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도 기각도 이상하지 않아…‘똘똘한 증거’ 하나가 영장 발부 관건”
이재명 대표는 그동안 언론을 향해 “증거도 없이 수사를 하고 있다”며 “증거를 내놓으라”고 비판해 왔다. 하지만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서를 살펴보면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 김인섭 씨 등 의혹 핵심 인물들의 진술증거가 상당해 보인다. 때문에 영장전담 재판부를 역임했던 법조인들은 ‘진술 증거를 뒷받침할 똘똘한 증거’가 영장 발부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다만 장기간 단식을 이어온 것은 영장을 발부하지 않을 이유로는 전혀 고려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일요신문은 영장전담 재판부 경험이 있는 전·현직 판사 3명에게 ‘관전 포인트’를 물어봤다.
#‘검사 사칭 사건’ 혐의에 포함 주목
검찰이 이 대표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은 ‘백현동 개발특혜 의혹’과 ‘쌍방울그룹 대북 송금 의혹’ 사건 관련이다. 표지까지 143페이지 분량의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검찰의 전략이 무엇인지 짚어낼 수 있다.
검찰은 이재명 대표가 성남시장으로 재직하던 중 백현동에 아파트를 짓는 과정에서 민간업자에게 각종 특혜를 몰아준 과정을 의심하고 있다. 성남도시개발공사는 사업에서 배제해 성남시에 200억 원 상당의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또 경기도지사 시절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북한에 방북 비용 등 800만 달러를 대신 내도록 했다고 판단해 뇌물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은 영장 심사에서 이 대표의 죄질이 무거워 구속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수사팀은 법원에 제출한 구속영장 청구서에서 적용된 혐의들이 모두 인정되면 이 대표에게 징역 11~36년 혹은 무기징역이 선고될 수 있다고 적시하기도 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이날 표결에 앞서 체포이유 설명 발언을 통해 ‘대북송금 의혹’ 사건 등을 거론하며 “이 사안 관련 구속된 사람이 21명이나 되고, 불구속 기소로 재판을 받는 이는 수없이 많다”며 “이들의 정점이 이재명 대표”라고 강조했다.
특히 법조계는 ‘검사 사칭 사건’을 구속영장 청구 혐의에 포함시킨 점을 주목하고 있다. 검찰은 2019년 2월 ‘검사 사칭 사건’과 관련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받을 당시 증인에게 연락해 허위 증언을 요구한 혐의(위증교사)도 적용했는데, 이는 죄질이 무겁기 때문이 아니라 ‘구속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이다. 검찰은 이 밖에도 ‘진술 회유’ 정황과 측근들의 ‘사법 방해 의혹’도 포함시켰다. 이 대표가 백현동 개발사업 업무를 담당한 도시계획과 공무원들에게 접촉해 ‘국토부 협박이 있었던 것처럼 진술해 달라’고 회유·압박한 정황이 있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특수 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 출신 변호사는 “야당의 대표이기에 도주의 우려는 없다고 보는 게 맞는데, 그렇다면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어야 한다”며 “위증교사나 진술 회유는 그 자체로 양형이 높지 않지만 대신 구속을 해야 할 이유로 검찰이 강조하기 위해 포함시킨 것 같다.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고려한 전술적인 판단”이라고 풀이했다.
#"판사가 배짱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
영장전담 재판부 근무 경험이 있는 법조인 3명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영장 발부 가능성을 ‘반반’이라고 설명했다. 사건 기록을 보지 못했기에 언론 보도에 나온 내용만을 전제로 “구속해도 이상하지 않고, 기각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전망한 것이다.
판사 출신의 소형 로펌의 대표 변호사는 “구속영장 청구서에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 등 핵심 관계자들의 진술증거들을 나열해 증거로 제시했다면, 구속영장 발부를 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면서도 “다만 증거인멸 시도나 말 맞추기 시도를 한 부분들이 있어서 이에 대해 이재명 대표 측이 혐의를 부인하면 영장을 발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서울고등법원의 부장판사는 “구속영장 청구서를 100페이지가 넘을 정도로 길게 쓰는 것 자체가 검찰이 ‘얼마나 범죄혐의가 중한지’를 강조하려 한 것 아니겠냐”며 “그럼에도 판사라면 혐의가 인정될 만큼 핵심 증거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혐의가 인정되면 발부하는 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다만 그는 “범죄 혐의가 많다는 것은 다툼의 여지가 있을 수 있어 피의자인 이재명 대표에게 유리할 수도 있지만, 거꾸로 그 중 핵심적인 범죄 혐의만 입증이 되어도 법원은 기각하기가 어렵다”며 “검찰이 언론에 공개하지 않은 상세한 증거들이 꽤 있을 수 있다. 이재명 대표 측이 언론에 밝힌 것처럼 무조건 ‘무혐의’를 주장하는데 거꾸로 검찰이 똘똘한 핵심 증거를 하나라도 공개하면 이 대표에게 엄청 불리한 분위기로 흘러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치적인 성향이 반영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었다. 역시 영장전담 판사 경험이 있는 한 대형로펌 파트너 변호사는 “진술 증거라도 핵심적인 여러 진술들이 하나의 진실을 향하고 있다면 영장은 발부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야당 대표를 구속하는 것은 판사 한 명이 판단하기에 쉬운 일이 아니고, 야당의 정치적인 역할과 그중에서도 대표의 의미를 고민한다면 기각을 결정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그는 개인적인 판단을 전제로 “야당 대표라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한다면 올바른 판사의 모습은 아닐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법조인 3명 모두 가능성에 대해서는 ‘반반’이라면서도 단식이 끼칠 영향은 0%라고 잘라 말했다. 이재명 대표가 20일 넘게 진행 중인 ‘단식’에 대해서는 3명 모두 단호하게 “영향을 전혀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선 현직 판사는 “건강상의 문제로 병원에 입원했다고 해도, 구치소에서 병원을 가거나 치료를 받으면 될 문제”라며 “정치적인 메시지를 위해 단식을 했다고 해도 이에 흔들릴 판사는 전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차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 시선에서 이번 사건은 구속되는 게 당연히 맞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문제는 영장전담 판사가 야당 대표를 구속하는, 헌정사에 있어 사상 초유의 사건을 결정할 수 있는 배짱이 있느냐인데 그만한 배짱이 없다면 기각을 할 것이고 배짱이 있다면 영장을 발부하지 않겠냐”고 전망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