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묵적 방류 용인 비판에 한덕수 총리 “믿어달라” 담화…야당 “정부 책임” 여론전, 여당 “괴담, 선동” 방어전
#오염수 30년간 방류 후 원전 폐로 계획
8월 24일 오후 1시쯤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를 시작했다. 이날 첫 방류량은 200~210t(톤)이라고 밝혔다. 향후 17일간 오염수 7800t가량을 방류할 계획이다. 2024년 3월까지 바다에 방류할 오염수 양은 3만 1200t으로 예상된다. 이는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총량의 2.3%에 해당한다. 2024년 4월 이후 방류할 오염수 양은 미정이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지난 12년간 쌓인 오염수는 132만t에 달한다. 일본은 이를 약 30년에 걸쳐 후쿠시마 앞바다에 방류한 뒤 원전 폐로를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계획을 순차적으로 이행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후쿠시마 원전에선 냉각수, 빗물, 지하수 등으로 인해 약 100t가량의 방사능 오염수가 매일 추가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바닷물 방사성 물질 농도가 30년간 유지될지도 미지수다. 일본 정부는 방류 이후 원전 인근 바닷물의 삼중수소(트리튬) 농도를 정기적으로 공개할 방침이다. 삼중수소 농도가 원전으로부터 3km 이내 지점에서 1ℓ(리터)당 700베크렐(Bq), 10km 내 지점에서 1ℓ당 30Bq을 각각 초과하면 즉각 방류를 멈추기로 했다. 또 규모 5 이상의 지진 등이 발생해도 오염수 방류는 중단된다. 첫 방류 직후 채취한 표본의 삼중수소 농도 측정 결과는 8월 27일 공개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바닷물 희석 후 오염수 내 삼중수소 농도가 이날 오후 6시 기준 1ℓ당 206Bq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일본 측이 자체적으로 정한 기준치(1ℓ당 1500Bq)보다 크게 낮았다. 도쿄전력은 오염수 방류를 위해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세슘 등 62종의 방사성 물질을 정화한다. ALPS에서 거르지 못하는 삼중수소와 탄소14 등의 핵종은 바닷물과 희석하는 방식으로 방류한다.
오염수 방류와 함께 후폭풍도 불기 시작했다. 일본 NHK 방송에 따르면 8월 23일 후쿠시마현 주민과 변호인 등은 기자회견을 열고 오염수 해양 방류 계획 인가 취소와 방류 중단을 요구하는 소송을 9월 8일 후쿠시마지방재판소에 낼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정부와 도쿄전력이 2015년 후쿠시마현 어업협동조합연합회에 ‘관계자의 이해 없이는 (오염수의) 어떠한 처분도 하지 않는다’고 약속했는데 방류는 이를 무시하는 행위로 계약위반”이라고 비판했다.
중국은 오염수 해양 방류에 항의하며 일본산 수산물 수입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8월 24일 중국 세관 당국인 해관총서는 “일본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가 식품 안전에 가져다줄 방사성 오염 위험을 방지하고, 중국 소비자의 건강을 지키며, 수입 식품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오늘을 기해 일본이 원산지인 수산물의 수입을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의 강경 대응에 일본 정부 내에서도 당혹감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8월 25일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농림수산성 간부는 중국의 금수 조치에 대해 “무언가 대응해올 것으로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 같은 반응은 중국이 일본의 수산물 수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농림수산성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2022년 일본산 수산물 수입액은 871억 엔(약 7930억 원)이다. 일본이 적립해둔 어업 지원용 기금 800억 엔(7300억 원)보다 많다.
#오염수 방류에 ‘묵묵부답’ 윤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대해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8월 24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오염수 방류에 대한 대통령실 입장’에 대해 “국무총리의 입장이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이다. 정부 입장은 명료하고 간결할수록 좋다고 생각한다”며 “총리가 대통령의 뜻과 다른 말씀을 하겠느냐”고 답했다.
