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출마? 지지율 고심, 비례대표? 순번 논란 우려…총리로 자리 옮길 수도
한동훈 장관이 최근 광폭 행보를 보이며 내년 4월 총선 출마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한 장관은 11월 17일 법무정책 업무차 대구를 방문한 데 이어 21일 대전, 24일에는 울산을 찾는 등 전국을 돌고 있다. 부인인 진은정 변호사도 11월 15일 대한적십자사가 개최한 ‘2023 사랑의 선물’ 행사에 다른 국무위원 부인 등과 함께 참석하며 공식석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고 최측근인 한동훈 당시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법무부 장관으로 내정했을 때 정치권 등판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바였다. 한 장관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설전을 벌이고 각을 세우며 존재감을 키워나갔다.
국민의힘에서는 한 장관 출마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김기현 대표는 11월 21일 “한 장관이 가지고 있는 많은 훌륭한 자질이 대한민국을 위해 잘 발휘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인요한 혁신위원장 역시 20일 “아주 합리적인 분이고, 나보다 젊지만 존경하는 분”이라며 “그런 경쟁력 있는 분들이 빨리 당에 와서 도와야 한다”고 극찬했다.
최대 관심사는 한 장관이 어디로 출마하느냐다. 당초 정치권에선 강남3구에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한 장관이 압구정동에 위치한 현대고 출신이고, 현재 거주지도 도곡동 타워팰리스이기 때문이다. 또 한 장관은 서초동에 위치한 서울중앙지검에서 오래 근무했다.
최근에는 대구 출마 가능성도 나왔다. 한 장관이 11월 17일 대구를 방문해 “내가 대구에 두 번째 왔는데 평소 대구 시민들을 대단히 깊이 존경해왔다”며 “첫째 대구 시민들은 처참한 6·25 전쟁 과정에서 단 한 번도 이 도시를 내주지 않았다. 둘째 산업화 과정에서 산업화를 진정으로 처음 시작했고, 다른 나라와의 산업화 경쟁에서 이긴 분들이다. 마지막으로 대구에 굉장한 여름 더위를 늘 이기시는 분들이기 때문”이라며 대구를 추켜세우면서다.
하지만 강남3구, 대구엔 출마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주를 이룬다. 윤 대통령 후계자로 꼽히며 여권 내 대선주자로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한 장관이 당선이 보장되는 ‘보수 텃밭’에 출마할 경우 당 안팎에서 많은 비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향후 국정동력을 위해선 내년 총선 승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한 석이라도 더 가져와야 한다”며 “윤 대통령을 위해서라도 한 장관 같은 스타 정치인들이 수도권의 민주당 현역 의원 지역구에 출마해 승부해야 하지 않겠냐”고 설명했다.
그러다보니 정청래 민주당 수석최고위원이 현역으로 있는 서울 마포을이나 ‘정치1번지’로 상징성이 큰 종로가 한 장관의 지역구 후보군으로 오르내린다. 다만 종로의 경우 국민의힘 소속 최재형 의원이 현역으로 지키고 있다. 윤 대통령 검찰 최측근이 민주당 현역 의원과 맞붙지 않고, 같은 당 소속의 최 의원을 밀어내고 종로 지역구를 차지하면 ‘낙하산 공천’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여권의 또 다른 고민은 한동훈 장관 지지율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엠브레인퍼블릭이 YTN 의뢰로 11월 19~20일 이틀간 실시한 ‘한동훈 장관 출마’ 관련 여론조사 결과 ‘여당의 선거에 도움이 될 것’과 ‘여당 선거에 도움 되지 않을 것’이 각각 42%와 41%로 팽팽하게 맞섰다.
피플네트웍스리서치(PNR)가 뉴데일리 의뢰로 10월 16~17일 양일간 시행한 여론조사에서도 ‘한 장관 출마 여부’ 관련 문항에서 ‘반대한다’가 58.0%로 절반을 넘었다. 반면 ‘찬성한다’는 32.3%에 그쳤다(여론조사 자세한 사항은 각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야권 관계자는 “과천 인근에 한 장관 정치 등판을 지원하는 외곽조직이 있는데, 이들이 한 장관을 넣고 여러 후보 지역구 가상대결 여론조사를 돌려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수도권에서는 박빙이거나 지는 결과가 계속 나와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민주당에서는 한 장관 경쟁력과 확장력을 평가절하하고 있다. 한 장관이 대전을 방문한 11월 21일 정청래 최고위원은 자신의 SNS에 “내년 총선 키워드는 ‘윤석열 정권 심판’”이라며 “(한 장관은) 야당 입장에서 분노와 반대에 최적화된 ‘최약체 후보’”라고 했다. 박주민 원내수석부대표도 다음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한 장관은) 이미 한쪽 정치세력을 너무 세게 대변했던 분이라 중도 확장력에 의구심이 든다”고 꼬집었다.
