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아이엔씨 손자 DB메탈 물적분할해 ‘DB월드건설’ 설립…지주사 강제 전환 회피 관련 뒷말
#DB아이엔씨가 지주사 되면…
최근 DB아이엔씨는 DB메탈과의 합병 계획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DB아이엔씨는 공시를 통해 “DB메탈과의 합병을 통해 양사의 사업역량과 자원을 결합해 시너지를 높이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기 위해 합병을 추진했다”며 “경제 환경의 불확실성 증대, 합병 목적에 대한 시장의 오해와 일부 주주들의 우려 등을 감안해 합병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8월 DB아이엔씨는 손자회사인 DB메탈과 합병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DB아이엔씨와 DB메탈의 합병안은 DB그룹의 지주사 강제 전환을 막는 방법으로 주목을 받았다. DB아이엔씨의 자산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총자산이 5000억 원을 넘고 자회사의 지분가치가 전체 자산의 50% 이상인 기업은 지주사로 강제 전환된다.
앞서 지난해 5월 DB아이엔씨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지주회사로 전환된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2021년 기준으로 지주사 전환 요건을 충족했기 때문이다. 당시 DB아이엔씨는 지주사 전환일로부터 주어지는 유예 기간인 2년 이내에 지주사 전환 사유를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5월 DB아이엔씨는 지주사 전환 대상에서 제외됐다. 2022년 말 기준으로 DB아이엔씨의 자산 규모가 지주사 요건에 충족하지 않아서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DB아이엔씨는 지주사 요건을 충족한 상태다. 총자산이 증가한 데다가 자회사 지분가치가 50%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현 추세라면 내년에 다시 지주회사 전환 통보를 받을 수 있는 셈이다.
DB아이엔씨가 지주사 전환 통보를 받으면 유예기간 안에 DB하이텍 지분을 30%까지 매입해야 한다. 공정거래법에 따라 지주사는 상장 자회사 지분의 30% 이상을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한다. 올해 상반기 말 기준으로 DB아이엔씨는 DB하이텍 지분 12.42%를 보유하고 있다. 최소 17.58%의 지분을 매입하기 위해선 현재 기준으로 4000억 원이 넘는 자금이 필요하다. 별도 기준으로 DB아이엔씨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481억 원에 불과하다. 금융업계에서 지주사 전환을 피하려고 시도할 것이란 추측이 제기되는 이유다.
지주사 전환과 관련해 DB가 고려할 수 있는 다양한 시나리오가 제기된다. 지주사 전환을 막으려면 DB아이엔씨의 별도 기준 자산을 늘려 자회사 지분 가치를 전체 가치의 50% 미만으로 떨어지게 만들면 된다. 부채를 늘려도 자산이 증가한다. 하지만 부채비율이 단번에 높아지는 문제가 있다. DB아이엔씨가 다른 자회사를 합병해 자산을 키울 수도 있다. 하지만 DB아이엔씨와 DB메탈 합병안을 두고 시장의 반발이 거셌던 만큼 추진이 쉽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DB하이텍 주가가 떨어지면 지주사 전환을 피할 수 있다. DB아이엔씨 종속회사로는 DB하이텍 외에도 DB에프아이에스가 있다. 하지만 사실상 DB하이텍 주가가 지주비율 계산에 있어서 중요하다. 상반기 기준 DB아이엔씨의 별도 자산은 6053억 원, DB하이텍의 공정가액은 3479억 원이다. 다만 DB하이텍의 주가 하락을 인위적으로 조정하기는 어렵다. 최근 DB하이텍은 반도체 불황으로 주가가 다소 하락했다. 올해 실적도 좋지 않다. 하지만 증권가를 중심으로 내년 실적이 반등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DB하이텍 주가가 낮아졌을 때 회계 처리 방법을 바꾸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회장은 “현재 DB아이엔씨는 DB하이텍을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측정금융자산으로 계상해 DB하이텍 주식을 시가 평가한다. 하지만 DB하이텍을 관계회사로 전환하면 지분가치를 원가법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때 다시 지분가치를 평가하게 되는데 해당 시점의 시가가 고정된다”라고 분석했다.
#DB월드건설, DB월드와 합치나
이러한 가운데 DB메탈이 물적분할 계획을 밝혀 시장의 주목을 받는다. DB메탈은 오는 12월 건설사업부문을 떼어내 DB월드건설을 설립할 예정이라고 지난 10월 30일 공시했다. DB메탈은 2021년 11월 건설업을 영위하던 코메라는 자회사를 흡수합병했다. 이를 다시 떼어내겠다는 것이다.
