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시즌 ‘태업 논란’에 대응 “PO 5차전 등판하려 노력했다”
순탄한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페디는 10월 16일 KIA 타이거즈 경기에서 타구에 오른쪽 팔을 맞아 부상했고, 이후 와일드카드 결정전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준플레이오프 엔트리엔 합류했지만 실제 등판은 이어지지 않았고, 페디는 10월 30일 플레이오프 1차전 마운드에 올라 6이닝 3피안타(1피홈런) 1볼넷 12탈삼진 1실점으로 팀의 9-5 승리에 앞장섰다. 이 경기가 페디의 올 시즌 마지막 등판이었다. 이후 페디는 몸 상태가 회복되지 않으면서 공을 던질 수 없었고, 2승 2패로 중심을 잡았던 플레이오프가 5차전 KT의 승리로 마무리되는 걸 지켜봐야만 했다.
경기 후 페디는 그라운드를 벗어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에는 팀과 동료들, 그리고 팬들에 대한 미안함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페디는 11월 8일 인천공항을 통해 집이 있는 미국 애리조나로 출국했다. 출국 전날인 7일, 마산 자택에서 페디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에릭 페디는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5차전에 등판하지 못했다. 등판을 안 한 게 아니라 못하는 상황이었다. 2패 후 2승을 챙긴 KT의 상승세가 예상된 가운데 NC는 선발투수로 신민혁을 내보냈다. 5회 페디가 불펜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포착됐고, 플레이오프 마지막 경기에서 페디의 등판을 예상했지만 페디는 공을 던지지 않고 다시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어깨가 좋지 않아 공을 던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NC는 5차전에서 2-3으로 석패했다. NC의 한국시리즈 진출 실패를 떠안고 페디는 더그아웃을 떠나며 눈물을 쏟았다.
페디에게 당시 흘린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물었다.
“팀에 더 도움이 되지 못해 속상하고 슬펐다. NC에 있는 동안 나는 팀 동료들과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고, 우리는 같이 노력했고, 특별한 것들을 같이 해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9개월가량 동고동락했던 시간들이 끝났다는 게 너무 슬펐다. 주위의 모든 사람은 내 눈물의 의미를 이해해줬다. 그 눈물은 내가 얼마나 NC 선수로, 이 팀에서 뛰는 걸 좋아했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나를 가족처럼 대해준 팀에 감사한 마음이 크다. NC는 항상 가슴 한켠에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포스트시즌이 진행되는 동안 에릭 페디의 등판 여부는 연일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NC 강인권 감독은 페디의 등판 일정을 묻는 질문에 정확한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선수는 등판을 위해 최선을 다해 몸을 만들고 있었지만 선발 등판을 소화할 정도의 어깨 상태를 확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다 NC는 플레이오프 1차전에 선발 투수로 에릭 페디를 예고했고, 페디는 자신의 역할을 소화하면서 팀 승리까지 챙겼다. 그는 미디어에서 자신의 등판 여부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한다.
“나는 언론의 관심과 다른 부분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우리 팀이 (와일드카드 결정전서부터) 계속 연승을 했고, 내게 더 쉴 수 있는 기회를 줬기 때문에 (플레이오프) 1차전 등판 전까지 준비를 잘 할 수 있었다. (그때도 몸 상태가 완벽하진 않았지만) NC 유니폼을 입고 한 번 더 공을 던질 수 있어 기쁘게 생각했다.”
에릭 페디는 1차전 등판 이후 4, 5차전에 나오지 못한 것과 관련해 일부 언론에서 ‘태업 논란’을 거론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나한테 가장 중요한 건 NC 다이노스 팀이었다. 나는 우리 팀을 위해 건강해지려고 노력했고, 내가 도울 수 있는 선수가 되기 위해 팀과 함께 최선을 다했다. 우리가 우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결국은 우리가 패했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꼈고, 내가 등판하지 못한 데 대한 죄책감도 갖고 있다. 하지만 난 5차전 마운드에 올라가기 위해 정말 최선을 다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다.”
