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연구개발비 활용해 개인 특허 출원 의혹…LG화학 “중요한 특허라 매입했을 뿐”
LG화학은 지난해 초 한양대 산단의 양극재 관련 특허 40여 건을 매입했다. 매입 금액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수백억 원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계약은 한양대 산단이 해당 특허 40여 건 전체 처분에 대한 대리권한을 갖고 협상을 진행했다.
해당 특허의 발명자 중 1명은 선 아무개 교수다. 선 교수는 이차전지 업계에서 안정성과 수명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배터리 연구 개발로 우리나라를 이차전지 선도국 반열에 오르게 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LG화학이 구매한 한양대 산단의 일부 특허에는 ‘에너세라믹’이라는 업체가 공동 출원인으로 등록돼 있기도 하다. ‘국가연구개발혁신법(국연법)’에 따르면 연구개발 성과는 과제를 수행한 기관이 연구자로부터 권리를 승계하여 소유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그 비중에 따라 연구개발 성과를 연구자가 소유하거나 타 기관이 공동으로 소유할 수 있다. 이에 근거해 에너세라믹이 한양대 산단과 특허를 공동으로 출원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출원인이 2곳이면 비중에 따라 특허 매각 대금을 나눠 갖는다. 각 매각 대금에서 특허 확보비 등 소요 경비와 각자 지분을 제외한 나머지 지분을 발명자에게 보상한다. 2006년 설립된 에너세라믹은 특허 발명자인 선 교수의 가족회사다. 선 교수가 사내이사로, 선 교수 아내가 대표이사로 등기돼 있다. 즉 발명자인 선 교수는 에너세라믹으로 먼저 매각 대금을 받고 한양대 산단의 지분에서도 수익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에너세라믹은 특허 쪽에서 활발한 행보를 보인 업체다. 특허정보검색서비스 ‘키프리스’에 따르면 에너세라믹이 출원인으로 등록된 특허는 27건이다. 이 중 12건이 특허 등록까지 마친 상태다. LG화학은 이 중 5건을 최종 권리자로 소유하게 됐다. 흥미로운 점은 5건 중 1건이 에너세라믹이 단독으로 출원된 특허라는 점이다. 나머지 특허들을 한양대 산단과 에너세라믹 두 곳이 출원했던 것과 대비된다.
'일요신문i' 취재 결과 에너세라믹 단독 출원 특허는 과거 선 교수가 국가 R&D 과제로 따낸 특허와 유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허명은 ‘리튬 이차 전지용 복합 양극 활물질, 이의 제조 방법, 및 이를 포함하는 리튬 이차 전지’다. 2008년 출원돼 2010년 등록을 마쳤다. 이 특허의 ‘인용특허’는 한양대 산단이 출원인으로 등록된 ‘리튬 이차 전지용 양극 활물질의 그 제조 방법’이다. 2006년 출원돼 2007년 등록됐다. 또 이 특허의 ‘피인용 특허’로 앞선 특허가 기재돼 있다.
특허는 통상적으로 인용 출처를 작성자가 직접 밝혀야 하는 논문과는 다르게, 특허는 출원인이 직접 출처를 밝히지 않았더라도 특허 간 유사성이 보인다면 특허 심사관이 ‘의견제출통지서’에 인용·피인용 특허를 추가하기도 한다. 즉 위 두 특허 사이의 유사성이 심사관을 통해서 입증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에너세라믹이 인용한 특허는 선 교수가 2007년 진행한 ‘유비쿼터스용 고용량 이차전지소재 개발’ 과제의 특허 성과로 등록돼 있다. 반면 피인용 특허는 정부 R&D 특허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여기에 인용·피인용 특허 모두 발명자 명단에 선 교수가 포함돼 있다.
에너세라믹이 단독으로 출원한 또 다른 ‘리튬 이차전지용 양극 활물질의 제조 방법’ 특허의 ‘인용특허’도 2008년 산업부에서 실시한 두 가지 R&D 과제로 만들어진 특허였다. 관련 특허 4가지 모두 발명자 명단에 선 교수가 포함돼 있다. 다만 에너세라믹 단독 출원 특허는 민간에 기술 이전되지 못한 채 2016년 등록료 불납으로 소멸했다.