공시가 나온 후 DB하이텍 소액주주연대는 향후 DB월드건설이 DB월드에 합병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을 제기했다. DB월드는 DB하이텍의 자회사다. DB월드건설과 DB월드가 합병할 경우 DB메탈은 DB월드 지분을 갖게 된다. 이 지분을 DB하이텍이나 DB아이엔씨가 비싸게 매입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시나리오다.
이상목 DB하이텍 소액주주연대 대표는 “회사명이 DB월드건설이기 때문에 DB월드와 합병할 가능성이 있겠다고 판단했다. 김준기 전 DB그룹 회장은 DB메탈의 차입금 1572억 원에 대해 지급보증을 한 상태다. DB메탈로 최소한 1572억 원의 현금이 들어오게 해야 한다. 결국 현금동원능력이 있는 DB아이엔씨나 DB하이텍에서 지분 매입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이유”라고 했다.
만약 DB하이텍의 자금이 나가게 되면 DB하이텍 주가 또한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지주사 전환 회피 움직임과 관련짓기는 어렵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DB하이텍이 지분을 살 수는 있지만 굳이 이런 방식으로 주가를 떨어뜨릴까 싶기는 하다”며 “오히려 충당금을 잔뜩 쌓아 실적을 안 좋게 하는 게 쉬울 수 있다”고 밝혔다.
DB그룹 측도 “코메라는 회사가 갓 출범한 상황에서 몸집을 키워 수주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DB메탈과 합병했다. 합병을 한 이후에도 (건설사업부문은) 각자대표 체제로 운영을 해왔다. DB아이엔씨와 DB메탈을 합병해 계속 덩치를 키우려고 했는데 무산됐다”며 “현상 유지가 답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DB메탈의 건설사업부도 경쟁력이 나름 생겼고, DB메탈이라는 이름보다 건설회사 명함을 들고 영업을 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건설부문을 떼서 전문화해보자고 결정한 것”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금융업계 다른 관계자는 “DB그룹의 지주사 관련해 결론이 나기 전까지는 DB그룹의 작은 움직임에도 시장이 반응하는 현상이 지속될 듯하다”라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 DB그룹 관계자는 “아직 (지주회사 전환이) 발생한 일은 아니고 내년에 지주사 전환 통보를 받더라도 유예 기간이 있다. 때문에 현재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씀드리기에는 이르다”라며 “DB하이텍의 물적분할이나 DB아이엔씨와 DB메탈의 합병 계획은 지주사 전환 요건과는 상관없이 진행된 일”이라고 답했다.
DB하이텍 vs KCGI 분쟁 가능성까지…
DB하이텍과 행동주의 펀드를 표방하는 KCGI의 경영권 분쟁 가능성도 시장의 주목을 받는다. 지난 3월 KCGI(캐로피홀딩스)는 DB하이텍 지분 7.05%를 매입하며 DB하이텍 2대 주주로 올라섰다. KCGI는 지난 6월 공개한 주주서한을 통해 △지배주주의 사적 이익 추구 △불투명한 경영과 내부통제 미비 △무시되고 있는 주주 권익 등으로 DB하이텍이 저평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DB하이텍에 대한 KCGI의 움직임은 지지부진한 모양새다. KCGI는 지난 6월 DB하이텍을 상대로 법원에 이사회의사록 열람 및 등사 허가 신청, 회계장부 등 열람 및 등사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두 사건 모두 8월 심문이 종결됐지만 아직 재판부 판단은 나오지 않았다. 3월 이후 KGCI 추가 지분 매입 움직임은 없다.
앞서의 이상목 대표는 “소액주주들 사이에서도 왜 (KCGI가) 실제 움직임이 없냐고 비판하는 쪽도 있고, 기다려보자는 신중론을 펼치는 분들도 있다. 일단 소액주주연대는 가처분 소송이 인용돼야 한다고 법원에 탄원서를 넣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인용이 돼야 협상 테이블에 DB하이텍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KCGI 한 관계자는 “가처분 소송은 최대 1년까지 걸리기도 한다. 추가 계획이 있으면 향후 밝힐 계획”이라고 했다. DB하이텍 관계자는 “말씀드릴 수 있는 내용이 없다”라고 답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