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범에 지분 열세 조현식 성공 가능성 낮아…인수합병 도 튼 MBK가 내놓을 ‘비장의 카드’ 주목
#조현식 측 공개매수가격 탐색용인가
조현범 회장이 보유한 한국앤컴퍼니 지분율은 42.03%에 달한다. 8%만 더 확보하면 과반이다. 지분구조만 보면 경영권 도전이 거의 불가능하다. 조현식 고문 등이 보유한 지분은 29.54%다. 조현범 회장이 아무리 횡령과 배임 관련 소송 결과에 따른 법적 위험이 있다고 하지만 국내 다른 대기업 집단들의 사례를 감안할 때 당장 총수의 지위를 흔들 만한 문제는 아니다.
MBK파트너스의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 관련 특수목적법인(SPC) 벤튜라가 밝힌 공개매수 가격은 주당 2만 원인데, 이미 시가가 이를 넘어서고 있다. 한국앤컴퍼니 주가의 역대 최고가는 2013년 2만 7000원이다. 2021년 초에도 2만 3000원을 웃돌았다. 최근 한국타이어의 실적도 양호하다.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감안하면 공개매수가 2만 원은 사모펀드인 MBK 입장에서 향후 투자회수까지 염두에 둔 가격일 가능성이 크다. 일종의 탐색전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조현범 회장은 보유지분의 절반가량이 이미 금융회사 등에 담보로 잡혀있다. 공개매수가 선언된 마당에 법적으로 회사가 나설 수도 없다. 조현범 회장 측이 지분을 늘리려면 개인이 나설 수밖에 없어 자금 동원력이 제한적이다. 직접 공개매수에 대응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경영권을 가지고 있는 만큼 우호주주를 확보하기는 유리하다. 이와 관련, 한국앤컴퍼니 관계자는 “조현범 회장과 우호지분 등을 고려하면 경영권 방어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공개매수 대응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벤튜라의 자기자본은 MBK파트너스가 출자한 약 6200억 원이다. 부채는 거의 없다. 한국투자증권에 예치한 공개매수 자금만 5200억 원이다. 약 1000억 원의 여유가 아직 있는 셈이다. 차입까지 실행한다면 벤튜라가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이보다 훨씬 더 커질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 MBK가 자금을 추가로 투입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볼 만하다.
#MBK 숨은 노림수 있을까
MBK의 공개매수 선언 직전에 이미 한국앤컴퍼니의 거래량이 급증하고 주가도 크게 올랐다. 금융당국이 선행매매 의혹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상황만 따지면 공개매수 전 지분을 확보하면 가장 유리한 곳이 MBK다. 아시아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MBK가 열세인 지분율을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특수관계인이 아닌 다양한 창구를 통해 한국앤컴퍼니 지분확보를 시도했을 가능성을 상정할 만하다. 공개매수가 보다 낮은 가격에 샀다면 공개매수가에 주식을 넘겨 손쉽게 차익을 실현할 수 있다.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가 한 차례도 성공하지 못했던 국내 자본시장의 역사를 감안할 때 단 한 번의 공개매수로 40% 이상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로부터 경영권을 빼앗을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자본시장이 발달하면서 행동주의 펀드가 사모펀드의 새로운 투자전략이 되고 있다. 성공한 사례도 해외에는 많다. MBK 입장에서는 일단 공개매수로 한국앤컴퍼니를 경영권 분쟁 상황에 몰아넣은 뒤, 추가적인 지분을 확보하고 이후 점차 경영 압박을 높이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경영진에 대한 견제 수위를 높이며 조현범 회장 측 우호주주에 더 많은 ‘보상’을 제시할 수 있다면 적절한 시점에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도 노려볼 만하다. 일종의 장기전이다. 횡령과 배임 혐의로 소송 중인 조 회장은 2025년 3월 이사 임기가 만료된다. 실형이 확정된다면 경영 일선은 물론 이사회에 계속 참여하기는 어렵다. 8% 이상의 우호 의결권을 유지하기도 지금보다는 어려워질 것이 뻔하다.
