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예금‧ETF·주식 등 투자 방식 특징 파악해야…통화정책·환율에 따른 엔화 가치 변동성 유념
달러당 엔화가 33년 만에 최저 수준까지 떨어지자 원‧엔 환율도 한때 850원대까지 내려왔다. 미국 등 대부분 나라가 기준금리를 올리는 반면 일본은행(BOJ)은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고수하고 있고, 미국과 일본의 금리 격차가 커진 것이 엔화 약세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 10월까지만 해도 100엔당 890~910원대를 유지하던 엔화는 11월에는 100엔당 850~870원대로 떨어졌다. 원‧엔 환율이 870원 밑으로 떨어진 것은 2008년 이후 15년 만이다.
역대급 엔저로 엔화 투자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늘고 있다. 엔화의 반등 가능성이 다른 외화에 비해 높아 환차익을 기대해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지난 11월 1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10월 중 거주자외화예금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거주자 엔화 예금은 86억 1000만 달러로 전월 대비 2억 3000만 달러 늘었다. 기업들은 해외 자회사 배당금 수령 등으로 엔화예금이 늘었고, 개인은 엔저 지속에 따른 투자 목적 수요가 있었다는 것이 한국은행의 분석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엔화 가치가 내려가면서 나중에 반등을 기대하고 엔화 예금을 넣으시는 분이 많아졌다”며 “실제로 저희 쪽 엔화 예금 잔고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작년에는 엔화 예금 잔액이 1000억 원 대였는데 올해 하반기부터 2000억 원대로 늘었다”며 “대부분 은행에 엔화 예금액이 늘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원화를 엔화로 바꾸는 환전도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들어 지난 10월 말까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엔화 매도액은 약 3138억 엔(약 2조 7327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770억 엔과 비교해 훨씬 늘었다. KB국민은행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엔화 매도 건수는 2022년 총 17만 4022건에서 2023년(11월 17일까지) 총 62만 3972건으로 늘었다. 일본 증시에 상장된 일본주식에 투자한 개인투자자도 많아졌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에 나타난 월별 주요 해외 증시 주식 보관액을 살펴보니 지난 11월 27일 기준 11월 일본 증시 주식 보관액은 35억 6001만 달러(약 4조 6002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말(26억 1109만 달러)보다 9억 달러 가량 늘어난 수준이다.
환전, 엔화예금, 국내 상장 엔화 ETF, 일본 주식 등 엔화 투자 방식은 다양하다. 어떤 방식을 택하든 엔화 가치에 대한 변동성을 유념하고 신중히 투자해야 한다. 현재 엔화 가치가 급격하게 하락해 다른 외화에 비해 반등 가능성이 확률적으로 높기는 하지만 통화정책이나 국제정세에 따라 언제든지 환율 변동성이 나타날 수 있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BOJ가 내년 임금 협상 전까지 초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서 내년 초까지는 엔화 약세가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 조금씩 유입되고 있다”며 “짧은 시기에 엔화가 빠르게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예상하고 엔화 강세에 베팅을 한다면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현재 엔화가 투자하기에 매력적인 건 맞지만 당장의 방향성 변화를 기대하기보다 1~2분기 정도 투자를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약세에 베팅하고 투자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덧붙였다.
이창민 한국외대 융합일본지역학부 교수는 “차익 실현 시기가 중요한데 그 시기가 빨리 올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엔저 상황이 더 길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투자를 결정해야 한다”며 “엔화 강세로 돌아서려면 일본에서는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하는 조치 정도 남았는데, 사실 제일 중요한 건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여부”라고 말했다.
엔화 강세를 보이기 위한 전제조건은 일본은행이 완화적 통화정책을 그만두는 것이다. 그러나 정책 전환이 금융기관과 일반 채무자들에게 미칠 파장 탓에 정책을 바꾸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일본의 노동계와 재계의 임금협상 시기인 내년 봄이 지나야 향후 통화정책 방향이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여부를 잘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미국과 일본의 금리차가 더 벌어져 엔저 현상이 더 오래 지속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의 통화정책과 미국 기준 금리 인상 여부 등 엔화 가치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것들을 잘 파악하는 것이 엔화 투자에 가장 중요하다.
투자 방식마다 특징을 잘 파악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먼저 엔화 예금 상품은 금리가 제로여서 이자를 기대하기 힘들다. 실제로 5대 시중은행의 외화예금 상품들을 확인해보니 엔화 예금 금리는 0%였다. 엔화 예금은 이자로 인한 수익을 얻기 어려우니 환율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 은행마다 현금으로 출금할 때 수수료를 내야 할 수 있다. 익명을 요청한 은행권 관계자는 “일본이 워낙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 줄 수 있는 금리가 거의 없어서 보통 엔화 정기예금에는 0% 금리를 적용하고 있다”며 “금리를 통한 이익을 기대하기보다 환차익을 노린 사람들의 수요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 증시에 상장된 일본 주식은 100주 단위로 거래해야 한다. 따라서 개인투자자들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엔화 약세로 이득을 보고 있는 일본 기업들도 있어서 이런 기업들에 투자한 경우 엔화가 강세로 돌아서면 주식이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엔화가 강해지는 만큼 환차익으로 이득을 볼 수도 있지만 엔화 약세로 이득을 본 일본 기업들의 손실이 커져 손실이 더 크게 발생할 수 있다”며 “환전이나 예금을 통해서 차익을 얻는 것보다 일본 주식은 변동성이 훨씬 크기 때문에 리스크도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단순하게 환차익만 얻으려 한다면 주가가 오르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오히려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엔화로 일본에 상장된 미국‧일본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하거나 국내에 상장된 엔화 ETF를 사들여 투자하는 방법도 있다. 환차익과 ETF 운용 수익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해외와 국내 상장 펀드 모두 투자 시 배당소득세로 수익의 15.4%를 내야 한다.
전문가들은 향후 엔화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고 내리기보다 완만한 강세 흐름을 보일 수 있다고 전망한다. 김유미 키움증권 연구원은 “BOJ의 통화정책이 조기에 변할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면 엔화가 기대만큼 강세를 보이지 않을 수 있다”며 “완만한 강세 흐름을 보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통화 정책 측면에서 봤을 때 다른 외화의 경우 긴축에서 완화로 접어드는 시기라면 엔화는 완화의 강도를 줄이거나 긴축 정책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엔화는 다른 통화와 비교해 강세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너무 많은 금액을 투자하는 것보다 통화 정책이나 환율 변동 가능성을 감안해 소액 투자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일본이 인위적으로 엔저를 만들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 언제 정책이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자산의 10% 이상을 투자하는 것은 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분이라면 일본 주식이나 엔화 ETF, 엔화 현금 등을 사는 것도 좋지만 리스크 관리 능력도 없이 단순히 환차익만 노리고 엔화 투자에 접근한다면 많은 금액을 투자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