이날 한덕수 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IAEA와 국제원자력 학계, 그리고 우리 전문가들은 일본 정부가 앞서 발표한 조치에 따라 방류한다면 한국은 크게 걱정할 이유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우리 정부를 믿고, 과학을 믿어주시기 부탁드린다”고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한 총리는 “지금 우리 국민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것은 과학에 근거하지 않은 가짜뉴스와 정치적 이득을 위한 허위선동”이라고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는 그동안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계획에 대해 ‘암묵적 용인’을 해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7월 4일 IAEA는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는 일본 정부의 계획이 안전기준에 부합한다는 내용의 최종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후 7월 12일 윤석열 대통령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IAEA 발표 내용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8월 22일 박구연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은 방사능 오염수 방류 관련 일일 브리핑에서 “계획상의 과학적·기술적 문제는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다만 “우리 정부가 오염수 방류를 찬성 또는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방류가 조금이라도 계획과 다르게 진행된다면 즉각 방류 중단을 요청하겠다”고 했다.
8월 23일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일본 총리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찬성해 놓고 국민들 앞에서는 민심이 안 좋으니까 대통령, 총리, 장관 등 이런 사람들은 다 도망가 버리고 일개 차관이 나와서 이렇게 발표를 하냐”며 “비겁하고 당당하지 못하다. 대통령실 예산으로 오염수 안전을 홍보하는 영상 제작물도 만들었다. 이게 어떻게 반대하는 나라의 입장이냐. 국민이 바보냐”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가 앞장서서 일본의 앞잡이, 대변인이 돼서 찬성하니까 ‘국제사회가 이해해 줬다’ 이렇게 일본에 명분을 다 만들어준 것”이라고 꼬집었다.
당초 윤석열 대통령이 요구한 한국 전문가 사무소 상주도 정기적 방문으로 후퇴했다. 7월 12일 윤 대통령은 한일정상회담에서 △오염수 방류 점검 과정에 한국 전문가 참여 △방류 모니터링한 정보 실시간 공유 △방사성 물질 농도가 기준치 초과 시 즉각 방류 중단 및 해당 사실 한국에 공유 등 3개 조항을 일본과 합의했다. 그런데 IAEA 후쿠시마 원전 현장 사무소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이에 대해 박구연 1차장은 “(IAEA가) 타국과의 형평성이나 관계 문제, 앞으로 미칠 영향 등을 고려했을 때 한국만 단독으로 (전문가가) 가는 부분은 쉽지 않은 거로 이해한다”며 “그럼에도 IAEA에서는 한국의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만족하기 위해 여러 형태의 협력 방안을 제시했다. 정부도 그 정도라면 우리가 의도한 바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보기에 (정기 방문에) 합의했다”고 답했다.
시민단체는 오염수 방류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8월 22일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일본 정부의 오염수 방류 결정에 대해 “일본 정부의 무책임과 한국 정부의 방조가 낳은 합작품”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들은 “원전 사고로 생성된 방사성 폐기물의 해양 방류는 지구상 전례가 없는 일로 해양 생태계와 인류의 안전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며 “일본 어민은 물론 태평양 연안 관계국 주민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행위이며 국제해양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장외투쟁을 벌이며 여론전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8월 22일부터 26일까지 100시간 비상행동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23일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및 보좌진, 당직자, 서울시 시의원 및 구의원, 당원 등 3000여 명(민주당 추산)이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24일에는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대응 특별안전조치 법안 4건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25일에는 서울 광화문광장부터 용산 대통령실까지 도심 행진을 한 뒤 오염수 투기 시 수산물의 전수조사 등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전달한다. 26일에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에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투기 중단 범국민대회를 연다.
국민의힘은 총력 방어에 나섰다. 여당 텃밭인 부산·울산·경남(PK) 민심이 오염수 방류를 계기로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실제 지난 7월 오염수를 이유로 PK 지역 지지율이 급락했다는 여론조사가 나오기도 했다. PK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한 의원은 “방송에 자꾸 불안하게 나오니까, 동요하는 분들이 있다. 총선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다만 시간이 지나면 문제가 없다는 여론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8월 25일 윤재옥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이 내부 악재를 덮기 위해 오염수 공포 확산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며 “아무런 실익 없는 장외투쟁을 멈추고 협상 테이블에 앉아 합리적 논의를 통해 어민 지원과 피해 방지 방안에 대해 의견을 모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