2022년 12월 20일 NC 다이노스가 총액 100만 달러에 새 외국인 투수로 에릭 페디의 영입을 발표했을 때 야구 관계자들은 깜짝 놀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에릭 페디의 커리어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2014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8순위로 워싱턴 내셔널스의 지명을 받았고, 2017년 빅리그 데뷔 후 2022년까지 6년 동안 102경기(선발 88경기)에 등판, 454⅓이닝 21승 33패, 평균자책점 5.41을 기록한 대형 투수였다. 비록 2022시즌 가장 좋지 않은 성적을 올렸지만 그가 100만 불을 받고 KBO리그에서 뛴다는 게 믿기지 않았던 것. 페디의 2022시즌 연봉은 215만 달러였다.
“내가 처음 한국에 올 때만 해도 여러 의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만약 내게 1년 전으로 돌아가 팀을 선택할 때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하겠느냐고 묻는다면 의심의 여지 없이 '예스'라고 답할 것이다. NC에서 2023시즌은 내게 굉장한 자신감을 심어준 시간들이었다. 내 야구 인생에 이런 경험을 하게 된 건 정말 축복이었다.”
에릭 페디는 자신이 KBO리그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운 팀 동료들, 팀 관계자들한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미국 애리조나에서 진행된 스프링트레이닝을 통해 많은 선수들의 도움을 받았고, 선수들은 내가 갖고 있는 문화를 이해해줬다. 분명히 외국에서 선수 생활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 선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에릭 페디는 KBO리그에서 치른 30경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정규시즌 개막전을 꼽았다.
“개막전 등판이 NC 유니폼을 입고 던진 첫 선발 등판이었다. 상대가 삼성 라이온즈였는데 굉장히 많은 관중들의 환호를 받았다. 그건 지금까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분위기였다. 3-2 풀카운드에서 관중들이 환호를 보내줄 때 짜릿한 뭔가가 느껴졌다.”
KBO리그에서 성공적인 시즌을 마친 에릭 페디. 그가 좋은 공을 던지면 던질수록 그를 내년 시즌 NC에서 볼 수 있는 확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실제 메이저리그에서 에릭 페디를 원하는 팀들이 많고, 굉장히 좋은 대우를 받고 메이저리그로 돌아갈 거란 예상이 우세하다. 에릭 페디는 자신의 진로에 대해 지금은 아무 것도 결정된 게 없다고 말했다.
“지금은 집에 돌아가서 휴식을 취하고 훈련에 임해야 할 것 같다. 내 커리어 처음으로 180(180⅓)이닝이 넘는 시즌을 보냈고, 내년 시즌에도 지금과 같은 흐름을 이어가려면 훈련밖에 없고,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선 집에 돌아가 치료를 받고 팔 상태가 좋아진다면 훈련을 시작할 예정이다. 지금은 FA 신분이기 때문에 나와 내 가족들에게 맞는 최선의 선택을 할 것이고, 다음 무대가 한국이든, 메이저리그든, 아니면 또 다른 곳이든 내 능력을 발전시키는 데 중점을 둘 것이다.”
에릭 페디는 인터뷰 말미에 올 시즌 자신에게 많은 영감을 준 NC 선수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남겼다.
“나와 같이 굉장한 시즌을 함께 했던 팀 동료들이 없었다면 올 시즌은 행복하지 않았을 겁니다. 1년 동안 내게 보내준 사랑과 함께 했던 시간들에 깊은 고마움을 표합니다. 조만간 다시 보길 바라며 그대들을 사랑합니다. 내 가족이니까요.”
인터뷰를 마친 에릭 페디는 기자에게 그동안 NC 팬들한테 받은 사진과 캐릭터, 그리고 티셔츠 등을 보여주며 자랑을 이어갔다. 올 시즌 미국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벌어졌고, NC 팬들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응원했는지 잘 알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때 팬들은 페디의 여권을 빼앗아야 한다며 그가 다음 시즌에도 NC에서 함께 뛰길 바랐다. 페디도 그런 팬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프로야구는 비즈니스의 세계다. 팬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선택은 선수의 몫이다.
에릭 페디와 출국 전날 마지막 저녁을 함께 했다. 그가 자주 다닌다는 삼겹살 집이었다. 고기가 구워지길 기다리며 그가 잔에 맥주를 따랐다. 그리고 기자에게 술을 권한다. “건배”라고 한국말로 잔을 부딪히면서 말이다.
경남 창원=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