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환영 아쉬운 2위, 우승은 중국 탕충저…이강욱 3단 제자 하퀸한·아홉 번 출전 키나 켄지도 눈길
올해 국무총리배 바둑대회에는 주최국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15개국, 유럽 29개국, 아프리카 1개국, 미주 9개국, 오세아니아 2개국 등 총 56개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출전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가 후원하고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재정후원한 이번 대회는 7라운드 스위스리그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총 호선, 덤 6집반, 제한시간 각자 25분에 20초 피셔 방식으로 대국이 진행된다.
#한국대표 최환영, 아쉬운 준우승
국무총리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는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 대회로는 최다 참가 규모를 자랑한다. 올해는 56개국에서 선수들이 모였지만 많을 때는 전 세계 72개국의 선수들이 참가한 적도 있었다.
한국과 중국 등 동아시아 세력이 워낙 막강해서 순위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한중일, 대만을 제외한 아랫동네도 윗동네 못지않게 경쟁은 치열한 법. 스위스리그 7라운드 내내 경기장에는 제법 긴장감이 감돌았다.
대회 마지막 날인 31일에는 순위를 확정 짓는 최종 라운드가 열렸다. 한국대표 최환영은 5라운드까지 전승을 거두며 역시 전승 중이던 중국의 탕충저 선수와 6라운드에서 실질적인 결승전을 벌였다.
이 승부에서 최환영은 중반까지 승률 90%대로 앞서 갔으나 중앙 전투에서 대착각을 범하면서 역전패를 당하고 만다. 최환영에게 승리한 탕충저는 여세를 몰아 마지막 7라운드에서 필리핀 대표로 출전한 박한필 선수마저 꺾고 대회 첫 우승을 차지했다.
탕충저는 “바둑 강국인 한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 무척 기쁘다”는 소감을 전하면서 “최환영 선수가 중앙 전투에서 백 2점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듯한데 다음 흑이 장문 씌우는 수를 보지 못한 것 같다. 결과적으로 운이 좋았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최환영은 최종 7라운드에서 우크라이나의 크루셸니츠키 발레리를 꺾고 6승1패로 2위에 입상했다. 이 밖에 대만의 라이위쳉이 3위를 차지했으며, 체코의 루카드스 포드페라가 일본과 홍콩 등 아시아계 선수들을 밀어내고 비 아시아계 선수로는 가장 높은 4위에 입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베트남 최정’ 하퀸한 눈길
올해 국무총리배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선수들이 많아 눈길을 끌었다. 우선 베트남 대표 하퀸한 선수. 16세 여자선수 하퀸한은 베트남에서 한국바둑을 보급하고 있는 이강욱 3단의 제자로 현재 베트남 최고의 유망주로 꼽힌다. 바둑 두는 모습이 최정 9단과 닮아 ‘베트남 최정’이란 애칭을 이번 대회에서 얻기도 했다.
하퀸한은 2021년 일본 주최 센코배에서 베트남 바둑 역사상 첫 세계대회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비 아시아계 선수 부문). 하퀸한을 길러낸 이강욱 3단은 “16세 여자 선수지만 이미 베트남에서는 남자 정상권 선수들과도 비등할 정도로 수준이 높다. 바둑 강국인 한국과 중국, 일본, 대만 선수들이 빠진 대회였지만, 세계바둑대회 우승국이 베트남이라는 사실은 현지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고 말했다.
이번 국무총리배에서 하퀸한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네덜란드, 슬로베니아 선수를 제쳤지만 중국과 대만 선수들에게 석패해 14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3라운드에서 유럽의 바둑 강자 롭 반 자이스트 7단을 물리치는 기염을 토했다. 롭 반 자이스트는 올해 신안에서 열린 제4회 월드 바둑 챔피언십에 유럽 대표로 참가, 조훈현 9단과 일전을 벌이기도 했던 인물이다. 하퀸한의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는 증거다.
남미의 페루 대표 키나 켄지(35)는 대회 최다 참가자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국무총리배에만 무려 아홉 번이나 참가했다고 밝혀 대회 관계자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비행기로 24시간이나 걸리는 지구 반대편을 거의 매년 찾고 있다니 보통 바둑광이 아닌 듯싶지만, 기력은 의외로 6~7급 정도라고 해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자신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기술자라고 소개한 키나 켄지는 바둑을 온라인으로만 배운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는 “페루에는 바둑을 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아 독학과 온라인을 통해 배웠다. 바둑이란 게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년 전 ‘히카루의 바둑’이란 만화를 통해 흠뻑 빠져들게 됐다. 지금까지 국무총리배에 아홉 번 참가하고 있고, 일본에서 열린 학생바둑대회에도 한 번 참가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프로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바둑을 둔다는 우크라이나 국적의 크루셀니츠키 발레리 5단, 유일한 아프리카 선수 마다가스카르의 라코토아리소아 마미 2단,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부모님, 남동생과 한국을 찾고 있다는 루마니아의 도브라니스 데니스 5단도 대회 관계자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