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보호 도움” vs “교정 기능 상실” 이견…사형제 폐지 전제? “국민 정서상 현실적으로 불가능” 주장도
법무부는 지난 8월 14일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신설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법무부는 “우리나라가 1997년 12월 사형집행 이후 현재까지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흉악범죄자에 대한 형 집행의 공백이 발생한다”며 “현행법상 무기형을 선고받은 경우에도 20년이 지나면 가석방 될 수 있어 국민 불안이 가중됐다”고 전했다. 이에 법무부는 가석방이 허용되는 종신형(상대적 종신형)과 가석방 없는 종신형(절대적 종신형)으로 구분하고, 무기형을 선고할 때 가석방 허용 여부를 함께 선고하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현행법은 수감 20년이 지나면 가석방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상대적 종신형만 채택하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가석방이 허용되지 않는 무기형이 도입되면 흉악범을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하는 실효적인 제도로 운영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사형제에 대한 대체형벌로 처음 논의되기 시작됐다. 다만 우리나라는 사형제를 유지한 채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추진 중이다. 대법원은 우리나라가 사형제를 그대로 유지한 채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사실상 반대 입장을 내비쳤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최근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실에 제출한 의견서에 따르면, 대법원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사형제 폐지를 전제로 논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원래 유럽과 미국 각 주가 사형제를 없앤 뒤 대체 형벌로 고안한 제도”라고 전했다. 대법원은 “사형 못지않게 위헌 논란이 있는 중한 형벌을 추가로 도입하는 것이며, 광범위한 의견수렴 및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형제 폐지를 전제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이론적으로 합리적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론적으로 사형제 폐지를 전제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하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다수의 국민들이 사형제 폐지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며 “사형제를 대체하는 형벌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차 교수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이 사형제 폐지의 전 단계”라며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운영하면서 국민들의 불안감을 안정시키고,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지금의 사형제와 같은 기능을 하니 사형제 폐지를 설득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종신형을 도입 중인 미국에서도 일부 주에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과 사형제를 병존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법관이 죄질에 따라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주는 것”이라며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형을 하지 않은 대신에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논의됐지만 요즘에는 묻지마 살인 등 흉악 범죄가 늘어나다 보니 사형 집행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며 “이런 여론 때문에 사형제를 폐지하고 도입을 하는 것보다 사형제는 그대로 두고 가석방없는 종신형을 도입을 논의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사형제 폐지 여부와 관계없이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 자체를 우려하는 의견도 많았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행 무기징역도 20년이 지나면 가석방 심사를 할 수는 있지만 심사를 할 수 있다는 것뿐이지 가석방을 해준다는 말은 아니다”라며 “재범 위험성이 있다면 가석방 대상자에 대한 위험성 평가나 심사를 엄격하게 해서 가석방을 안 시키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현행 제도 안에서도 가석방 대상자를 사회로 내보내지 않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가석방에 대한 판단을 사법부에 위임하고 있고, 재범 위험성에 대한 평가를 법원에 떠넘기는 형식이라 사법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느낌이다”라고 덧붙였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으로 교도소의 ‘교정’이라는 기능이 사라질 수 있어, 교도소 내 질서 확립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에 대해 반대하는 논평을 낸 천주교인권위원회의 장예정 활동가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수감자가 교도소에서 성찰을 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에 교정시설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교화의 의지가 없는 수용자가 늘어나면 교정 자체 업무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선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도입되면 교도소 내 교정 교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교정 질서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가석방이 없다는 것은 교정 교화를 포기하겠다는 의미인데,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기 어려운 상태에서 교도소에서 잘 