여자바둑도 드디어 세대교체의 신호탄이 쏘아 올려졌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2007년생으로 2020년 입단한 김은지는 짧은 경력에도 지난해 말 효림배와 난설헌배 우승에 이어 최근 끝난 혼성 주니어대회인 루키영웅전도 품에 넣으면서 프로통산 3회 우승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 페이스도 놀라워서 7월에만 14승 2패를 기록, 남녀 통틀어 가장 기대되는 신예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다.
김은지는 기업은행배 오유진과의 4강전에서 승리한 뒤 “최정 사범님과 비교하기엔 아직 너무 부족하다. 기업은행배와 닥터지 두 대회 중 하나만이라도 우승했으면 좋겠다”고 결승전에 오른 각오를 밝혔다.
최정과 김은지의 대결은 박정환 9단과 신진서 9단의 대결과 비슷한 면이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신진서는 입단 이후 일인자로 군림하던 박정환 9단에게 줄곧 판 맛을 보지 못했었다. 특히 2018년과 2019년엔 9연패를 당하면서 일방적으로 몰렸다. 하지만 절치부심한 신진서는 2020년 들어 그동안의 수세에서 완전히 벗어나 박정환에게 12연승을 거두면서 왕좌의 자리에 올랐다.
기업은행배 1국은 최정의 승리로 끝났지만 패자 김은지도 잘 싸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바둑TV 해설의 송규상 7단은 “마지막에 웃은 것은 최정 9단이었지만 김은지 6단이 생각 이상으로 잘 싸운 바둑”이라고 1국을 평가했다. 송 7단은 “실력으로 이미 대등한 위치에 이른 것 같다. 다만 김 6단의 경험부족이 1국에서 드러났는데 결과가 어떻든 이번 두 차례의 결승전이 김은지 6단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최정 9단 역시 쉽지 않은 승부였음을 내비쳤다. 승리 후 인터뷰에 나선 최정은 “솔직히 몹시 부담스러운 승부”라고 말문을 뗐다. 이어 “김은지 6단과 두 대회 연속 결승을 벌이기 때문에 심적으로 부담이 컸는데 1국을 이기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 생각한다. 저보다 많이 어린 기사지만 최근 무척 성장한 것이 느껴져서 최선을 다해 두고 있다”고 1국을 치른 소감을 말했다.
한편으론 얼마 전 아시안게임에 대비해 진천선수촌에 입촌했던 것이 분위기 전환에 도움이 됐다고도 했다. “(최근 큰 대국에서 거푸 패하면서)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쳐있었는데 진천선수촌이 공기도 좋고 밥도 맛있어서 다른 선수들과 함께 지내면서 힐링이 많이 됐다. 평소 혼자 바둑을 연구했는데 이번에 다른 선수들이 어떻게 훈련하는지 봤고, 체력 훈련도 하면서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2년 정도면 김은지가 따라잡을 것”
그렇다면 전문가들은 둘의 승부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많은 여자 프로기사들을 길러낸 한종진 9단은 “김은지에게 최정은 아직 버거운 상대일 것”이라고 예상한다.
기업은행배 1국이 시작되기 전 가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 9단은 “김은지 6단의 성장 속도가 생각보다 너무 빨라서 놀랍다. 재미있는 승부가 될 것으로 보지만 아직은 김은지가 최정을 넘기엔 역부족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앞으로 2년 정도면 김은지가 최정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예상했다.
최근 많은 유튜브 바둑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조연우 2단도 아직 세대교체를 논하기엔 이르다는 입장이다. 그는 “김은지 6단의 기세가 정말 무섭다. 하지만 기존 여자바둑 강자들이 김은지 6단을 상대로 계속 고전하는 건 실력보다 기세에서 밀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은지가 좀 더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1국을 마친 최정과 김은지는 8월 23일 오후 다시 2국에서 맞붙게 된다. 그에 앞서 22일에는 닥터지 여자최고기사결정전 결승1국이 기다리고 있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