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편영화 연출작 “정우성스럽다는 말 기뻐…개그 욕심은 여전”
― 8월 15일 정우성 감독의 영화 ‘보호자’가 개봉했다. 관람평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는지.
“매력적인 영화라고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아마도 독특한 개성이 있다는 점 때문에 그렇게 (매력적이라고) 느끼시는 게 아닐까 싶다. 설정 자체의 기본 스타일은 클리셰처럼 보이지만 사건을 본격적으로 푸는 방식에서 개성을 느끼신 것 같다. ‘정우성스러운 연출’이라는 평도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이게 나다운 연출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촬영 전에 회의를 하는데 연출부들이 레퍼런스를 찾고 있는 걸 봤다. 그러지 말라고 했다. 레퍼런스를 가지고는 신을 구현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래선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레퍼런스 없이) 신마다 수혁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어떤 움직임을 만들지 고민하다 보면 그 답은 당연히 찾아질 것이라고 믿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그게 맞다고 생각했고 그러다 보니 더 ‘보호자’스러운 영화가 만들어진 것 같다.”
― ‘보호자’를 제작하기까지의 과정이 조금 험난했다던데.
“그 당시 ‘증인’이 끝나고 좀 더 액티브한 연기를 보여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제작자 분이 시나리오를 줬다. 정말 이야기가 빤한데 여기서 내가 맡은 역에 액션만 넣고, 새로운 것을 찾다 보면 배우로서의 롤은 완성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하겠다고 했는데 얼마 있다가 감독이 사정이 있다며 못 하겠다고 한 거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작전 같긴 한데(웃음), 그걸 듣고 ‘그럼 내가 연출할까?’했더니 사람들이 다 ‘네!’ 그랬다. 이런 작전으로 큰 그림을 그린 게 아닌가(웃음).”
― 말씀처럼 이야기의 구조나 소재가 이미 많은 작품에서 볼 수 있었던 클리셰라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연출을 하려니까 ‘정말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이 클리셰 이야기가 그렇지 않도록 보이려면, 또 나 나름대로의 어떤 관점으로 풀어본다면 이런 도전도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들더라. 어디서 많이 봐 온 익숙한 이야기를 새롭게 풀어내는 도전도 재미있지 않겠나. 사실은 제가 프로듀서한테 욕도 많이 했다. ‘빤한 스토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든다고 해!’ 하면서(웃음). 그런데 영화를 만들며 그 의미를 관객들에게 인정해 달라는 게 아니라 영화인으로서 스토리를 다루는 방식과 관점이 바람직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더라. 그런 측면에서 내가 한 번 나의 관점으로, 이 이야기를 좀 더 다른 영상으로 보여준다면 영화인들에게 어떤 의미의 전달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 ‘보호자’에서 감독님이 배우로서도 연기한 수혁은 BMW 차량을 타고 다양한 액션 신을 보여준다. 수혁의 차를 그것으로 설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보호자’에 등장하는 그 차는 튜닝 카인데 그 모델이 저 역시도 그렇고 남성들에게 정말 인기 있는 모델이다. 그래서 수혁이의 차로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웃음). 꽤 오래된 모델이라 어렵게 구해서 촬영했다. 사실 수혁이가 세상에 나왔는데 어떤 공간에도 속할 수 없는 상태지 않나. 갈 데도 없고, 평범한 삶을 살아 보려는데도 막막한 상황이다. 평범함이 뭔지도 모르는 수혁이 숨을 수 있는 공간은 옛날에 타던 그 차뿐이다. 또 이 인물의 육체가 가지고 있는 폭력의 근성을 막아줄 수 있는 것도 이 차라고 생각했다. 차에서 뛰어 내려 육체로 적들을 제압하고 냅다 뛰어드는 것을 제한해주고 싶었다. 만일 살과 살이 부딪쳤다면 그 감정이 끝까지 몰아치게 됐을 테지만, 차라는 외피가 있다면 부딪침이 아니라 뿌리침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수혁이 그 차를 타고 대적하는 건 뿌리침의 행위로 보여주고 싶었다.”
― 수혁이 직접 육체로 부딪치는 액션 신은 자신이 몸 담았던 조직에서 1대 다수로 붙는 과거의 회상 신에 한정돼 있는 것 같다. 이 역시 특별한 설정이 있는지.
“그 회상 신이 있기 전에 수혁의 전사가 빈약한 게 아니냐, 얘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보여줘야 되지 않냐는 의견들이 있었다. 타당한 의견인 것 같아서 이 인물이 폭력의 세계에서 그 폭력을 어떻게 쓰던 앤지 보여주기 위해 추가로 넣은 신이다. 여섯 시간 만에 찍었다. 액션 배우를 오래 했다 보니 연출자로서는 그 신을 찍는 게 편하더라. 그러니까 여섯 시간밖에 안 들어갔지(웃음). 신속하게 촬영할 수 있어서 부담은 없었다. 다만 이런 캐릭터들끼리의 충돌에서 필요한 폭력적인 행위가 무엇일지를 고민했다. 관객들이 (액션 신을) 기대하는 것을 만회해야 한다는 것보단 액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 상황에서 그걸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재미있게 보여줄 것인지를 고민했다.”
― 수혁과 대적하는 청부살인업자 우진도 굉장히 독특한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다. 그를 연기한 배우 김남길에 대한 감독으로서의 평이 궁금한데.
