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DJ·MB는 수용했는데, 대통령실 “즉각 거부권”…총선 앞두고 ‘방탄 정당’ 프레임 우려
국회는 지난 12월 28일 본회의를 열어 ‘김건희 특별법’과 ‘대장동 50억클럽 특검법’ 2개 법안을 의결했다. 이 법안은 지난 4월 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에 지정, 본회의에 자동 상정된 것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야당의 강행처리에 반발하며 반대토론만 한 뒤 본회의장을 퇴장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 의원들만 표결에 참여해 ‘김건희 특검법’은 재적 298명, 재석 180명 중 찬성 180명, 반대 0명으로 의결됐다.
헌법 53조에 따라 국회에서 의결된 법안은 정부에 이송돼 15일 이내 대통령이 공포한다. 두 법안은 공포 즉시 시행되도록 규정돼있다. 시행되면 국회의장이 바로 특검 임명을 요청하고, 대통령이 특검 후보자 추천을 정당에 의뢰, 정당이 특검 후보자 추천, 대통령의 임명 절차를 거친다.
대통령실은 쌍특검법이 국회 통과된 지 10분 만에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방침을 공식화했다. 이도운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열어 “지금 국회에서 ‘쌍특검’ 법안이 통과됐다”며 “대통령은 법안이 정부로 이송되는 대로 즉각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수석은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 권한인 ‘재의요구권’ 대신 정치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거부권’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불편한 심기를 노출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앞서 윤 대통령은 양곡관리법, 간호법, 노란봉투법, 방송3법 등 국회가 의결해 정부로 송부한 법안들에 대해 잇따라 거부권을 발동한 바 있다. 다만 이 법안들은 공포 시한 전까지 충분히 숙의 기간을 갖고 한덕수 총리가 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하는 등의 모양새를 갖췄다. 그런데 이번 김건희 특검법은 이러한 절차도 없이 바로 거부권 행사 방침을 밝혔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쌍특검 법안은 공포되지 않고 다시 국회로 돌아온다. 재의요구로 국회에 넘어온 법이 재의결되려면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다만 이때는 처음 표결과 달리 무기명 투표로 진행된다. 앞서 표결에서 찬성이 180표 나온 것을 감안하면, 재의결시 국민의힘에서 19표 정도만 이탈해도 3분의 2를 넘어선다.
만약 재의결 전에 국민의힘에서 ‘현역 의원 컷오프’ 등 이른바 공천 물갈이 명단이 돌면 이에 반발한 의원들이 찬성표로 돌아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무기명 투표라 이탈표를 색출하기도 쉽지 않다. 윤 대통령 입장에선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가 구성돼 물갈이 윤곽이 나오기 전에 신속하게 김건희 특검법 재표결을 마무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즉각 거부권을 발동한다고 공천 전에 재의결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하는 시한은 정해져 있지만, 다시 국회로 넘어온 법안을 국회가 언제 다시 처리해야 하는지는 시한이 정해져 있지 않다. 1월 9일 본회의가 예정돼 있지만, 민주당 입장에서는 이때 재의결하지 않고 국민의힘 상황을 보며 천천히 처리해도 된다”고 설명했다.