일각에서는 선 교수가 에너세라믹 단독 특허 출원에 연구개발비를 활용한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선 교수는 2002년부터 매년 이차전지와 관련한 정부 R&D 과제를 수행해 왔다. 정부R&D특허성과관리시스템에 따르면 선 교수는 이름이 다른 과제만 20개가 넘었고 중복되는 과제를 모두 더하면 총 69건의 정부 과제를 수행했다.
‘유비쿼터스용 고용량 이차전지소재 개발’ 과제는 2007년 8월 1일부터 2008년 12월 31일 진행됐다. 에너세라믹이 단독으로 출원해 LG화학에 넘어간 특허는 출원일이 2008년 1월 28일로 해당 과제 기간에 속해 있다. 단독 출원 후 소멸한 특허는 2010년 10월 22일 출원됐다. 이 기간 역시 해당 특허의 인용특허의 연구 기간인 2007년 8월 1일부터 2012년 2월 28일 사이에 포함돼 있다. 게다가 에너세라믹 단독 출원 특허 모두 발명자 명단에 포함된 인물 중에는 한양대 석·박사 출신들이 포함돼 있었다.
해당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선 교수와 한양대는 국연법에 따라 10년 이내의 범위에서 국가 연구개발 활동 참여를 제한하거나 이미 지급한 정부 연구개발비의 5배의 범위에서 제재부가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산업부 등 정부부처는 R&D 자금 부정사용 방지를 위해 제재부가금을 부과하는 등 연구비 부정 사용에 강력 대처하고 있다.
물론 에너세라믹이 개별 연구비를 직접 조달한 것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에너세라믹의 기업 및 실적 정보가 부실해 연구비를 조달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든다. 기업신용분석 및 평가 전문업체 한국평가데이터의 케이리포트에 나온 에너세라믹 자료를 확인해본 결과 가장 최근으로 확인되는 재무정보는 2014~2015년이다. 두 해 동안 각 2억 6497만 원과 9619만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모두 용역 매출이었다. 영업손실은 각 1087만 원과 441만 원으로 나와 있다. 특이한 점은 해당 자료에서 에너세라믹의 종업원 수는 0명으로 기재돼 있다는 점이다.
에너세라믹이 단독으로 출원한 특허에 나와 있는 에너세라믹의 법인 주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의 한 소재지로 네이버 지도의 ‘거리뷰’ 서비스를 통해 2010년 5월 사진을 확인해본 결과 카센터와 김치제조업체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후 주소도 등기사항전부증명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는데 서울시 성동구, 동대문구의 오피스텔과 사무실을 거쳐 현재는 서울시 강남구 소재의 한 아파트로 등기돼 있었다. 해당 아파트 주소는 선 교수와 아내가 공동 소유·등기된 주소와 동일하다. 이곳들이 배터리 소재 연구실로 사용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에너지업계 한 관계자는 “나온 자료들로만 봤을 땐 회사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며 “자신이 수행했던 국가 R&D 과제의 특허들과 비슷한 특허를 개인회사 단독으로 출원했다가 문제가 될 것 같았는지 한양대 산단으로 권리를 옮기고 민간에 팔아 수익까지 챙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의문점이 많은 기업이 출원한 특허를 어떻게 해서 LG화학이 거액을 들여 구매한 것인지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LG화학 관계자는 “특허 유효성을 판단한 결과 당시 향후 업계의 사실상 표준으로 작용할 수 있는 중요한 특허여서 이른바 ‘특허 괴물’이라 불리는 곳들이 이 특허를 인수하면 사업적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판단하에 선제적으로 매입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더 자세한 내용은 회사 영업 비밀과도 관련된 것으로 답변하기 어렵다. 이전 특허권 소유 관계 등에 대한 부분은 대리 권한자가 아니기에 답변 드리기 적절하지 않다”고 전했다.
일요신문i는 선 교수와 통화를 시도했으나 “해외 출장 중이라 답변이 어렵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후 다시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고, 문자 메시지에도 답변을 주지 않았다. 한양대 측은 “에너세라믹은 산학협력단과 무관한 업체”라며 “에너세라믹을 통해 정부 과제에 포함된 특허를 출원한 내역이 없다”고 답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