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공부보단 실전형, ‘중꺾마’ 정신 실천중…기량 쑥쑥 김은지 장래 남자들과 세계타이틀 다툴 것”
2022년에도 LG배 예선을 통과해 최고령으로 본선에 진출했고, 지지옥션배에선 신사 쪽 마지막 주자로 출전해 숙녀팀 김채영-오유진-최정을 연달아 꺾으면서 신사들의 우승을 결정짓기도 했다. 요컨대 여전히 현역으로도 손색없다는 이야기다.
그런 조한승 9단이 요즘은 아마추어 대회장에 자주 얼굴을 내민다. 제자들의 시합 모습을 보러왔다는 그를 서울 송파구 SK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문체부장관배 전국학생바둑대회장에서 만나봤다.
#중요한 것은 타고난 승부감각
―제자 양성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10년 가까이 된 것 같다. 우연한 기회에 시작하게 됐는데 한종진 9단과 함께 ‘한종진 바둑도장’을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현재 프로를 목표로 하는 제자들이 25명, 초보 위주의 바둑교실반도 60명 정도 된다.”
―승부를 하는 입장에서 후학 양성으로 돌아서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랭킹이 이미 많이 내려왔다(웃음). 무엇보다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재미도 있고 만족한다.”
―유튜브에 김지석 9단이 “한승이 형처럼 공부를 안 하면서 성적을 내는 기사를 본 적이 없다”는 농담 반 진담 반의 화면이 있는데 혹시 알고 있는가.
“봤다. (웃으며) 뭐, 딱히 아니라고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는 기사들이 많은 것은 아니다. 내가 정말 열심히 한다고 인정하는 기사들은 박정환 9단, 신진서 9단, 변상일 9단 정도다. 이 친구들은 평소에도 바둑공부가 생활화돼 있다. 틈만 나면 사활문제라도 푼다. 그런데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이 꼭 성적으로 연결되는가는 솔직히 의문이다. 이창호 9단이나 이세돌 9단이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했을까. 하지만 그래도 정상에 올랐다. 노력도 중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타고난 승부감각이나 절대 지지 않으려는 마음 등이 아닐까 한다. 사실 얼마 전 중국 딩하오 9단이 LG배에서 우승하고 난 후 인공지능과 3000판을 뒀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 놀랐었다. 해본 분들은 알겠지만 인공지능을 상대로 스트레스 없이 대국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바둑에서 공부라는 것은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그럼 본인의 연구 스타일은 어땠는가.
“실전 위주였던 것 같다. 나는 실전을 통해 많이 배웠다. 다만 흔히들 바둑을 잘 두기 위해선 사활공부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나는 사활공부가 싫었다. 그래서 바둑이 세지 않았던 것 같다(웃음).”
#내게 입단동기 이세돌이란?
―입단동기가 은퇴한 이세돌 9단이다. 상대적으로 이 9단의 성적이 더 좋았는데 혹시 스트레스를 받거나 하진 않았을까.
“전혀 아니다. 시샘보다는 자극을 받았다. 또 도움도 됐다. 예를 들면 당시 내가 이창호 9단에게 10연패를 당하고 있었다. 정말 방법이 없었다. 요즘 같으면 집에 돌아와 인공지능으로 분석하면 패인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잘못 두었는지 즉각 알 수 있겠지만 당시엔 그렇지 않았다. 그냥 지고나면 '난 안 되는구나', '이창호 9단은 정말 신(神)인가 보다'라며 포기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런 이창호 9단에게 최철한 9단이 도전해 타이틀을 따내는 모습을 보고 정말 자극을 많이 받았다. 내가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최철한이 이창호 9단을 넘었으니, 나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세돌 9단이 잘나갈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한승 9단은 과거 기사들 사이에 ‘큰형님’이라 불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도 그런가.
“총각 때 밥을 많이 사줘서 그랬던 것 같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웃음).”
―혹시 바둑 행정 쪽으로 관심이 있지는 않은지.
“과거 대의원을 오래 해서 한국기원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하지만 행정 쪽은 제 능력 밖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현 총장님이 잘하고 있고, 개인적으로는 어려움도 많을 것이라 짐작된다. 하지만 한국기원이 더 잘되기 위해선 장기적으론 전문 경영인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한다.”
―현재 최정 9단과 김은지 6단이 2개의 타이틀을 놓고 승부를 벌이고 있다. 어떻게 예상하는가.
“김은지 6단의 기세가 대단하고 나이답지 않게 기량도 많이 올라왔다고 본다. 1국에서 나타났듯 아직은 역부족이겠지만, 수년 후엔 따라잡을 것으로 본다. 이미 자질로는 최정 9단 못지않아 장래 남자 기사들과 세계 타이틀을 다투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지지옥션배에선 숙녀팀이 김은지, 최정만을 남겨두고 있다. 어떻게 예상하는가.
“수적으론 우리가 우세하지만(현재 신사팀은 조한승 9단, 이창호 9단 등 6명이 남아 있다) 최정 9단, 김은지 6단이 워낙 강한 기사들이어서 안심이 되지 않는다. 그저 아직 숫자가 많다는 것에 의지하고 싶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