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경질에 코치 10명 이적 혹은 계약 종료…손시헌 퓨처스 감독 선임
SSG는 "팀 운영 전반과 선수 세대교체 등에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팀을 쇄신하고 더욱 사랑받는 강한 팀으로 변모하기 위해 변화가 불가피했다"며 "이로 인해 구단은 당초 계획했던 선수 및 코칭스태프 구성에 대한 변화 범위를 뛰어넘어 현장 리더십 교체까지 단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원형 감독 충격 경질
김원형 감독은 2020년 11월 SK 와이번스(SSG의 전신)의 제8대 사령탑으로 선임됐다. 계약 조건은 2년 총액 7억원이었다. 이후 SSG가 SK를 인수하면서 김원형 감독과의 계약을 승계해 SSG의 초대 사령탑으로 이름을 올렸다. 첫 시즌에는 6위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부임 2년째인 지난 시즌 최고의 성과를 거두면서 재계약에 성공했다. SSG는 한국시리즈가 한창이던 지난해 11월 "김원형 감독과 재계약하겠다"고 선언해 힘을 실어줬고, 우승 직후 3년 총액 22억원이라는 당시 프로야구 감독 역대 최고 대우로 재계약을 완료했다. 그러나 재계약 1년 만이자 계약기간을 2년이나 남긴 상황에서 김 감독과의 잔여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올 시즌 성적이 그리 나쁘지도 않았기에 더 놀라운 결과였다. SSG는 시즌 막판 치열한 3~5위 경쟁에서 NC 다이노스(4위)와 두산 베어스(5위)를 차례로 밀어내고 정규 시즌을 3위로 마쳤다. 다만 준플레이오프에서 4위 NC에 1승도 못 따내고 1~3차전을 내줘 가을 야구에서 조기 퇴장했다. 야구계에서는 포스트 시즌에서의 무기력한 경기력이 김 감독 경질의 도화선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지대하다 못해 "과하다"는 평가까지 받는 구단주(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경질 지시가 떨어진 게 아니냐는 추측도 무성했다. KBO리그 구단들의 감독 선임과 해임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모기업'과 '결정권자'의 판단과 의중이 반영되기 마련이라 더 그렇다.
SSG 구단은 일단 '성적 부진'과 '구단주의 지시' 모두 김 감독 경질의 이유는 아니라고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다. "지난 3년간 팀에 공헌한 감독님께 감사하다.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에 매우 송구하다. 어렵고 힘든 결정이었다"면서도 "성적으로 인한 계약해지는 절대 아니다. 포스트 시즌 종료 후 내부적으로 냉정한 리뷰를 치열하게 진행했다.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팀을 위해서는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고 봤고, 감독 교체가 빠르게 이뤄지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야구계가 모두 놀랐지만, 정작 당사자인 김원형 감독은 빠르게 마음을 추슬렀다. 경질이 발표된 날 구단 관계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내가 부족했다. 올 시즌 구단이 기대했던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아 이렇게 됐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김 감독 입장에서는 구단에 충분히 서운할 수 있다. 이제 재계약 후 1년 밖에 지나지 않았고, 지난해처럼 우승을 하진 못했어도 팀을 가을야구로 이끄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준플레이오프가 종료된 뒤 엿새가 지나서야 갑작스럽게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래도 김 감독은 SSG 구단에게 화살이 향하는 걸 원치 않았다. "감독은 책임을 지는 자리다. 구단이 결정을 그렇게 했으니, 나는 따를 수밖에 없다. 구단도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며 "경질 배경과 관련한 섣부른 추측은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성적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구단이 (경질이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본다"고 했다. 또 "내 역량이 부족했다. 당분간은 휴식을 취하며 머리를 식힐 것"이라며 "그동안 나와 함께 호흡한 선수들, 응원해주신 팬들께 감사드린다. 선수들과 코치들이 동요하지 않고 마무리 훈련을 잘 치러서 내년 시즌도 잘 준비했으면 좋겠다"고 덕담까지 했다.
#코치들도 이탈, 명분은 세대교체
김원형 감독이 SSG 유니폼을 벗고 떠난 뒤, 야구 관계자들은 일제히 SSG 구단을 향해 곱지 않은 시선을 쏟아냈다. 계약 기간이 2년이나 남은 '전 시즌 통합우승 감독'을 '세대 교체'를 명분 삼아 경질한 행보가 여러모로 석연치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SSG는 그동안 '윈 나우(win now)'를 추구하는 팀이었다. 2023시즌 개막을 앞두고 KBO가 발표한 평균 연봉(외국인 선수·신인 제외) 순위에서 1억 7559만 원으로 10개 구단 중 1위에 올랐다. 정규 시즌 1군 엔트리 등록 기준인 상위 28명의 평균 연봉 1위(3억 957만 원)도 SSG였다. 불혹에 접어든 1982년생 듀오 추신수와 김강민 외에도 최정, 김광현, 노경은, 고효준 등 30대 중후반 선수들이 1군 주축 선수로 뛰었다. 투타에 확실한 간판 김광현과 최정이 건재하고, 한유섬·문승원·박종훈 등 또 다른 간판 선수들과 일찌감치 비(非) 자유계약선수(FA) 다년 계약을 해놓은 SSG의 팀 상황에서는 개연성이 충분한 기용이었다. 김 감독은 그런 상황에서도 시즌 초 신예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며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를 꾀했다. 하지만 선배들을 넘어서는 후배들이 등장하지 못했다. '김원형 체제'의 마지막 경기가 된 NC와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선 야수 선발 라인업 9명 중 20대가 유격수 박성한 한 명뿐이었을 정도다. 그러자 구단은 느닷없이 '세대 교체' 깃발을 꺼내들었고, 현 감독과 향후 방향을 논의하는 대신 갑작스러운 '작별'을 통보하는 쪽을 택했다.
