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계 등 공천 불안이 가결표로 이어진 듯…친명-비명 내홍 폭발, 이 대표엔 반전 기회 될 수도
9월 21일 국회 본회의에 정치권 모든 이목이 쏠렸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이 예정됐기 때문이다. 앞서 이재명 대표는 단식 19일 만인 9월 18일 오전 7시 10분쯤 119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됐다. 그로부터 2시간 후 검찰은 이 대표에 대해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과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을 묶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단식이라는 사정이 구속영장 청구에 고려될 수 없다는 ‘원칙론’을 앞세웠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9월 18일 국회 본회의에 출석하면서 “수사 받던 피의자가 단식해서, 자해한다고 사법 시스템이 정지되는 선례가 만들어지면 안 된다. 그럼 앞으로 잡범들도 다 이렇게 하지 않겠나”라고 밝혔다.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표결 결과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비명(비이재명)계는 이 대표가 지난 6월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한 만큼 가결표를 던져 법원의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친명(친이재명)계에서는 검찰의 정치적 노림수가 담긴 표적 수사이기 때문에 법원으로 넘어가기 전 국회에서 부결시켜야 한다고 반박했다. 민주당과 이 대표가 검찰에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도록 체포동의안 표결이 필요 없는 비회기 기간을 마련했었는데, 검찰이 당의 분열을 야기하기 위해 굳이 정기국회 회기 중에 영장을 청구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정치권에선 이 대표의 단식 투쟁이 내부 단속 효과로 이어졌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면서 부결 가능성이 다소 우위를 점했다. 하지만 표결 투표함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총 투표 의원 295명 중 찬성 149표, 반대 136표, 기권 6표, 무효 4표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것. 체포동의안 가결 요건인 출석의원 과반(148명)에 단 1표 넘긴 턱걸이였다.
국민의힘과 정의당은 표결에 앞서 가결을 당론으로 정했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 110명과 정의당 의원 6명,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양향자 한국의희망 의원, 하영제·황보승희 무소속 의원이 찬성표를 던졌다고 가정하면 민주당에서 이탈표가 최소 29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후 민주당은 격랑에 빠져들었다. 9월 21일 오전부터 여의도 국회 앞에 모여 부결 촉구 집회를 열고 있던 친명 지지자들은 체포동의안 가결 소식이 전해지자 구속영장을 청구한 검찰과 비명계 의원들을 향해 분노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일부 지지자들이 국회 진입을 시도해 이를 막는 경찰과 실랑이가 벌어져 국회의사당역 6번 출입구 셔터가 손상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후 친명 지지자들은 국회와 민주당 당사 앞에서 심야 집회를 이어갔다.
소셜미디어(SNS) 등에서는 가결표를 던진 것으로 의심되는 민주당 의원들의 색출 명단이 등장했다. 앞서 지난 2월 이 대표에 대한 첫 체포동의안 표결 때도 부결은 됐지만 이탈표가 예상보다 많이 나와 이 대표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미의 이른바 ‘수박’ 의원 명단이 공공연히 나돈 바 있다.
이번 체포동의안 통과로 이재명 대표가 리더십에 치명타를 입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본회의 표결 하루 전날 이 대표가 직접 ‘부결’ 투표를 호소했음에도 20명이 넘는 민주당 의원들이 가결표를 행사했다는 점이 뼈아프다. 이 대표는 9월 20일 자신의 SNS를 통해 “명백히 불법 부당한 이번 체포동의안의 가결은 정치검찰의 공작수사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며 “검찰 독재의 폭주기관차를 국회 앞에서 멈춰 세워달라”고 공개 요청했다.