여당이 김건희 특검법 재의결에서 반대표를 행사해 폐기시키면, 총선을 앞두고 ‘김건희 방탄 정당’ 프레임이 씌워질 수 있다. 한국갤럽이 국민일보 의뢰로 12월 7일부터 8일까지 이틀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김건희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70%가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고 답했다.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20%에 그쳤다. ‘보수의 성지’ 대구·경북(TK)에서도 ‘거부권 행사 말아야 한다’가 67%로 압도적으로 높았다(여론조사 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 탈당을 선언한 이준석 전 대표도 12월 10일 자신의 SNS에 “지난 몇 년간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개인의 것이 아니고, 그를 보호하는 당의 문제라고 공세하기 위해 ‘이재명 방탄’을 외쳤다. 그럼 김 여사에 대한 특검법에 거부권이 행사됐을 때 어떻게 될지 예측이 안 되느냐”며 “당에는 거부권을 무력화하는 재의결을 요구하는 야당의 공세가 거세게 들어올 것이다. 대통령이 행사한 거부권이 아니라 ‘재의결하지 않는 여당’에 국민의 비난이 가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여권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이 특검을 수용하고, 김 여사는 대국민 사과를 한 뒤 관저를 나와 사저로 거처를 옮기는 등 김건희 여사 문제를 정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 윤 대통령과의 거리두기는 어려워졌다는 평가다. 한동훈 위원장은 지난 12월 19일 국회에서 ‘김건희 특별법’에 대해 “그 법안은 정의당이 특검을 추천하고 결정하게 돼 있다. 그리고 수사 상황을 생중계하는 독소조항까지 들어있다. 무엇보다 다음 총선에서 민주당이 원하는 선전·선동하기 좋게 시점을 특정해서 만들어진 악법”이라며 “그런 악법은 결국 국민들의 정당한 선택권을 침해하는 문제가 있다. 이 점을 충분히 고려해 국회 절차 내에서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피력한 셈이다.
‘비윤계’로 분류되는 여권 관계자는 “총선을 앞두고 악재는 빨리 끊어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특검법을 받기도, 거부하기도 어려운 진퇴양난 상황이다. 한동훈 비대위까지 들어서면서 윤 대통령과 거리가 더 가까워졌다. 이대로 가면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김건희 리스크’에 끌려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럼 한 위원장의 정치적 생명도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현직 대통령이 친인척 범죄 혐의에 대한 사정기관의 수사를 막는 것이 유례없는 일이라는 점도 윤 대통령의 고심을 더 깊어지게 한다. 역대 대통령은 가족 연루 의혹에 대해 수사 또는 특검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김영삼 전 대통령(YS) 재임 시절인 1997년 대검 중수부는 이른바 ‘소통령’으로 불렸던 아들 김현철 이사장에 대해 이권 청탁을 받고 기업인들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해 재판에 넘겼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아들 김홍업 전 의원과 김홍걸 의원도 부친 재임기간 청탁을 받고 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MB) 재임 때인 2012년 대검 중수부는 ‘만사형통’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을 저축은행에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해 재판에 넘겼다. 이어 같은 해 이 전 대통령은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 사건’ 특검도 수용했다. 이에 따라 아들 이시형 씨는 현직 대통령 자녀로는 처음으로 특검 조사를 받았다. 당시 최금락 청와대 홍보수석은 “더 이상의 소모적 논쟁을 막고 시급한 민생 문제 해결에 국력을 모으도록 하는 것이 이 시점에 대통령에게 부여된 소임이라고 판단해 결국 대승적 차원에서 법안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또 다른 관계자는 “대선 과정에서 ‘특검을 거부하는 이유는 죄를 졌기 때문이다. 떳떳하면 사정기관 통해서 권력자도 측근도 조사 받는 것’이라고 말한 게 윤석열 대통령”이라며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 자체가 국민들이 보기에 본인들의 죄를 인정하는 모습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윤 대통령은 2021년 12월 29일 경북 선대위 출범식에서 “떳떳하면 사정기관 통해서 권력자도 조사받고 측근도 조사받고 하는 것이지, 특검을 왜 거부하느냐. 죄졌으니까 거부하는 거다. 진상을 밝히고 조사를 하면 감옥에 가기 때문에 못 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에서는 김 여사와 특수관계인인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면 이해충돌방지에 해당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조상호 민주당 법률위 부위원장은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법률에 대해서는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며 “하지만 김건희 특검법은 본인의 배우자를 수사 대상으로 명시한 법이다. 이를 윤 대통령이 기피하지 않고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조 부위원장은 “현행법 위반의 중대한 탄핵 사유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국회 탄핵 가결까지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탄핵 사유 중 하나가 본인과 측근에 대한 특검 수사를 방해한 의혹이었다”고 덧붙였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