‘친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의원 역시 11월 23일 MBC라디오 ‘신장식의 뉴스하이킥’ 인터뷰에서 “한 장관은 윤 대통령 후계자나 다름없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한 장관은 내년(총선)에 떨어지면 거기서 정치는 끝”이라고 험지 출마를 시도조차 하지 않을 거라는 취지로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한 장관이 지역구가 아닌 비례대표로 출마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비례대표로 나오면 지역구에 묶여있을 필요 없이 전국을 돌며 총선 전체를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당 안팎에서 한 장관의 비상대책위원장·선거대책위원장 설이 나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하지만 비례대표로 나설 경우 몇 번째 순번을 받을 것인가를 놓고 논란이 불가피하다. 민주당 한 전략통은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당 총재 시절 스스로를 전국구(비례대표) 순번 10번 뒤쪽으로 배치했다. 그만큼 열심히 선거운동을 뛰어 본인도 당선되도록 하겠다는 의미”라며 “한 장관 역시 비례대표 뒷번호로 배치되는 승부수를 던질 수 있겠느냐. 그렇다고 당선 안정권에 배치되면 대선주자로서 모양이 빠진다”고 설명했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선거제 역시 한 장관의 행보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여야는 내년 총선에서 비례대표제를 ‘준연동형’을 유지할지 ‘병립형’으로 회귀할지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21대 총선에 이어 이번 총선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치러질 경우 국민의힘은 위성정당 출범을 예고하고 있다. 한 장관이 비례대표로 결론을 내릴 경우 국민의힘이 아닌 위성정당으로 입당해야 한다. 국민의힘 전국 선거를 직접 이끌 수 없다는 의미다.
당내에선 한 장관 출마가 총선 승리에 도움이 될지 의견이 분분한 모습이다. ‘비윤계’로 분류되는 여권 관계자는 “내년 총선은 ‘윤석열 정부 중간평가’ 성격이다. 한 장관은 ‘윤 대통령 후계자’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 인물이 국민의힘 전면에 나서면 총선에 도움이 되겠느냐”고 우려했다. 이어 “한 장관이 총선에서 승리하려면 윤 대통령과 대척점에 서고, 더 나아가 현 권력에 맞서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 한 장관이 그런 면모를 보여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총선에 출마해 패배할 경우 한 장관은 치명상을 입게 된다. 가장 강력한 대권주자를 잃을 수 있는 여권 내부도 혼란이 불가피하다. 이에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여권에서 한 장관을 차출하지 않을 가능성도 여전히 살아 있다. 한 장관이 국무총리 등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당초 내년 총선 출마 예정 장관들을 위한 연말 개각 논의가 나오면서 한 장관의 이름도 나왔다. 대통령실이 한 장관 후임자들에 대한 검증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뒤를 이었다. 박성재 전 서울고검장과 오세인 전 광주고검장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됐다.
하지만 12월 예정된 개각에서는 한 장관이 대상에 오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총선 지역구에 출마하려면 선거 90일 전에 공직을 내려놔야 한다. 이번 22대 총선의 마지노선은 내년 1월 11일이다. 다만 비례대표로 입후보하면 선거 30일 전까지 공직을 내려두면 된다.
또 다른 야권 관계자는 “이번에 한동훈 장관이 대구 등 전국을 돌면서 등판설이 떠오르자, 상대적으로 ‘윤 대통령의 눈엣가시’인 이준석 전 대표의 신당 창당론이 국민들 관심에서 한 발짝 멀어졌다. 여권에서는 그런 효과를 위해 한 장관을 이용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 들어 검찰 장악이나 인사검증 등 법무부의 기능이 비대해졌다. 한 장관이 총선을 위해 물러나면 후임자를 뽑아야 하는데, 그만큼 믿고 맡길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서 한 장관 차출에 고민이 많을 수도 있다”고 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