민주당 안팎에선 이 대표의 ‘부결 투표’ 공개 요청이 지난 6월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는 본인의 기존 입장을 번복해 오히려 역효과를 불렀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가결에 투표하려던 의원들의 마음을 돌리지도 못했고, 부결을 마음먹었던 의원들까지도 흔들었다는 것이다. 실제 비명계 한 의원은 체포동의안 표결 당일인 9월 21일 오전 통화에서 “부결될 거라고 봤는데 기류가 변했다. 이 대표의 공개 호소 이후 마음을 바꾼 의원들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대표적 ‘비명계’인 이원욱 의원은 9월 21일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 인터뷰에서 “정치인의 말은 법과 같다.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더니 이제 부결해 달라 요청하는 걸 보면서 황당하고 당황스러웠다”며 “제1야당 대표가 약속을 그렇게 뒤집어버리니 당에 대한 신뢰도 추락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친명계 내부에서도 이 대표가 ‘부결’ 메시지를 내는 것에 우려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찬대 최고위원은 같은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강하게 반대하지는 않았다”면서도 “나는 ‘(이 대표의 부결 요청) 입장을 안 내는 게 낫지 않겠나’라는 생각이었다”라고 전했다.
‘부결 투표’를 당론으로 정하지 않은 당 지도부의 결정도 패착이었다는 지적이다. 9월 21일 본회의에서는 이 대표 체포동의안 외에도 민주당이 주도해 상정한 ‘한덕수 국무총리 해임건의안’과 ‘안동완 검사 탄핵소추안’도 함께 표결에 부쳐졌다. 한 총리 해임건의안과 안 검사 탄핵소추안은 각각 가결 175표, 180표로 가결됐다. 두 안건 모두 헌정사 최초의 일이다. 이는 민주당이 9월 16일 비상의원총회를 통해 결의문에 담고, 찬성 투표를 당론으로 정해 일사불란하게 이뤄졌다.
당내에서는 이 대표 체포동의안 부결 투표도 당론으로 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당 지도부는 논의 끝에 결국 당론으로 채택하지는 않았다. 앞서 지난 2월 첫 번째 체포동의안 표결 때도 당 지도부는 의원들의 자율 투표에 맡겼다.
안민석 의원은 9월 2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지도부가 안일했다. 당론을 정하지 못한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박광온 원내대표가 왜 당론으로 정하지 못했는지 납득할 수 없다”며 “어제 그 상황은 가결파의 차도살인(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이는 것)이었다. 국민의힘을 빌어서 대표를 제거하겠다는 차도살인 본질을 띠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에선 이번 체포동의안 표결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난 2월 1차 때와 큰 차이가 없다는 분석도 있다. 당시에는 총 투표 의원 297명 중 찬성 139표, 반대 138표, 기권 9표, 무효 11표로 부결됐다. 지난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졌다고 예상되는 이재명 대표와 윤관석 의원이 이번 표결에는 불참한 것을 고려하면 부결은 136명으로 변동이 없다.
반면 기권과 무효는 지난 2월 표결 대비 이번 표결에서 각각 3표와 7표가 줄었다. 이들 표가 찬성으로 돌아서면서 139표에서 149표로 늘어나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2월 표결과 이번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진 의원들의 결정은 크게 바뀌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첫 번째 표결에서 찬성은 못하고 눈치를 봤던 기권·무효표가 움직인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들 의원들이 찬성으로 돌아선 것은 결국 공천권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앞서 관계자는 “지난 2월 체포동의안 표결 때만 해도 차기 총선이 1년 넘게 남아있었다. 민주당 내 권력의 중심추가 언제든 바뀔 수 있을 거라는 예측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반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꼭 비명계가 아니라도 일부 의원들은 이 대표 체제 하에서 공천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재명 지도부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생각에 가결표를 행사한 것 같다”고 전했다.
체포동의안 가결로 친명계와 비명계 갈등은 폭발할 것으로 점쳐진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오히려 이재명 대표에게 반전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민주당 한 친명 인사는 “이재명 대표는 대선주자로 뛸 때, 당대표 취임한 뒤 민주당 통합을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일부 비명계는 이재명 지도부를 끊임없이 흔들었고,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가결표까지 던졌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이 대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켜야 한다는 응답이 민주당 지지층에서 80%를 넘었다.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은 당원들의 뜻을 거스른 것”이라며 “이제는 이 대표가 눈치 보지 않고 각을 선명하게 세워 본인이 원하는 당내 개혁 문제를 해결해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민주당 최고위원회는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투표를 ‘해당 행위’라고 규정했다.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9월 21일 오후 의총을 연 뒤 “민주당은 최고위와 의총, 중앙위원 규탄대회에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는 부당한 정치탄압으로 규정했다”며 “그러하기에 오늘 이 대표 체포동의안에 대한 본회의 가결 투표는 용납할 수 없는 명백한 해당 행위”라고 지적했다.