#경영권도 MBK에 넘긴 조현식, 왜 나섰나
조현식 고문은 왜 MBK에 경영권을 넘기면서까지 공개매수에 나섰을까. 장남 승계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이미 조 고문과 조현범 회장 사이는 틀어질 대로 틀어졌다. 경영권이 없는 조 고문 입장에서는 한국앤컴퍼니 지분 30%를 계속 보유해도 배당 외에는 얻을 수 있는 이익이 거의 없다. 시가 6000억 원이 넘는 자산이 사이가 틀어진 동생이 지배하는 회사에 꽁꽁 묶여있는 셈이다. 대규모 지분을 유동화하는 데 가장 유리한 환경 가운데 하나가 경영권 분쟁이다. 한국앤컴퍼니의 이익잉여금은 1조 원에 달한다. 조 고문 측 지분을 다 사고도 남을 액수다. 이번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한다면 경영권은 MBK가 갖지만, MBK가 높은 수익률로 투자회수를 하려면 경영권을 포함한 재매각에 성공해야 한다. 그러려면 MBK에게 조 고문 지분이 필요하다. 조 고문 입장에서는 목돈을 만들 기회다.
만약 조현식 고문이 한국앤컴퍼니 경영권을 최종적으로 가지려면 MBK가 확보한 지분을 매입하거나, 상장 폐지 후 재상장을 통해 (MBK 지분이) 시장에서 매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MBK도 이번 공개매수 신고서에 공개매수 성공 시 상장폐지 가능성을 열어뒀다. 3명의 대주주가 지분 92% 이상을 갖게 되면 주식분산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한편 변수도 하나 있다. 조현범 회장은 대형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와 인연이 깊다. 10여 년 전 자동차 공조회사인 한온시스템(옛 한라비스테온공조)을 공동으로 인수했고 현재 매각을 추진 중이다. 막강한 자금동원력을 가진 한앤컴퍼니가 조 회장 편에 선다면 MBK에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이 밖에도 조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위이고, 현 정부에서는 이명박 정부 때 요직을 지난 이들이 중책을 맡고 있다. 공개매수 직전 사전매매 의혹에 대해 금융당국은 불과 이틀 만에 움직임을 보일 정도로 신속하게 반응했다.
현대도 두산도 금호도 롯데도 피하지 못했다…형제 간 경영권 분쟁 비화
그동안 재계에서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은 불가피한 영역이었다. 기업분할을 하지 않은 대부분의 대기업집단이 경영권을 두고 형제 간 갈등을 겪었다. 하지만 선대에서 정한 후계 구도가 단번에 뒤집힌 사례는 없었다.
21세기 재계 최대의 경영권 분쟁은 2000년 현대그룹 가문에서 벌어진 ‘왕자의 난’이다. 그룹 종가인 현대건설을 물려받은 고 정몽헌 회장과 방계인 자동차를 물려받는 정몽구 회장 간 대결이다. 결과는 무승부다. 왕자의 난 이후 현대그룹은 둘로 쪼개졌다. 이후 현대건설이 경영난을 겪으며 매물로 나왔고 이를 현대차그룹이 인수하면서 최후의 승자는 정몽구 회장이 됐다.
두산은 2005년 형제 승계 여부를 두고 내부분쟁을 겪지만 결국 회장직 순위가 바뀌지 않았고 현재 4대 장손인 박정원 회장이 그룹을 이끌고 있다. 금호그룹은 2006년 박삼구 회장이 형제 승계를 끊으려 했지만 실패, 2015년 금호아시아나와 금호석유화학으로 쪼개졌다. 두 회사는 이후 각자 부자 상속으로 전환한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경영난을 겪으며 2019년 아시아나항공을 떼어내고 금호건설만 남게 된다.
가장 치열했던 승부는 롯데그룹이다. 2015년 벌어진 일본롯데를 이끌던 신동주 전 부회장과 한국롯데를 경영하던 신동빈 회장 간의 분쟁이다. 고 신격호 창업회장은 애초 신동빈 회장을 후계자로 정하는 듯했지만 신 전 부회장은 이를 부인했다. 신 창업회장이 말년에 건강악화로 정상적인 판단이 어려워지면서 형제 간 실력대결이 벌어졌지만 신동빈 회장의 압승으로 끝이 났다.
효성그룹도 조석래 회장 아들 삼형제가 나란히 경영에 참여하다 2014년 둘째인 조현문 당시 부사장이 형과 임원진의 비리를 고발하면서 세간의 화제가 됐다. 현재 효성그룹은 장남인 조현준 회장이 경영권을 행사 중이지만 삼남인 조현상 부회장도 2대 주주로서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다. 아직 형제 간 분할은 이뤄지지 않았다. 효성과 한국타이어는 창업자가 형제인 그룹이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한진그룹이다. 2019년 조원태 회장 취임 이후 누나인 조현아 전 부사장(조승연으로 개명)이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하던 KCGI와 손을 잡으면서다. 조 회장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항공업계가 어려워지자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을 계기로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을 백기사로 확보, 경영권 분쟁에 종지부를 찍는다.
최열희 언론인
임홍규 기자 bent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