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파킹’ ‘줄행랑’ 싸늘한 민심에 여당도 비토 기류…보궐선거 완패 후 지명철회 움직임에 결국 ‘백기’
#‘주식 파킹’ 논란부터 ‘김행랑’까지
9월 13일 대통령실은 여가부 장관에 김행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을 임명했다. 대통령실은 “(김 후보자는) 언론, 정당, 공공기관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뛰어난 소통능력을 겸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는 지명 직후 구설에 휘말렸다. 자신이 창업한 회사 소셜뉴스(위키트리 운영사)의 주식을 ‘파킹’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주식 파킹은 자신의 주식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 놓는 행위를 말한다. 김 후보자는 2013년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되면서 소셜뉴스 주식을 백지신탁하는 대신 지인과 가족에게 넘겼고, 2018년 되샀던 것으로 나타났다.
김 후보자의 오락가락 해명은 논란을 부추겼다. 처음 의혹이 제기됐을 때 김 후보자는 공동창업자에게 본인 주식을 전량 매각했다고 했다. 그러나 보유 주식을 시누이에게 판매한 정황이 드러났다. 그러자 김 후보자는 9월 22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10년 전 일이기 때문에 착각했다고 정정했다.
이후 김 후보자는 △위키트리 경영 문제 △성차별적 발언 △김건희 여사와의 친분설 △여성가족부 인사청문회 자료 제출거부 및 중도 퇴장 논란 등으로 뭇매를 맞았다.
김 후보자가 부회장으로 있었던 위키트리 의혹은 고구마 줄기처럼 끊임없이 나왔다. 먼저 위키트리가 ‘스팀잇’ 가상화폐(코인)를 더 많이 받기 위해 어뷰징과 선정적인 보도를 했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당시 위키트리는 자사 기사를 코인 발행 업체인 스팀잇에 제공했고, 스팀잇이 발행하는 코인인 ‘스팀달러’를 받았다.
위키트리는 2018년 2월부터 2019년 3월까지 스팀잇에 약 700건의 게시글을 올렸다. 게시글은 위키트리 사이트에 올라온 기사들이었다. 내용을 보면 온라인 커뮤니티, SNS 글 등을 그대로 옮긴 기사였다. ‘여자친구와 첫 경험 직후 남친이 동기 단톡방에 한 말’ 등 선정적인 제목을 단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김 후보자 이름으로 나온 기사 중에는 ‘여성들이 문제’ ‘여성이 예뻐야 남자가 반한다’ 등 여성에 대한 편견이 담긴 기사들도 있었다. 이에 대해 김 후보자는 “위키트리는 기존 미디어와는 완전히 다르다”며 “시민기자 계정을 없애면서 많은 기사가 기존 임직원들의 계정으로 분산됐다”고 반박했다.
직원들의 임금을 체불한 사실도 드러났다. 김 후보자가 부회장으로 있던 2018년 위키트리 운영사인 소셜뉴스를 상대로 4건의 임금 체불 진정이 있었다. 2019년에도 1건의 임금 체불 진정이 고용노동부에 접수됐다. 당시 소셜뉴스는 약 72만 원의 임금, 연차수당 약 112만 원 등을 체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후보자의 과거 발언도 도마 위에 올랐다. 2012년 김 후보자는 위키트리 유튜브 방송에서 “낙태가 금지된 필리핀에서는 한국인 남자들이 필리핀 여자를 취하고 도망쳐도 코피노(한국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다 낳는다”며 “너무 가난하거나 강간을 당해 임신을 원치 않을 경우에도 우리가 모두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톨러런스(관용)가 있으면 여자가 어떻게든 아이를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를 놓고 여가부 장관으로서의 자질 시비가 일었다.
