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스미레 중국 우이밍에 완승…‘전투력에 형세판단 능력까지 장착’ 평가
4일 한국기원 바둑TV스튜디오에서 막을 내린 ‘한중일 천재소녀 삼국지’ 결승에서 한국의 김은지 9단이 중국의 우이밍 5단에게 181수 만에 흑으로 불계승을 거두고 정상에 올랐다. 김은지는 앞서 3일 열린 일본 나카무라 스미레 3단에게 완승을 거둔 데 이어 우이밍과의 결승전도 압도하며 최종 승자가 됐다. 이로써 김은지는 우이밍과의 상대전적을 1승 2패로 좁혔고, 스미레와의 상대전적을 5승 무패로 벌렸다.
‘한중일 천재소녀 삼국지’는 한국, 중국, 일본을 대표하는 10대 기사 3인방이 벌인 새해맞이 이벤트 대결이다. 바둑TV가 1월 2일부터 4일까지 사흘간 생방송으로 중계했다. 한국에서는 김은지 9단(2007년생), 중국에서는 우이밍 5단(2006년생), 일본에서는 나카무라 스미레 3단(2009년생)이 나섰다. 각국을 대표하는 천재소녀들이다.
우승상금 1000만 원이 걸린 대회는 역토너먼트(변칙 토너먼트)로 진행됐다. 추첨으로 1회전 대진을 정해 승자가 결승에 선착하고 이어 1회전 패자와 1회전 부전승자가 2회전을 치러 결승에 합류할 기사를 가려내는 방식이다. 누구든 2승을 거둬야 우승할 수 있다.
2020년 입단한 김은지는 2023년 12월 최정 9단을 밀어내고 여자기성 타이틀을 따내며 16세, 입단 3년 11개월 만에 9단에 올랐다. 당시 최단 기간, 최연소 입신(入神) 등극 등 기록들을 갈아치우며 이슈가 됐다. 2023년 한 해 여자기성전뿐 아니라 루키영웅전, 난설헌배, 효림배 등 줄줄이 우승컵을 들어 올린 것은 물론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표로 선발돼 여자 단체전 은메달까지 따내는 등 국제적 감각도 끌어올렸다.
15세의 스미레는 일본기원이 영재 특별채용 시스템을 통해 입단시킨 영재1호 입단자다. 2022년에는 센코배와 일본 여류명인전 등 쟁쟁한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2023년에는 일본 여자 일인자 우에노 아사미를 꺾고 여류기성전에서 우승하며 일본 최연소 타이틀 보유자가 됐다.
‘대륙의 천재’라 불리는 우이밍은 2019년 12세의 나이로 입단했다. 우이밍은 2022년 호반배 세계여자 패왕전에서 5연승을 질주해 중국 우승을 견인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중국 대표로 출전해 여자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빼어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스미레와 우이밍을 차례로 꺾고 우승한 김은지는 최정 9단을 물리치고 여자기성전 우승을 따낸 이후 기량이 더 정교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바둑TV 해설의 박정상 9단은 “유리할 때 지켜내는 김은지 9단의 능력이 확실히 업그레이드된 것을 느꼈다. 그것은 형세판단 능력이 향상됐다는 걸 의미한다. 전투력이 강점인 김은지 9단이 형세판단 능력까지 장착한 2024년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를 품게 만드는 시리즈였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는 또 “국가대표 코치 시절에도 느꼈지만, 바둑을 대하는 자세와 공부량을 비롯해 김은지만큼 바둑에 진심인 기사는 없었다”며 놀라워했다.
우승을 차지한 김은지는 “출발이 좋았으니 올 한 해도 잘해보고 싶다. 대국을 하면서 스미레 3단이 많이 성장한 걸 느꼈다. 우이밍 5단도 앞으로 더욱 좋은 경쟁상대가 될 것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
한편 최하위에 머물렀지만 일본의 스미레 3단도 주목을 받았다. 기량이 많이 향상됐다는 것. 한 프로기사는 “김은지 9단이 후반에 헤매는(?) 단점이 많이 극복됐듯이 스미레 3단도 안정감이 많이 좋아졌다. 3월부터 한국 무대에서 뛰게 되면 대국수도 많이 늘어날 것이고 경험도 쌓여 국내 여자바둑계 판도가 확 바뀔 것 같다”면서 “이 연령대에서는 나이 한 살 차이가 무척 크게 느껴지는데 김은지와 스미레는 두 살 차이다. 그런 면에서 스미레가 언제쯤 김은지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승부처 돋보기] 한중일 천재소녀 삼국지 결승전
흑 김은지 9단(한국) 백 우이밍 5단(중국) 181수끝, 흑 불계승
[장면도1] 백, 기세에서 밀렸다
흑1은 도발적인 수. 백에게 싸울 것인지, 참을 것인지를 강요하고 있다. 여기서 우이밍은 2로 하나 밀어두고 4로 끊어갔는데, 기세에서 밀렸다는 평을 들었다. 흑5~7로 가볍게 처리한 다음 9의 꼬부림이 두터운 수. 흑이 초반 포인트를 올리는 장면이다.
[정해도] 백, 피할 이유가 없었다
김은지의 힘을 의식해 전투를 피한 것이었을까. 백은 당연히 4·6으로 나가 강력하게 끊고 싸울 곳이었다. 백10까지 이 전투는 백이 피할 이유가 없었다.
[장면도2] 생뚱맞은 수
지금 흑이 ▲로 이은 장면. 이제 본격적인 중앙 전투의 막이 오르는가 싶었는데 백1로 밀어간 것이 영 생뚱맞은 수. 흑2가 이른바 천왕봉의 대세점이었다. 우이밍은 내친 김에 백3·5로 흑 한 점을 품에 안았지만 흑6으로 중앙이 깨끗하게 잡히면서 백은 실리도, 두터움도 모두 잃었다.
[장면도2-실전] 백, 자연스런 흐름
이 바둑의 우이밍은 김은지와의 몸싸움을 자꾸 피하는 느낌이다. 백은 1부터 7까지가 정확한 수순. 백7은 역시 대세의 요충지다. 흑8을 기다려 백9로 밀어가는 흐름이 자연스럽다. 이랬으면 이제부터의 바둑이었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