박광온 원내대표 등 원내 지도부는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에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기로 결정했다. 이소영 원내대변인은 “원내대표가 당 지도부 최고위원의 일원으로서 의원들에게 부결 투표를 요청했다”며 “(의원들을) 설득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런 설득에 따른 결론이 맺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고 스스로 판단해 사의를 결정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당내 혼란 상황을 서둘러 수습하기 위해 후임 원내대표를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오는 9월 28일 전 선출하기로 했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 내 계파 갈등이 본격화되고 있는 만큼 신임 원내대표는 친명계 핵심 인사 중에서 나오지 않겠느냐고 전망하고 있다. 그럴 경우 이재명 지도부는 이전보다 더욱 공고해질 수 있다.
비명계에서도 본격적으로 이 대표를 향해 칼날을 겨눌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지난 2월 첫 번째 체포동의안 표결 때는 가결표를 던진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본인은 가결표를 행사했다고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체포동의안 가결 이후 열린 의총에서는 설훈 김종민 의원 등이 발언대에 올라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이어 김종민 의원은 현 지도부의 전원 사퇴 후 통합형 비상대책위원회를 띄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9월 22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 인터뷰에서 “박광온 원내대표 혼자 책임지고 혼자 욕먹을 일이 아니다”라며 “지도부가 새로운 통합적인 비대위, 혁신형 비대위로 가자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 정치 경험 많은 중진 의원들이 협의체라도 만들어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책임 있게 논의해서 민주당 총의를 모아나가는 변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표가 당대표직을 유지하고 지도부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우선 법원 영장실질심사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 서울중앙지법은 이 대표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9월 26일 진행한다고 밝혔다. 영장심사 심리는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맡는다. 다만 단식을 이어가는 이 대표가 건강상태 등을 이유로 기일 연기를 요청하면, 실질심사가 연기될 가능성도 있다.
이 대표의 영장실질심사를 두고도 영장이 발부될지, 기각될지 의견이 분분하다. 법원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하면 이 대표는 구치소 수감 절차를 밟게 된다. 친명계에서는 이 대표가 구속이 되더라도 당대표 사퇴는 절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의 또 다른 친명계 인사는 “이 대표나 최고위에서는 ‘옥중 결재’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당대표직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비대위 등 다른 지도부 체제로 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검찰 출신 법조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검찰의 구속영장을 보면 발부·기각 여부가 가늠이 됐다. 그런데 최근에는 법원도 정치권의 눈치를 많이 보는지 예측할 수가 없다”며 “체포동의안 표결 없이 야당 대표의 구속영장이 넘어왔다면 법원도 구속영장 발부에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마저 당대표 체포동의안에 가결을 던졌으니, 법원도 구속영장 발부에 상대적으로 부담이 없을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반대로 구속영장이 기각될 경우 이 대표 입지는 오히려 굳건해지고, 윤석열 정부와 검찰이 불똥을 맞을 수 있다. 이 대표를 검찰이 총동원돼 2년을 넘게 수사했는데 구속시킬 만큼의 결과물을 내놓지 못한 것이 돼 수사의 정당성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앞서의 민주당 관계자는 “이재명 대표는 과거 경기도지사 시절 허위사실공표 혐의 재판에서 일부 유죄가 대법원까지 가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되며 정치생명의 죽음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났다. 그 이후 이 대표는 대선주자로 발돋움했다. 이번에도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이 대표의 몸집은 더욱 커질 수도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이재명 대표는 체포동의안이 가결되고 다음날인 9월 22일 입장문을 통해 “이재명을 넘어 민주당과 민주주의를, 국민과 나라를 지켜 달라”며 “검사 독재정권의 민주주의와 민생, 평화 파괴를 막을 수 있도록 민주당에 힘을 모아 달라”고 호소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