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요 기전 잇단 낙마, 스스로에게 실망감…모든 면에서 셰커 압도, 한국기사로 6번째 정상 등극
신진서는 8월 23일 중국 상하이 창닝구 쑨커별장에서 열린 제9회 응씨배 세계프로바둑선수권대회 결승3번기 제2국에서 중국의 셰커 9단을 상대로 226수 만에 백 불계승을 거두고 종합 전적 2-0으로 정상에 올랐다.
이로써 신진서는 2012년 7월 13세 입단 이후 11년 만에 통산 33번째 타이틀을 획득하며 역대 타이틀 순위 5위에 올랐고,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 횟수도 5회로 늘렸다.
#신진서 떨어진 자신감 회복
제9회 응씨배는 2020년에 대회가 시작되었으나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으로 일정이 많이 지연되다가 2023년 8월 23일 신진서 9단의 승리로 3년여의 긴 여정이 마무리되었다. 여타 기전은 온라인 대국으로 승부를 이어갔으나 응씨배는 주최 측에서 결승전만큼은 대면 대국으로 치르고 싶다는 의지가 강해 연기를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진서는 우승을 확정 지은 뒤 가진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긴장을 별로 안 할 줄 알았는데 막상 대국을 앞두고는 잠을 잘 자지 못했던 것 같다”며 “앞서 주요 대회 결승전에서 역전패를 많이 당하는 바람에 부담이 상당히 컸지만, 그동안 경험이 있으니 실패를 반복하지 말자고 다짐했다”고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결승전에 대해서는 “준비를 많이 했다.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을 다녀왔는데 다른 종목 선수들이 연습하는 것을 보면서 느낀 바가 컸다. 결승2국은 중반까지 순조롭게 잘 풀렸다고 생각했는데 우변에서 느슨하게 두면서 미세해졌다”며 “셰커 9단이 중앙 흑돌을 돌보지 않고 손을 다른 곳으로 돌렸는데 그때 (상대) 대마를 추궁하면서 이겼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신진서의 이번 응씨배 우승은 선수 개인으로나 한국과 중국이 양분하고 있는 세계바둑계 판도 면에서도 큰 의미를 지닐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신진서 개인으로서는 떨어진 자신감을 회복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신진서는 응씨배 결승을 앞두고 치른 주요 국제대회에서 번번이 낙마하며 팬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쉽게 우승할 것으로 예상됐던 란커배 결승에서 구쯔하오 9단에게 1국을 승리하고도 2~3국을 내리 패해 준우승에 그치면서 신진서는 스스로 정말 실망했다고 털어놓았다.
신진서는 “구쯔하오에게 지고 나서 정말 충격이 컸고 내 바둑이 끝났다는 생각도 했다. 마지막 3국은 큰 실수를 범해 역전을 허용하긴 했지만 100% 진 상황은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순간 승부를 놓아 버리고 말았다. 실수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어느 정도는 진전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자만이었다”고 돌아봤다.
신진서는 “주변 사람들이 많이 격려해줬고 다행히 팬들도 크게 비난하지 않아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마침 응씨배 결승전이라는 큰 대회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아픔을 떨쳐버리고 승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우승상금 연간 최고액 경신 기대
한국의 라이벌 중국에서도 이번 신진서의 응씨배 우승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신진서의 상대가 되기에 셰커는 모든 면에서 부족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셰커는 2020년 열렸던 응씨배 본선에서 양딩신, 커제, 이치리키 료 등을 연파하고 결승에 올랐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일정이 미뤄지면서 좋았던 기세와 실력이 희석됐다고 분석했다. 반면 신진서는 각종 세계기전에서 우승을 다투는 등 모든 면에서 셰커가 역부족이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바둑매체 예후바둑은 “셰커는 최선을 다했다. 전체적으로 내용도 나쁘지 않았다. 기회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신진서는 셰커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며 둘의 수준차를 인정했다.
이로써 신진서는 1988년 대회 출범 이래 조훈현-서봉수-유창혁-이창호-창하오-최철한-판팅위-탕웨이싱 다음 아홉 번째 응씨배 우승자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 기사로는 여섯 번째 우승이며 2회 연속 중국에 내주었던 우승컵을 되찾기도 했다.
한편 신진서는 우승상금 40만 달러(약 5억 4000만 원)를 획득함으로써 올해 12억 6200만 원의 상금을 기록하게 됐다. 4년 연속 10억 원을 넘겼으며, 자신이 2022년에 세웠던 연간 최고액 14억 4495만 원 상금 경신도 기대된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