지난해 말 류선규 전 단장의 후임으로 프런트의 수장이 된 김성용 SSG 단장은 "우리 팀은 세대교체가 시급하다. 신임 사령탑은 변화와 혁신, 세대교체를 이끌 지도자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며 "세대교체에 방점을 두고 후보군을 정해 사령탑 선임 과정을 밟을 것"이라고 했다. 또 메이저리그(MLB) 출신 박찬호와 추신수의 신임 감독설에 대해선 "절대 아니다. 구단이 생각하는 방향과 다르다"라고 선을 그으면서 "감독 선임은 구단이 후보군을 만들고, 최종 후보를 결정해 그룹에 보고하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모기업) 신세계의 기조가 자율이다. 무분별하게 떠도는 소문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김원형 감독과 함께했던 SSG 코치들은 이미 뿔뿔이 흩어진 상태다. 김민재 코치와 정상호 코치(롯데 자이언츠), 정경배 코치(한화 이글스), 조웅천 코치(두산 베어스)가 감독 해임 전 이미 새로운 행선지를 정한 뒤였고 이진영 코치는 스스로 팀에 사의를 표한 뒤 삼성 라이온즈로 옮겼다. 이 외에 채병용·손지환·곽현희·박주언·류재준 코치가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이 때문에 11월 1일부터 시작된 SSG의 일본 가고시마 마무리 캠프는 감독 없이 9명의 잔류 코치가 이끌고 있다. 그러나 이중 야구 선수 출신인 '보직 코치'는 이대수 총괄, 김동호 투수, 오준혁 타격, 윤재국 야수, 임재현 주루 코치 등 5명이 전부다. 재활·컨디셔닝 코치의 비중이 절반에 가까운 4명이나 된다. 같은 기간 일본 미야자키에서 마무리 훈련을 하는 한화와 비교하면 차이가 더 두드러진다. 한화의 코칭스태프는 최원호 감독 포함 11명이고, 그 안에 컨디셔닝 코치는 3명뿐이다.
여러 모로 SSG는 새 감독 선택과 코치진 개편, 베테랑 선수들과의 면담 등 굵직한 변화의 프로세스를 앞두고 있다. 프런트 구성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감지된다. 야구계에선 "SK의 색을 지우는 과정"이라고 분석하는 시선도 있다. 김성용 단장은 "코치 영입은 70~80% 정도 마친 상태다. 주요 보직은 신임 감독이 정할 것"이라며 "신임 사령탑이 영입하고 싶어 할 코치도 있을 테니, 여유를 둘 것"이라고 밝혔다.
#2군 감독은 손시헌 전 NC 코치
1군 감독은 새로 찾아야 하지만, 퓨처스(2군) 감독은 빠르게 선임했다. 손시헌(43) 전 NC 다이노스 코치다. 손 감독은 육성 선수로 출발해 프로야구 대표 유격수로 성장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2003년 육성 선수로 두산에 입단한 뒤 안정적인 수비를 바탕으로 주전 유격수로 도약했다. 두산에서의 활약을 발판 삼아 2014년 NC와 FA 계약을 했고, 2019년 은퇴할 때까지 NC 소속으로 뛰었다. 현역 시절 손 감독의 1군 통산 성적은 1559경기, 타율 0.272, 홈런 70개, 550타점, 546득점이다.
지도자 생활도 NC에서 시작했다. 2020년과 2021년 NC에서 수비코치로 활약한 뒤 지난해 MLB 필라델피아 필리스 산하 마이너리그로 코치 연수를 떠났다. 당초 연수 계획은 3년이었지만, SSG가 퓨처스 감독 자리를 제의하면서 일정을 1년 당겨 귀국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NC가 코치 연수 금액을 일부 지원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손 감독이 연수 기간 중 NC가 지원한 금액을 반환하겠다고 알리면서 NC도 손 감독을 붙잡지 않기로 했다. NC 관계자는 "손시헌 전 코치가 미국 연수를 마치고 우리 구단으로 돌아와주길 바라면서 연수 비용 등을 지원했지만, 개인에게 온 좋은 기회를 막을 수 없어 원만하게 합의했다"며 "구단이 지원한 금액만 돌려받고 (NC로 돌아온다는) 기존 계약을 해지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SSG는 "손시헌 퓨처스 감독은 두산, NC에서 주장을 맡으면서 리더십을 인정받았고, 은퇴 후 수비코치를 맡아 젊은 선수들을 이끄는 지도자로 활약했다"며 "경험과 역량을 갖춘 손시헌 퓨처스 감독이 스포츠 사이언스를 근간으로 하는 구단의 육성 방향을 이해하고 퓨처스 유망주들의 변화와 성장을 이끌 육성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영입 배경을 설명했다.
손시헌 퓨처스 감독은 11월 2일 강화도 SSG퓨처스필드를 방문해 선수단과 인사를 나눈 뒤 3일 일본 가고시마 마무리 캠프에 합류해 훈련을 지휘하게 됐다. 손 감독은 "2군 감독직을 맡겨 주신 SSG 구단에 감사하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경험을 바탕으로 코칭스태프, 프런트와 소통하고 협업하면서 좋은 선수를 육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누구나 기회를 받고 성공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