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사도 밀어준 ‘노 개런티’ 참여 화제…“신인배우 홍사빈 가리지 않으려 노력”
‘아빠가 된 귀공자’는 자신의 말대로 ‘팔불출’이 따로 없었다. 이제야 목을 조금씩 가누기 시작하는 아기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사진을 기자에게 보여준 배우 송중기(38)는 “일주일마다 애기가 크더라고요. 볼 때마다 달라져요. 너무 귀엽죠?”라며 아들 바보의 면모를 뽐냈다. 소녀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던 꽃미남 슈퍼스타에서 이제는 가족을 책임지는 든든한 가장으로, 그리고 신작 ‘화란’에서는 하드보일드 누아르 속 범죄 조직의 중간 보스로. 인간 송중기와 배우 송중기는 모두 확연한 변화를 완성해 낸 것으로 보였다.
“처음엔 우연히 대본을 보게 된 거였는데 보자마자 ‘어라?’ 너무 좋은 거죠(웃음). 당장 하고 싶단 말씀을 드렸는데 제작사인 사나이픽처스 대표님이 절 안 시켜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더라니까요. 또 다른 문제는 매니지먼트 대표님이 또 안 시켜주실 것 같아서(웃음). 매니지먼트는 수익성을 따져야 하는 구조인데 제가 크지 않은 작품에, 심지어 돈도 안 받고 출연하겠다고 하면 안 된다 하실 것 같은 거예요. 그런데 대본을 보시더니 ‘중기야, 이거 해봐야 할 것 같은데?’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형, 이건 상업영화 공식을 따르는 영화가 아니어서 제작비를 많이 쓰면 안 될 것 같은데, 개런티 없이 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했더니 제 말에 동의해주셨어요. 그래서 그렇게 진행이 된 거죠(웃음).”
송중기의 신작 ‘화란’은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년 연규(홍사빈 분)가 조직의 중간 보스 치건을 만나 위태로운 세계에 함께하게 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가 맡은 치건은 연규와 같은 마을에서 자랐지만 일찍이 세상이 지옥이라는 것을 깨닫고 범죄 조직의 중간 보스가 돼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온 인물이다. 이복동생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 휘말렸다가 거액의 합의금을 마련해야 하는 위기에 놓인 연규를 도와준 뒤 자신의 부하로 들인 치건은 연규를 믿고 이끌어주는 형 같은 존재로서 그를 지탱해주기도 한다. 극 중에서 이런 둘의 관계성은 극 밖에선 조금 다른 모습을 띠었다며 송중기는 웃음을 터뜨렸다. 치건과 달리 현실에서는 자신이 오히려 홍사빈을 따라가려 했다는 것.
“아무래도 제일 많이 신경을 쓴 건 홍사빈이란 배우가 처음 시작하는 친구라는 점, 그리고 이 영화의 무조건적인 메인은 홍사빈 씨가 맡은 연규이기 때문에 연규의 감정에 따라 플롯이 진행돼야 한다는 점이었죠. 그런데 홍사빈 씨는 대중에게 인사를 드리는, 얼굴을 알리는 친구고 저는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높기 때문에 제가 절대 메인이 아닌데도 현실적인 부분에 있어서 제 인지도가 이 친구의 플롯을 망칠까봐 겁났어요. 그래서 사빈 씨가 어떻게 톤을 맞춰 왔는지를 보고 그것에 맞게 내가 따라가자, 액션을 하면 난 리액션만 하자, 아무 것도 하지 말자, 사빈이만 따라가자 그랬죠(웃음). 그런데 저도 야망이 있는 배우다 보니 자꾸만 힘을 주려고 하더라고요(웃음).”
2018년에 데뷔해 아직 대중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신인 배우를 가리지 않기 위해 송중기는 이번 작품을 통해 연기에서 힘을 빼는 법을 배워갔다고도 덧붙였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그의 차기작 ‘로기완’이나 ‘보고타’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송중기란 배우가 가진 익숙한 색채와 힘을 조금씩 버려 나갔다. 이번 ‘화란’에서 이전까지의 그에게선 보기 어려웠던 날 것 그대로의 얼굴을 내놓은 것도 그런 도전의 연장선이었다고.
