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 위해 슬롯 반납·화물 사업 매각 고려 “인력 조정 불가피” 관측…대한항공 “구조조정 논하긴 일러”
오는 10월 말 대한항공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시정조치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와 유럽에서 중복으로 운영하는 4개 노선의 슬롯을 EU에 반납하고 아시아나 화물사업부를 매각하는 안을 시정조치안에 담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5월 EU 집행위는 대한항공에 중간 심사보고서를 보내 유럽 전 노선에서 화물 운송 서비스 경쟁이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과 파리, 프랑크푸르트, 로마, 바르셀로나 간 노선에서 승객 운송 서비스 경쟁이 위축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EU 집행위는 대한항공에 경쟁제한 우려 해소 방안을 담은 시정조치 방안을 제출하라고 통보했다. 지난해 매출액 기준 양사의 합산 한국~유럽 노선 항공화물 점유율은 59.6%다.
이에 대해 EU 집행위 관계자는 “6월에 (양사의 합병과 관련한) 심층조사를 중단했다. 당사자들이 정보를 제공하면 (심층조사가) 다시 시작되고 그에 따른 위원회의 결정 기간이 조정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대한항공이 해당 내용을 담은 시정조치안을 제출하면 EU가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이윤철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합병하면 유럽 항공사들이 아시아 지역의 비중을 높이기 쉽지 않아 화주들의 운임 단가에 경쟁 제한성이 생긴다는 것이 EU 입장이다. 하지만 사실 우리나라 정도 규모의 국가에선 대형 항공사가 하나라 EU 주장은 억지인 면이 없지 않았다”며 “화물사업부 매각안까지 내놓았는데도 승인하지 않는 것은 처음부터 승인할 의도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시아나 내부적으로는 고용 유지 여부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슬롯 조정에 따라 객실 승무원, 조종사 등의 근무 여건이 달라질 수밖에 없어서다. 대한항공은 EU, 미국, 일본을 제외한 11개국의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다수 슬롯을 이전키로 했다. 대표적으로 대한한공과 아시아나는 중국에서 보유한 전체 노선 슬롯의 30% 수준인 슬롯 46개를 반납하기로 했다. 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보유한 영국 런던 히스로공항 슬롯 17개 중 7개를 영국 항공사 버진애틀랜틱항공에 넘기기로 했다.
아시아나 노동조합 한 관계자는 “쉽게 말해 물건을 판매하는 판로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인력 구조조정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운항 승무원, 캐빈 승무원, 정비사, 일반 관리 직원 등 항공기 1대 당 필요한 필수 인력 전부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아시아나 조종사노조 한 관계자는 “장거리 위주의 아시아나 슬롯을 많이 내놓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나 전체 조종사 고용 유지가 어려워질 것 같다는 예상이 나온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아시아나 화물사업부 매각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항공업계에서는 아시아나 화물사업부를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인수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지난해 아시아나의 화물사업 매출은 약 3조 원이다. 이윤철 교수는 “기업이 자체 자금으로 인수하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사모펀드가 단독으로 나서거나 사모펀드와 항공사가 컨소시엄을 맺는 등 여러 조합이 나올 듯하다”고 내다봤다.
사모펀드 특성상 전원 고용 보장이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화물사업부 매각으로 근무여건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직원들은 적지 않다. 아시아나 노조에 따르면 본사에서 근무하는 화물 관련 일반 직원은 300~400명 정도다. 아시아나는 보잉 B747F 10대와 B767F 1대 등 총 11대의 화물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다. 전체 1400명 정도의 조종사 중 B747F를 모는 조종사는 200명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시아나의 완전자회사 아시아나에어포트도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아시아나에어포트는 지상, 화물, 항공기 운항정비 등 항공 운영지원 서비스를 하는 회사다. 아시아나에어포트 노조에 따르면 아시아나에어포트에서 아시아나 화물을 담당하는 인원은 아시아나에어포트 전체 직원 중 25% 정도다. 아시아나에어포트 노조 한 관계자는 “화물사업부가 매각되면 기존에 아시아나 화물 사업을 담당하던 직원들을 지상조업 등 업무로 배치해야 한다. 처우나 근무 환경이 변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앞서 2020년 11월 여의도 전경련 컨퍼런스센터에서 진행된 ‘한미재계회의’ 행사 참석 후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구조조정 계획은 없다”며 “모든 직원을 품고 가족으로 맞이해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합병 성사를 위해 대한항공이 ‘차와 포’를 떼는 행보를 보이면서 구조조정 없는 인수합병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아시아나 조종사노조는 지난 9월 26일 성명서를 내고 “대한항공이 반납한 슬롯에 따른 아시아나의 영업력 부족과 적자를 그대로 두겠느냐”며 “대한항공이 그 많은 적자를 감수하고 아시아나 직원들에게 동일한 고용조건을 보장하리라는 감성에 젖은 아시아나 직원들은 없다”고 비판했다.
상황이 이렇자 내부에서는 합병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아시아나노조는 지난 9월 25일 성명서를 통해 “영국노선 반납에 이어 화물사업부 전체 매각, 유럽 주요 노선 반납은 사실상 아시아나의 해체를 의미한다”며 “항공주권을 포기하는 기업결합을 즉각 중단하기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아시아나 조종사노조도 성명서를 통해 “현 시간부로 아시아나와 대한항공의 인수합병을 공식 반대한다”며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국익에 반하는 매국적인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채권단의 행태를 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대한항공 관계자는 “EU 경쟁당국과 경쟁제한성 완화를 위한 시정조치안을 면밀히 협의하고 있다. 늦어도 10월 말까지는 시정조치안을 확정해 제출할 계획이다. 다만 시정조치안 세부 내용은 경쟁당국 지침상 밝히기 어렵다”며 “구조조정은 이야기하기 이른 내용 같다”고 했다. 아시아나 관계자는 “피인수자라 별도의 입장은 없다”고 답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