“김남길 배우가 처음부터 끝까지 잘해서 우진이가 완성됐다. 우진은 잘못하면 굉장히 유치해질 수 있는데 그 결을 김남길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만들 수 있었을까 싶다. 사실 남길이가 액션 신을 찍을 땐 ‘우성이 형 앞에서 제가 어떻게 액션을 해요’ 그랬다. 그래놓고 잘하더라(웃음). 복도형 아파트의 그 발코니를 뛰어올라가는 신은 높이가 상당해서 ‘그거 직접 안 해도 돼’라고 했는데 ‘제가 해야죠’ 하더니 진짜로 했다. 대역 없이 전부 혼자서 한 거다.”
― 김남길 배우는 수혁과 우진의 관계성에 대해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이 떠올랐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우진이 초반에 교회에서 이죽대고 비꼬면서 고해성사를 할 땐 이게 진짜인가 거짓말인가 싶은데 수혁의 앞에서는 진짜 고해성사를 한다. 우진이란 캐릭터가 한 ‘인간’을 그때 처음 본 거다. 수혁이란 저 사람은 혼자 왜 저렇게 고민을 하고 있지,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 거지 하면서 호기심이 가는 거다. ‘브로크백 마운틴’처럼 어떤 성애적인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굉장한 호기심이 생겼다. 수혁을 그렇게 관찰하면서 마지막엔 자신의 진심, 자신이 감췄던 비밀을 이야기하는 대상이 됐다.”
― 극중에서 수혁은 ‘보통의 사람’이 되길 원하고, 그렇기에 ‘보통’과 ‘평범’이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감독님 역시 대중들의 주목을 받는 영화배우로서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살아온 만큼 이 두 단어에 대해 많이 생각해 봤을 것 같다.
“익명성에 대한 가치는 어느 시점부터 늘 생각해 왔다. 그냥 카페 거리를 걸을 때도 아무도 나를 모르지만, 나는 그 세상에 속해 있는 그런 게 부재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았다고 생각했다. 영화 속에서는 그런 익명성을 보장 받은 사람으로 연기하면서 일상과 평범이란 것에 대해 계속 되뇌고 생각하며 그 가치의 소중함을 느껴왔다. 영화나 드라마는 그 일상의 가치를 극대화해서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일상의 가치는 온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나?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그 평범이란 가치를 막연히 꿈꾸는 수혁의 입을 통해 ‘진짜 평범함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평범의 가치를 알고 있나’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신인감독으로서의 얕은 바람이 있다(웃음).”
― ‘보호자’ 홍보를 위해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몸 사리지 않고 사정없이 망가지는 모습도 대중들에게 큰 호평을 들었다. 정우성에게 ‘코미디’란?
“저는 제가 즐기려 나가는 거다(웃음). 그런 기회가 많지 않다 보니 최선을 다해 누가 되지 않게 즐기다 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나간다. ‘경영자들’을 촬영할 때는 분명히 설정이 있었다는 걸 알았고, 그 설정에 맞춰 연기를 하는 줄 알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개판이 되더라(웃음). 다 같이 떠들기 바빴다. 성대모사를 제 앞에서 하는 것도 재밌었다. 그런 연기는 캐릭터를 인상 깊게 봐야 할 수 있는 거니까. 저는 코미디언이란 직업의 가치를 크게 생각한다. 웃음을 만들어내는 연기지 않나. 그걸 고민하는 시간들은 또 어떻고. 저분들은 하루종일 그 고민 만을 생각하겠구나 싶다. 정말 존경한다.”
― 개그 욕심이 많은 것 같다.
“저는 웃기는 게 더 중요하다. 잘생긴 건 안 중요하다. 제가 출연한 예능 프로를 아직 보지 못했는데 웃기다는 얘기가 들리니까 (주먹을 쥐고) ‘오예!’ 이랬다. 하지만 제가 제 모습을 보면 웃기지 않다. 그거보다 더 웃기게 했어야 했는데…. 제가 인스타그램에 댓글을 쓴 것을 보고도 재미있어 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시간차를 두고 댓글을 몇 개씩 썼는데 그건 일부러 텀을 주려고 그런 게 아니다. 처음 댓글을 썼는데 (개그가) 맘에 안 들어서 다시 쓴 거다. ‘더 웃긴 댓글로 쓸 수 있었는데!’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어서 덧붙인 거다.”
― 연출도 그렇고 개그도 그렇고 여러모로 도전의 연속인 것 같다. 자신에게 도전이란 어떤 의미인지.
“가장 큰 고민은 내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부여하고 있는 의미가 정당하게 전달이 될까라는 것이다. 영화인으로 살면서 나 혼자만 가지고 있는 그런 삐딱한 갈망으로 이렇게 도전해도 되는 걸까. 그게 잘 전달될까. 지금도 도전은 계속 이어진다. 이 영화의 성과에 따라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은 알겠는데, 그거 안 해도 돼. 위험하고 힘든 일이야’라는 말을 듣고 포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도전은 끝나지 않는 것 같다. 사실 배우일 때도 그렇다. 어떤 배우처럼 되고 싶어도 될 수도 없고, 계속해서 나를 찾아가는 일이다. 스스로에게 스스로를 입증해야만 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어떤 감독님처럼 돼야지, 어떤 배우처럼 돼야지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죽이 되나 밥이 되나 모자라더라도 그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