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거부권 행사 시 ‘방탄 프레임’ 갇혀…일각선 “거부권 행사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지적도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이른바 ‘김건희 특검법’은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과 함께 지난 4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 지난 10월 24일 본회의에 부의됐다. 하지만 국민의힘 반대로 안건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60일이 되는 오는 12월 22일까지 상정되지 않으면, 그 후 열리는 첫 본회의에 자동 상정된다. 이에 따라 오는 28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 표결이 유력하다. 야당이 과반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김건희 특검법은 무리 없이 통과될 것이란 예상이다.
정치권의 관심은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지 여부에 쏠려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양곡관리법, 간호법, 노란봉투법, 방송3법 등 국회가 의결해 정부로 송부한 법안들에 대해 잇따라 거부권을 발동한 바 있다.
하지만 김건희 특검법은 성격이 다르다. 부인의 의혹을 특검 수사를 통해 진상규명하자는 법안을 대통령이 막는 모양새기 때문. 한국갤럽이 국민일보 의뢰로 지난 12월 7일부터 8일까지 이틀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김건희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70%가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고 답했다.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20%에 그쳤다. ‘보수의 성지’ 대구·경북(TK)에서도 ‘거부권 행사 말아야 한다’가 67%로 압도적으로 높았다(여론조사 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더 큰 문제는 김 여사를 둘러싼 문제가 특검법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해외순방 1호기 민간인 동행 및 명품쇼핑,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변경 특혜, 디올백 명품수수 등 각종 논란이 불거졌다. 김 여사의 의혹에 대해 대통령실은 계속해서 침묵하고 있다.
‘김건희 리스크’가 현실화되면서 속이 타는 것은 국민의힘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직격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가 국민의힘 사무처에서 작성한 ‘22대 총선 판세 분석 보고서’를 바탕으로 서울 49석 가운데 우세지역이 ‘여당 텃밭’인 강남갑·을·병, 서초갑·을, 송파을 등 6곳에 불과하다는 내용을 보도하면서 경고음은 더 커졌다.
당 비대위원장 하마평에 오르며 차기 총선을 이끌 당의 ‘간판’들도 김 여사 문제에 끌려들어가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양평고속도로 의혹이 일파만파 퍼지자 확산을 막기 위해 ‘사업 백지화’ 폭탄선언을 했다가 번복하는 등 구설에 오른 바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역시 12월 6일 국회에서 디올백 명품수수 의혹 질문을 받자 “언론에서 상세한 보도가 안 나와서 잘 알지 못한다”고 답변을 피했다. ‘수사가 필요하다면’이라는 추가 질문에는 “가정을 달고 계속 물어보시면 (답하기 어렵다)”고 답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여권 내부에서는 김건희 여사 문제를 정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이 특검을 수용하고, 김 여사는 대국민 사과를 한 뒤 관저를 나와 사저로 거처를 옮겨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대통령실이 김건희 특검법 재의결을 가정해 이탈표를 단속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 재의요구로 국회에 넘어온 법을 재표결할 경우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최종법률로 확정된다. 이때는 처음 표결과 달리 무기명 투표로 진행된다. 현재 원내 범야권 의석수가 182석이라, 국민의힘에서 18표 정도만 이탈해도 3분의 2를 넘어선다.
만약 재의결 전에 ‘현역 의원 컷오프’ 등 이른바 ‘살생부’ 명단이 돌면 이에 반발한 의원들이 찬성표로 돌아설 수 있다. 무기명 투표기 때문에 이탈표를 색출하기도 쉽지 않아, 당내 혼란은 가중된다. 따라서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여당이 김건희 특검법 표결 및 재표결을 확실히 마무리한 뒤 총선 공천관리위원회를 구성하길 바랄 수밖에 없다. 이에 윤 대통령이 김기현 대표에게 당초 12월 중순 예고된 공관위 조기 구성을 12월 말로 최대한 미뤄 달라 당부했다는 말이 전해지기도 했다.
김건희 특검법을 두고 국민의힘은 진퇴양난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김건희 특검법을 윤 대통령이 수용하는 순간, 내년 총선은 김건희 특검 총선의 수렁에 빠져들게 된다. 특검 주재로 매일 수사 결과나 진행 상황을 브리핑하게 될 텐데, 국민의힘이 분위기 반전을 할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반대로 윤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여당이 재의결에 반대표를 행사해 폐기되면, ‘김건희 방탄 정당’ 프레임이 씌워질 수 있다. 이준석 전 대표는 12월 10일 자신의 SNS에 “지난 몇 년간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개인의 것이 아니고, 그를 보호하는 당의 문제라고 공세하기 위해 ‘이재명 방탄’을 외쳤다. 그럼 김 여사에 대한 특검법에 거부권이 행사됐을 때 어떻게 될지 예측이 안 되느냐”며 “당에는 거부권을 무력화하는 재의결을 요구하는 야당의 공세가 거세게 들어올 것이다. 대통령이 행사한 거부권이 아니라 ‘재의결하지 않는 여당’에 국민의 비난이 가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민의힘 일각에서 민주당이 김건희 특검법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기 전에 합의를 통해 미리 처리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여권 한 관계자는 “정치에서 악재는 최대한 신속히 털어내야 한다. 지난 4월에 국민의힘이 협조해 쌍특검법을 처리하고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으면, 당시에는 국민적 비판에 직면했겠지만 지금은 잊힌 이슈가 됐을 것”이라며 “그런데 무리하게 국민의힘이 반대하면서 패스트트랙에 태워졌고, 총선을 코앞에 두고 김 여사 리스크가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게 됐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 스스로도 특검법 수용 여부와 관계없이 '영부인 리스크'로 정치적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대선 기간 동안 윤석열 당시 후보는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과 관련해 “(김 여사가) 선수 이 아무개 씨에게 부인의 신한증권 계좌의 매매거래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 이 씨가 관여했던 기간 동안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사고판 거래일자는 며칠에 불과하다”며 “내가 보니 주가 자체가 시세조종 행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소액의 오르내림이 있었고, 오히려 조금 비쌀 때 사서 쌀 때 매각한 게 많아서 나중에 수천만 원의 손해를 보고 4~5달 만에 계좌에서 돈을 전부 인출했다고 들었다”고 관련성에 선을 긋는 발언을 했다.
하지만 권오수 전 회장 등 사건 관계자들의 재판 과정에서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인지 정황이 다수 드러났다. 특검 수사를 통해 이러한 내용이 일부 사실로 드러나고 기소가 되면 윤 대통령 발언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될 수도 있다. 야권 한 관계자는 “이재명 대표도 대선 기간 말한 몇몇 발언으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로 검찰이 기소해 재판을 받고 있다”며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을 목적으로 부인의 범죄혐의를 감추고 허위사실을 말한 것 아니냐. 당장 기소 및 처벌은 안 되지만 비판에 직면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꼬집었다.
민주당에서는 김 여사와 특수관계인인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면 이해충돌방지에 해당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조상호 민주당 법률위 부위원장은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법률에 대해서는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며 “하지만 김건희 특검법은 본인의 배우자를 수사 대상으로 명시한 법이다. 이를 윤 대통령이 기피하지 않고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중대한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 부위원장은 “현행법 위반의 중대한 탄핵 사유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국회 탄핵 가결까지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탄핵 사유 중 하나가 본인과 측근에 대한 특검 수사를 방해한 의혹이었다”고 덧붙였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