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 커제·미위팅 격파, 삼성화재배서 중국에 꺾인 자존심 세워…결승전 내년 1월 29일부터
지난 12월 13일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신안갯벌박물관에서 열린 제28회 LG배 조선일보기왕전 준결승에서 신진서 9단과 변상일 9단이 각각 중국의 커제 9단과 미위팅 9단을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신진서는 한때 자신의 천적이었던 커제를 상대로 251수 만에 흑 1집반승을 거뒀고, 변상일은 중국 랭킹 6위 미위팅에게 174수 만에 백 불계승으로 물리치고 결승에 올랐다. LG배에서 한국 기사들끼리 결승전을 치르는 것은 2020년 24회 대회에서 신진서 9단과 박정환 9단의 대결 이후 4년 만이다.
신진서와 커제의 대국은 한국 랭킹 1위 신진서와 중국을 대표하는 최강의 기사 커제의 22번째 대국으로 관심이 집중됐다. 초창기 신진서는 커제에게 6연패를 당하기도 했지만, 기량이 정상급으로 올라온 이후로는 5연승을 거두는 등 오히려 커제의 천적으로 군림하는 모습을 보여 화제를 모았다.
이날 대국에서도 신진서는 백번이 강하다는 커제를 상대로 단 한 번의 찬스도 내주지 않고 몰아붙였다. 중국 현지 한큐바둑의 해설마저 “소신(小申, 중국에선 신진서를 소신으로 신민준을 대신으로 칭한다)은 오늘 커제를 상대로 끝까지 우세를 유지했다. 대국 중간 소신의 몇몇 수는 간명하지 못했지만, 분명한 것은 커제에게 승리 기회는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고 할 정도의 완승이었다.
커제 9단을 상대로 최근 5연승을 거두고 있던 신진서는 다시 1승을 추가하며 6연승으로 연승행진을 이어갔고, 상대전적도 11승 11패로 균형을 맞췄다.
신진서 9단은 승리 후 인터뷰에서 “이번 LG배에 많은 걸 걸었다”고 할 정도로 부담이 있었음을 내비쳤다. 직전 삼성화재배의 중도 탈락, 아시안게임 개인전에서의 부진, 란커배 결승전 패배 등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이어 “결승에 올라 다행이다. 오늘 바둑은 (후반에) 어려워질 이유가 없었는데 결과적으로 제가 가진 단점들이 모두 드러났던 것 같다”면서 “세계대회 결승전은 누구와 만나더라도 항상 5 대 5 승부라고 생각한다. 변상일 9단이 춘란배 결승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실력적으론 비슷한데 제가 많이 이기고 있어 심리적으로 나은 부분이 있다. 그런 부분을 공략해야 할 것 같다”고 결승에 오른 소감을 말했다.
8강전에서 왕싱하오, 4강전에서 미위팅을 눕히고 결승에 오른 변상일은 춘란배에 이어 두 번째 세계대회 정상을 노크한다.
변상일은 “초반에 좀 더 잘 뒀으면 많이 앞서갈 수 있었는데 실수를 하는 바람에 만만치 않아졌다. 그 후에는 어려운 진행들이 있었지만 운이 좋았던 것 같다”고 겸손해 했다. 이어 “LG배 결승은 처음이라 기쁘고 신진서 9단이 올라와 부담감은 적을 것 같다. 결승에 오른 만큼 최선을 다해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상대전적에서는 신진서가 32승 7패로 크게 앞선다. 2022년 이후부터는 10연승 중이며 6번의 결승 맞대결에서는 신진서가 5승 1패로 우위를 보이고 있다.
바둑계 한 관계자는 “많은 사람들이 변상일을 두고 조훈현에게 맞서는 서봉수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것 같다”면서 “하지만 이제까지의 스타일로 잘되지 않았다면 새로운 전술로 맞설 필요도 있다고 본다. 변상일의 단점이 ‘급발진’이라고 하는데 이는 최근의 신진서에게도 해당되는 대목이다. 변상일이 란커배 결승전 신진서와 구쯔하오의 대결을 잘 분석하고 활용한다면 예상외 승부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LG가 후원하는 제28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의 우승상금은 3억 원, 준우승상금은 1억 원이다. 본선 제한시간은 각자 3시간, 40초 초읽기 5회가 주어진다. 3번기로 치러지는 결승전은 내년 1월 29일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승부처 돋보기] 제28회 LG배 세계기왕전 준결승전
흑 미위팅 9단(중국) 백 변상일 9단(한국) 174수끝, 백 불계승
백의 이단젖힘이 결정타
[장면도] 좌변에 남아있는 수단은?
여기까지 반집승부. 백은 우중앙이 통통하고 흑은 좌변이 주력이다. 여기서 흑이 1로 꼬부려서 받아주길 원했는데 이 수가 이 바둑의 패착이 됐다. 흑1로는 A로 밀어 좌변을 부풀리는 게 정수였다. 그렇다면 좌변 흑모양에는 어떤 수단이 남아있는 것일까.
[실전진행1] 변상일식 게릴라전
변상일은 백1부터 좌상을 움직여 귀에 뒷맛을 붙여둔다. 약간의 양보도 허용되지 않는 흑은 6까지가 최강의 저항. 여기서 백7로 하나 밀어두고 9로 붙여간 것이 ‘변상일식 게릴라전’의 시작이다.
[참고도] 흑이 망한 꼴
백의 붙임에 흑은 1의 뻗음이 최강의 반발이다. 한 치도 손해 볼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 하지만 좌변 흑의 모양은 생각보다 허점이 많다. 예를 들어 백2부터 10이면 쉽게 수가 나는 형태. 이건 흑이 망한 꼴이다.
[실전진행2] 완벽한 수읽기
흑1이 가장 상식적인 대응이지만 백6의 이단젖힘이 이 바둑의 결정타가 된다. 조금의 수도 허용해선 안 되는 흑은 7로 한사코 외곽을 봉쇄하지만 백8부터는 외길수순. 결국 백24까지 좌변 흑을 초토화시키면서 거뜬히 살았다. 실전진행 백9 때부터 읽어둔 변상일의 완벽한 수읽기였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