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직후 전직 국회의원 부친에게 연락…범행 후 현장에 미성년자 딸 데려온 까닭 등 의문
#결혼 10년 만에 파국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12월 3일 오후 7시 50분쯤 서울 종로구 사직동 한 주상복합아파트에서 부부싸움을 하다가 아내를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긴급체포됐다. 폭행 과정에는 35cm 길이의 금속 재질 둔기가 동원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확한 범행동기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A 씨와 아내는 평소 금전 문제와 성격 차이로 불화를 빚어왔다고 알려졌다. 경찰 조사에서 A 씨는 “고양이 장난감으로 아내의 머리를 때렸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A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서울중앙지법은 12월 6일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A 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거쳐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해당 아파트 주민은 “당일(3일)에는 몰랐는데 이튿날 소문을 듣고 우리 동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너무 끔찍하고 충격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평소 A 씨 부부와 알고 지냈냐는 질문에 “엘리베이터에서 인사만 하던 사이”라고 답했다.
12월 12일 서울 종로경찰서는 A 씨를 서울중앙지검에 구속 송치했다. 이날 오전 8시 15분쯤 성북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온 A 씨는 ‘혐의를 인정하느냐’ ‘자녀에게 할 말 있느냐’ ‘질식사 소견이 나왔는데 어떻게 살해했느냐’ 같은 취재진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12월 20일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조석규)는 A 씨의 구속 기간을 12월 31일까지로 연장했다.
A 씨는 한국 국적으로 서울 소재 외국어고, 미국 휘트워스대학을 졸업한 뒤 캘리포니아주 변호사 면허를 취득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등에서 근무하다가 국내 대형 로펌으로 자리를 옮겼다. 2023년 9월에는 금융위원회 평가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A 씨는 체포 직후 금융위원회에서 해촉됐다.
A 씨는 사망한 아내와 2013년 3월 서울 대형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으며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렸던 아버지 B 씨의 영향으로 수많은 하객이 몰려 교회 주변에 장사진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A 씨가 거주하는 아파트 다른 주민은 “원래 B 씨가 자주 방문해 산책도 하고 단지 내 카페도 가고 그랬다”고 말했다.
#“가족이 아프다” 녹취록 살펴보니
12월 1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이성만 무소속 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119신고자 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3일 오후 7시 49분쯤 119에 “여기 구급차가 급히 필요하다. 우리 가족이 아프다”는 내용의 신고가 접수됐다.
119상황요원이 가족 중 누가 아프냐고 묻자 A 씨는 “와이프”라고 답했다. 상황요원이 아내의 상태를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요구하자 A 씨는 “크게 다쳤다. 머리도 다치고 크게 다쳤다”고 설명했다.
“의식은 있어요?” “부르면 대답해요?”라는 질문에 A 씨는 “의식이 조금 있다”며 “(부르면) 조금 반응은 하는데 크게 반응은 안 한다”고 답했다. 상태를 상세하게 묻는 상황요원의 질문이 이어지자 A 씨는 “정확하게 모르겠다”며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A 씨가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자, 상황요원은 “옆에 다른 사람이 있으면 전화를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옆에 있던 그의 아버지 B 씨가 전화를 받아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B 씨는 검사 출신 전직 다선 국회의원으로, A 씨가 사건 발생 직후 119보다 먼저 연락해 현장에 온 것으로 파악됐다.
B 씨는 상황요원에게 “일단 빨리 와 달라.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며 “지금 사고가 나서 피를 많이 흘리고 있다”고 했다. 당시 A 씨 부인은 위중한 상태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구급활동보고서에는 “접촉 당시 환자가 무의식, 무호흡, 맥박이 없다”며 “외상성 심정지로 추정된다”는 등의 내용이 적혔다. A 씨 부인은 3일 오후 9시쯤 사망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부검 결과 피해자 사인이 경부(목 부위) 압박 질식과 저혈량 쇼크 등이 겹친 것으로 추정된다는 1차 구두 소견을 받았다. 둔기로 머리를 한 차례 때렸다고 주장한 A 씨의 진술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에 있던 B 씨에 대해선 “범죄 혐의점이 없어 입건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별거 중 부부가 그날 만난 까닭은?
검찰이 구속 기한을 연장할 만큼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많다. 경찰이 추정하는 사건 발생 시간은 오후 6시 50분~7시인데 A 씨의 119 신고 시간은 7시 49분이다. '지연 신고' 논란이 제기되는 이유다. 약 1시간 동안 A 씨는 아버지 B 씨에게 연락해 도움을 요청했으며 이후 소방과 경찰이 출동하는 사이 A 씨는 집을 나가 딸을 데리고 돌아왔다. 신고 1시간 반 만에 체포된 A 씨는 변호사와 동행했다. 이와 관련해 A 씨는 “당시 흥분한 상태여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별거 중이던 아내가 왜 그날 남편이 사는 집으로 왔는지도 미스터리다. A 씨 부부는 잦은 가정불화를 겪어 최근 별거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날 아내가 A 씨의 집을 찾았고 부부싸움을 하다가 결국 살해당했다. 게다가 A 씨가 사건 직후 왜 사건 현장인 집으로 미성년자인 딸을 데리고 왔는지도 의문이 남는다. 자세한 내막은 검찰의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