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탐지기’ 추가 조사 의욕까지 보였는데…모든 조사 공개, 가족 피해 등 심한 압박 받은 듯
서울 강남 유흥업소발 마약 사건의 주요 피의자로 지목됐던 이선균은 10월부터 경찰의 조사를 받아왔다. 경찰은 인천항을 통해 유입된 마약의 유통경로를 수사하던 중 강남의 한 유흥업소에 마약이 유통된다는 첩보를 받았고, 이 업소의 여성 실장 A 씨(29)가 이선균과 수차례 연락을 한 정황을 발견해 그를 사건 관계자로 판단, 수사를 진행해 왔다.
수사 보도 직후인 10월 20일 이선균은 마약 의혹으로 내사를 받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A 씨와 신원불상의 인물로부터 마약 투약을 빌미로 지속적인 공갈·협박을 받아 3억 5000만 원 상당을 갈취당했고, 수사기관에 고소장을 제출한 상태라고도 밝혔다. 마약 투약 등 전과 6범인 A 씨는 11월 3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대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며 신원불상의 인물로 지목된 공범 B 씨(여·28)는 도주했다가 이선균이 사망한 뒤인 12월 27일에야 체포됐다.
B 씨는 A 씨가 교도소 수감 당시 알게 된 지인으로 출소한 뒤 A 씨의 오피스텔 위층에 거주하며 서로의 휴대전화 비밀번호까지 공유할 만큼 친한 사이를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사이가 틀어지면서 A 씨의 마약 혐의를 경찰에 전달하고, A 씨가 이선균과 가까운 사이라는 사실을 이용해 이 둘을 모두 협박한 혐의를 받고 있다. B 씨는 이선균으로부터 5000만 원을 받아 챙긴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B 씨의 존재를 정확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선균은 10월 28일, 11월 4일, 12월 23일까지 총 세 차례에 걸쳐 경찰의 소환조사를 받았다. 조사에서 이선균은 A 씨의 진술만으로 자신의 혐의 여부가 갈릴 수 있다는 것에 억울함을 피력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마약 간이 시약 검사, 모발 검사, 체모 검사까지 마쳤지만 모두 ‘음성’이 나왔고, 이외에는 별다른 결정적인 증거가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A 씨가 “이선균이 마약을 투약하는 것을 봤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는 “A 씨가 약을 줘서 투약하긴 했으나 그것이 마약인지는 알지 못했고 수면제라고 생각했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12월 23일 3차 소환에서 19시간에 달하는 강도 높은 밤샘 조사를 받은 이선균은 이날 A, B 씨의 공갈 협박 사건의 피해자로서 고소인 조사도 함께 마쳤다. 당시 그는 “이제 앞으로 경찰이 저와 공갈범들 가운데 어느 쪽 진술에 신빙성이 있는지를 잘 판단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밝혔고, 사흘 뒤인 12월 26일에는 A 씨와 함께 서로의 진술 신빙성을 가리기 위한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받겠다는 의견서를 수사 담당 기관인 인천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처럼 자신의 고소 사건은 물론이고 추가 조사에도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라고 밝혀온 그가 돌연 사망한 데에 대중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선균은 12월 27일 오전 10시 30분께 서울시 종로구 와룡공원 주차장에 주차된 자신의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같은 날 오전 10시 12분께 그의 매니저가 "(이선균이) 유서로 보이는 메모를 작성하고 집을 나섰다. 어제까지는 연락이 됐는데 지금은 되지 않는다. 차량도 없어졌다"고 경찰에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은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통해 와룡공원 주차장에서 이선균의 차량을 발견했다. 당시 차 안에 있던 이선균은 의식이 없는 상태였으며 구급대원에 의해 현장 사망 판정을 받았다.
앞서 그와 함께 마약 투약 의혹을 받았던 가수 지드래곤(GD)도 추가 증거나 증언이 없어 무혐의로 종결됐고, 이선균 역시 마약 투약과 관련해서는 A 씨의 진술만 남아있는 상태였기에 연예계에서는 "이선균 역시 무혐의로 끝나지 않겠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기도 했었다. 유흥업소를 출입했다거나 A 씨와의 관계 의혹 등은 이미지의 문제일 뿐, 법을 어기지 않았다는 것만 확인된다면 그 역시 자숙 후 복귀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었다. 그러나 결국 이선균이 사망하면서 이 같은 예측도 물거품이 됐다. 그가 사망함에 따라 경찰의 마약 수사도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될 전망이다.
그의 죽음에는 △비공개 조사 요청이 거부돼 이후에도 모든 조사 일정이 공개된다는 압박감 △사생활 유출로 인한 이미지 회복의 어려움 △이번 사건으로 인한 광고 계약 위반 등 위약금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가족과 함께한 광고도 이번 사태로 직격탄을 맞고 아내 전혜진에게까지 피해가 간 상황인 데다 코로나19 끝에 겨우 개봉 일정을 잡으려던 작품들까지 줄이어 엎어지게 된 것이 엄청난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며 조심스럽게 귀띔했다.
이선균의 사망 후 이어진 연예인들의 추모글을 놓고도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를 비판하는 측은 “여전한 의혹이 있는 이선균에게 온전히 애도와 추모가 주어져야 맞는 것인지”를 지적했고, 긍정하는 측은 “그 의혹이 진실이라고 100% 확인되지 않은 한 다른 사람의 추모를 막을 이유도 없다”고 맞섰다. 12월 29일 방송되는 ‘SBS 연기대상’에 참석하는 배우들이 추모의 뜻을 모아 드레스 코드를 ‘블랙’으로 맞춘다는 이야기에도 “갑론을박이 있는 사안을 공적인 자리까지 끌고 오지 말라”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다만 ‘연기대상’ 측은 이선균에 대한 추모 영상은 따로 마련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일축했다. 그와 함께 연기한 SBS 드라마 ‘법쩐’의 출연진들도 시상식 불참 의사를 밝힌 상태다.
한편 이선균의 장례식과 발인식은 모두 삼엄한 경계 속에서 치러졌다. 장례식장에는 한때 일부 기자와 유튜버들이 몰려 소란을 피우면서 고인의 소속사인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가 “일부 매체에서 고인의 자택, 소속사 사무실, 장례식장까지 기습적으로 방문해 취재하고, 자신을 유튜버로 소개한 분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장례식장을 방문해 소란이 빚어지는 등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잔혹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부디 황망히 떠나보내야 하는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유가족과 동료, 지인 모두가 원하는 만큼 애도하고 추모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다시 한 번 간곡히 부탁드린다”는 공식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발인식에는 고인의 유족과 배우 이성민, 류승룡, 조진웅, 설경구, 박성웅, 김의성, 김준한, 최덕문, 유해진, 공효진, 김동욱, 류수영 등이 함께 했다. 전날에도 이정재, 정우성, 조진웅, 유연석, 조정석, 설경구, 류준열, 김성철, 윤계상, 배성우, 문근영 등 동료 배우들과 영화 ‘킹메이커’ ‘킬링로맨스’ ‘기생충’으로 고인과 호흡을 맞춘 변성현 감독, 이원석 감독, 봉준호 감독이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