“제 얼굴에 어릴 때 까불다가 다쳐서 생긴 실제 상처가 있어요. 원래는 메이크업할 때 커버했었는데 이번엔 분장팀에서 ‘중기 씨, 실제 상처가 있던데 음영 줘서 살려도 돼?’하시더라고요. 맨날 가리던 걸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까 ‘너무 좋은 생각인데요?’하고 바로 하게 됐죠(웃음). 외적으로 치건이나 연규는 둘 다 가정 학대를 받은 아픔을 공유하는데 그걸 외적으로 보여주는 장치가 바로 치건이의 찢어진 귀와 연규의 화분에 찔린 상처예요. 저는 오른쪽, 연규는 왼쪽에 상처가 있는데 그 둘의 프로필을 한 번에 잡았을 때 둘의 상처가 모두 보이길 바란 계산이 들어간 부분이죠(웃음).”
주인공이 아니지만 주인공 같은 부담과 책임감을 함께 가져야 했던 송중기는 이번 작품에서 ‘노 개런티’로 참여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돈 받는 만큼 일한다”는 우스갯소리를 꺼내놓는 배우들도 적지 않은 만큼 송중기 역시 어느 정도는 거액의 출연료에서 비롯되는 어깨 위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순간도 있지 않았을까. 그 질문에 송중기는 “그게 또 개런티를 안 받았다고 해서 내려지는 게 아니더라”라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작품의 주인공은 제가 아니고 사빈 씨가 주인공이지만 아무래도 제가 작품 홍보나 소개할 때 맡아야 하는 몫들이 여전히 있잖아요. 계속 ‘송중기, 개런티 안 받았다’ 기사가 나서 지금 대본 주시는 제작사 대표님들이 ‘야 저기선 안 받고 여기선 받냐’고 뭐라 하시는데(웃음). 이 말 꼭 써주세요. 저 개런티 받을 거예요, 많이 받을 거예요(웃음)! 결국 책임감 문제는 내려놓으려 한다고 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 것 같아요. 당연히 제가 가져야 하는 거니까요. 이번 ‘화란’도 그런 면에서 제게 정말 여러 가지 의미가 있어요. 제가 맡은 대로 진정성 있게 좋은 소개를 해서 많은 분들이 보시고, 그분들이 제게 피드백을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런 책임감 있는 배우로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데 있어 그의 주변 환경 변화가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예상을 해본다. 둘로 시작해 셋이 된 송중기의 가족, 특히 그의 아내인 케이티 루이즈 사운더스의 이야기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2002년 아역 배우로 데뷔해 송중기보다 ‘선배’인 아내가 본격적인 해외 활동을 계획 중인 그에게 안팎으로 크고 작은 도움을 줬을 법도 했다. 이에 대해 송중기는 아내 케이티가 ‘업계의 고충을 나누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동료’보단 ‘현명한 조언자이자 가정의 동반자’로서 자신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내와 저는 이쪽 업계 얘기를 서로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에요. 저 같은 경우도 ‘화란’으로 칸 영화제에 가긴 했지만 제 아내는 이미 저보다 훨씬 더 큰 영화제를 다 갔다 온 분이어서요. 그냥 제게 ‘들뜨지 말고, 까불지 말고, 잘하고 와’ 그 말만 해줬죠. 그런데 저는 가서 또 신나서 들떠가지고 막(웃음). 제가 BBC 드라마 오디션에 도전했었다고 말씀드렸었는데 사실 해외 오디션은 지금도 계속 보고 있어요. 앞서 많이 떨어졌거든요(웃음). 주변에서 제 아내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도전을 하냐는 말씀을 해주시는데 사실 그전부터 도전했던 거예요. 저는 해외에서 거창한 역할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기본적으로 그런 욕심이 많거든요. 배우로서 지루해지고 싶지 않은, 그런 욕심이 있는 것 같아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