김건희 여사와의 관계도 검증 대상이 됐다. 김 후보자는 김건희 여사와 20년 친구라는 의혹을 받았다. 처음 의혹이 제기됐을 때인 9월 14일 김 후보자는 “가짜뉴스”라며 “여사님과 나는 지연, 학연, 사회경력에서 겹치는 데가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김 후보자가 부회장으로 있었던 위키트리가 김 여사의 ‘코바나컨텐츠’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전시회를 공동 주최하거나 주관했다는 점이 언론 보도로 드러났다. 2013년 12월 2일 김 여사와 같은 전시회에 참석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10월 5일 야권은 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일제히 공세를 펼쳤다. 청문회에서 민주당 소속 권인숙 여성가족위원장이 김 후보자에게 “그런 식으로 할 거면 사퇴하든지”라고 하자 김 후보자와 국민의힘 위원들이 동반 퇴장하며 청문회는 파행됐다. 민주당 단독 의결로 10월 6일 청문회가 재개됐지만, 김 후보자는 끝내 출석하지 않았다.
이후 여성가족위원회(여가위) 야당 간사인 신현영 민주당 의원은 이른바 ‘김행랑 방지법’을 발의했다. 이는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인 임명직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도중 퇴장하면 후보직에서 사퇴한 것으로 간주하는 법안이다. 국민의힘은 상임위원장의 중립 의무를 명문화한 이른바 ‘권인숙 방지법’을 발의하겠다고 맞섰다.
#사퇴 방아쇠 당긴 보궐선거 참패
인사청문회 전만 하더라도 정치권에선 민주당이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더라도 윤 대통령이 김 후보자 지명을 강행할 것이란 관측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김 후보자에 대한 여론이 워낙에 싸늘하고, 여권 내에서조차 비토 기류가 확산되자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대통령실은 인사청문회 일주일이 지날 때까지 인사청문보고서 재송부 요청을 하지 않았다. 그동안 2~3일 기간을 둔 뒤 재송부 요청을 한 다음 임명 강행을 한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대통령실의 고민이 엿보이는 지점이다. 이런 국면에서 10월 11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큰 표 차이로 패하자 대통령실은 김 후보자 지명 철회로 가닥을 잡았다.
10월 12일 정부는 어떤 선거 결과든지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같은 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일부 위원들이 김 후보자 자진 사퇴를 대통령실에 건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이철규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회의를 마친 다음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 후보자 거취에 대한 질문에 “대통령실에서 민심을 잘 받아들일 것”이라며 “민심을 잘 받아들이는 것이 정치 아니겠느냐”고 했다.
여가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은 “(선거 패배가 사퇴 요구의 계기가 됐을) 개연성이 높다”며 “그러나 (당의) 전략 미스다. 차라리 선거가 끝나기 전에 사퇴해야 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위키트리 문제는 옛날부터 나왔다. 그것을 무시하고 했을 때부터 (김 후보자 낙마 사태는) 예견된 참사였다”고 지적했다.
결국 김 후보자는 백기를 들었다. 10월 12일 김 후보자는 입장문을 내고 “어제(10월 11일) 늦게까지 강서구 보궐선거를 지켜봤다”며 “저는 여가부 장관 후보자 이전에 국민의힘 당원이다. 당원으로서 선당후사의 자세로 후보자직을 자진 사퇴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어 김 후보자는 “불법은 저지른 적은 결코 없다”며 “제게 주어진 방법으로 결백을 입증하겠다”고 덧붙였다.
장성호 전 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장은 “(선거 결과에) 승복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김 후보자를) 희생타로 쓴 것”이라며 “(국민의힘이 임명 철회를 건의한 것은) 당이 용산 출장소라고 불리고 있기 때문에 당에서도 존재 가치를 국민들에게 인식시킬 필요가 있어 그런 모습을 보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장 전 원장은 “선거에서 완전히 패배했기 때문에 (당정이) 국정기조를 내년에 있을 총선에 맞출 필요가 있다고 본 것 같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장 원장은 “그러나 대통령이 하라고 하면 바로 시행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은 안 변할 것 같다”며 “지금 대통령의 의중이 실리면 아무도 반론을 못 한다. 참모들의 역할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아마 총선 때까지도 (변하기) 힘들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