지내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반면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범죄자가 가석방이 돼서 또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선량한 시민들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본다”며 “해당 개정안은 범죄자를 교화시키는 것에 목적을 두기보다 선량한 시민의 보호가 목적이다”라고 말했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으로 교도소에 오랫동안 수감되는 수감자가 많아져 교도소 과밀화가 더 심화될 수 있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법무부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전국 54개 교정시설 중 33곳(61.1%)이 수용 정원을 초과해 수용하고 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교도소가 과밀 수용으로 골치를 앓고 있는데 장기 수용자가 생기면 이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며 “수명이 길어져서 20대에 종신형을 선고받은 사람을 80년 동안 교도소에 수용해야 하는데 수용 공간은 어떻게 확보하고, 비용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등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가 부닥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차진아 교수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 받는 사람은 사형선고를 받을 정도의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적용이 될 것이라고 본다”면서 “현재 사형수들이 사실상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살고 있기 때문에 해당 법이 개정된다고 해서 무조건 과밀 수용 문제가 더 커진다고 단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차 교수는 “교도소가 혐오시설이다 보니 인근 주민들의 반대로 이전하거나 확장하는 것이 잘 안 되고 있는데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사형만큼은 아니지만 응보적 측면에서 피해자들과 피해자 유족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가해자의 처벌만으로 감정 상태나 일상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 및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책도 더 확대해야 한다고 전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절대적 종신형이 응보적 측면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중대 사건 피해자나 유족들의 감정 해소는 가해자를 엄중 처벌한다고만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특히 정신적 고통이 오래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정부에서 장기간 치료를 지원하는 등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범죄 피해에 대해 ‘운이 없어서 당했다’는 시선보다 하나의 국가 재난으로 간주해서 피해자 유족에 대한 경제적 보상의 범위를 넓히고 절차를 수월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또한 피해자 유족들이 범죄 피해로 입은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서비스나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피해자 사망 이후 유족들의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정신적인 회복을 위한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다”며 “지원제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 예산이 한정돼 있어 장기적으로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어렵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현역 흉기 난동의 희생자인 고 김혜빈 씨의 유족은 범죄 피해자를 돕는 보상 절차에 대해 제대로 안내받지 못해 거액의 병원비도 겨우 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관계자는 “가석방 없는 무기형이 신설되면 법에서 정한 형과 판사의 양형 판단에 따라 가석방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며 “현재 우리나라에는 사형제가 있기 때문에 사형제와 병존 가능한 형태로 가석방 없는 무기형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도소 과밀과 관련해서 또 다른 법무부 관계자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도입이 된다면 흉악 범죄자들에 한해서만 적용이 될 것이기 때문에 교도소 과밀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다”며 “사실 지금도 교도소가 과밀 상태라 교도소 신설을 대안으로 생각 중이지만 주민들 반발로 인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중장기적으로 계속 추진해야 할 사항”이라고 답했다.
법무부 산하 사단법인 한국범죄피해자지원중앙센터 관계자는 “피해자가 사망할 경우 유족 구조금이 지급되고, 피해자와 피해자 유족에 대한 치료비, 심리치료 등을 지원하고 있다”며 “요건만 맞으면 피해자와 피해자 유족에 대한 지원이 잘 갖춰져 있다고 생각하지만 기한 구분 없이 경제적‧심리적 지원을 꾸준히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법무부 산하단체인 전국범죄피해자지원연합회 관계자는 “유족구조금은 신청 절차가 복잡한 것은 아니지만, 제도상 구조대상에 따라 구조금 계산방식이 복잡하고 구조대상에서 일부 법적 요건을 완화하거나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해당 문제는 입법적 개선사항으로 오래전부터 법무부가 국회에 입법 개선을 요청한 상태지만 아직 국회에서 법률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건이 발생하면 전문가가 개입해 유족에게 적절한 맞춤형 지원을 하고 있으므로 제도의 어려움으로 구조를 받지 못하는 일은 없다”고 덧붙였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에 대한 개정안에 대한 입법예고 기간은 9월 25일까지이며, 이후 국무회의, 국회 심의·의결 등 최종 공포까지 거쳐야 할 과정이 남아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