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명품관 상위 10위권서 탈락 ‘굴욕’…“2030세대 공략 등 통해 프리미엄 전략 탈피해야”
㈜한화갤러리아가 운영하는 갤러리아백화점은 지난해 모든 점포의 매출액이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경쟁 백화점의 주요 점포들이 역대 최고 매출액을 경신한 반면 갤러리아는 지난해 5대 백화점 전체 70개 점포 중 매출 상위 10위 안에 단 한 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해 ‘굴욕’을 겪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갤러리아백화점은 △서울 명품관(-7.0%) △타임월드점(-8.1%) △광교점(-6.5%) △센터시티(-0.9%) △진주점(-4.9%) 등 모든 점포의 매출이 감소했다. 특히 갤러리아의 ‘대표’ 점포인 서울 압구정 갤러리아명품관은 2022년 1조 2270억 원이었던 매출액이 지난해 1조 1406억 원으로 줄어들며 전국 백화점 매출 순위 10위권 밖인 11위로 밀려났다. 타임월드점은 16위, 광교점은 20위, 센터시티점은 38위, 진주점은 64위를 기록했다.
매출액 규모로 보면 한화갤러리아의 지난해 3분기 연결기준 매출액은 12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74% 내린 20억 원, 당기순손실 14억 원의 기록을 냈다. 이 기간 한화갤러리아의 시장점유율은 6.8%로 국내 백화점 시장 90%를 차지하고 있는 ‘빅3’ 백화점과 비교해 간극이 크게 벌어져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전국 13개 점포 합산 매출액이 12조 원을 넘기며 전년 대비 5.2% 성장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20일까지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매출액이 3조 원을 넘어서며 국내에서 처음으로 ‘3조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롯데백화점 본점도 지난해 첫 2조 원을 돌파했고 현대백화점의 ‘더현대 서울’도 지난해 최단기간 연 매출 1조 원을 넘어섰다.
한화갤러리아 매출 부진 배경에는 최근 나타난 ‘명품 소비’ 하락세가 있다. 전체 매출액에서 명품 판매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40%에 달할 정도로 경쟁사들에 비해 명품 시장 의존도가 높았던 갤러리아가 최근 ‘명품 소비 감소세’에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는 분석이다. 한화갤러리아는 국내 유통업계에서 처음으로 백화점 명품관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기업으로, 해외 명품기업들이 한국시장에 진출할 때 가장 먼저 입점하는 ‘명품 1호점’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사실 한화갤러리아는 수년 간의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이른바 ‘보복 소비’ 풍조로 명품 매출이 증가했을 때 자연스레 갤러리아 명품관의 매출도 함께 상승하는 덕을 봤다. 2020년 갤러리아 명품관의 연 매출은 8098억 원으로 전년 대비 8.5% 올랐고 5대 백화점 70개점 중 매출 9위 점포에 이름을 올렸다. 2021년에는 매출 1조 587억 원으로 30.7%나 성장했고(10위), 2022년에는 1조 2260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매출 순위 8위에 올랐다. 연 매출 1조 원 돌파는 개점 31년 만에 최초이기도 하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어느 정도 정리된 2023년부터 명품 소비가 다시 줄자 바로 매출이 꺾이며 직격탄을 맞았다. 한화갤러리아 관계자는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해외여행 등 대체 소비가 증가한 것이 매출 감소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내놨다.
이런 상황에서 갤러리아는 반전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 전문가들의 시선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경쟁사와 비교해 점포 수가 적어 기본 체급 차이가 있는 데다 워낙 강하게 붙어 있는 '명품 백화점' 이미지를 단기간에 벗어던지는 것은 한계가 많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박성의 진짜유통연구소 소장은 “초대형 매장도 거의 없고 주력 매장은 대전에 있다 보니 소비력의 차이와 인구 차이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서울은 초광역 상권이어서 여의도 더현대서울이 잠실의 롯데백화점 매출에 영향을 줄 정도인데, 갤러리아는 지점 규모와 점포수가 작아서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추진해온 신사업 부문의 매출이 백화점 매출로 연결되지 않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조직을 이끌어온 ‘오너 일가 3세’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은 미국 ‘3대’ 버거 브랜드 중 하나인 ‘파이브가이즈’를 국내에 들여왔다. 파이브가즈는 강남역 인근의 1호점과 여의도에 위치한 2호점 모두 개점 당일부터 수백 명이 줄을 설만큼 돌풍을 일으켰고, 2030세대를 주축으로 인기를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초기 단계인 만큼 매출액은 지난해 3분기 기준 36억 원 수준으로 그리 많지 않다. 한화갤러리아 안에서의 영향력도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백화점 매출과 연결되는 지점도 없어 침체된 갤러리아백화점의 재기 전략으로 의미를 찾기 어렵다. 박성의 소장은 “파이브가이즈는 갤러리아 백화점에 입점해 있지도 않고 백화점 강화 전략도 아니다”라며 “만약 파이브가이즈가 백화점에 있었다면 분수효과를 볼 텐데 그러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민 많은 한화갤러리아는 출구 전략으로 일단 ‘투 트랙’으로 가는 모양새다. 기존 명품 소비 고객층을 상대로 수익 확대를 꾀하면서 신사업 발굴에도 박차를 가하겠다는 전략이다. 서울 명품관, 수원 광교, 대전 타임월드 등 갤러리아의 ‘트로이카’ 점포를 주축으로 ‘ VIP 대상 콘텐츠’를 강화하면서 경쟁력 있는 브랜드를 유치해 신규 고객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보통 경쟁사들이 신규 고객 확보를 위해 MZ세대를 공략하거나 체험형 콘텐츠를 강화해온 패턴과는 다소 간격이 있다.
전문가들이 던지는 조언은 우선 한화갤러리아가 지금까지 써왔던 전략에서 탈피할 것에 방점이 찍힌다. 그리고 고객들의 최신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백화점으로 새로운 탈바꿈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거세다. 백화점의 기능이 과거 ‘럭셔리 하이 브랜드’ 제품 구매 공간에서 점차 식사와 체험, 쇼핑을 동시에 즐기는 나들이 장소로 변모한 트렌드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프리미엄 전략에서 벗어나 신규 고객 유치를 위한 투자가 필요해 보인다”며 “맛집이나 팝업스토어 등을 유치해 2030세대를 끌어들이는 전략이 있어야 일본처럼 백화점은 중년층 이상만 가는 곳으로 전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워낙 업황이 좋지 않고 경쟁이 심화된 상황에서 노력이 많이 필요해 보인다. 특히 신사업 개척보다는 비용 절감이나 내실화를 기하는 전략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모델링할 만한 사례로는 단연 현대백화점의 ‘더 현대 서울’과 ‘판교점’이 거론된다. 현대백화점은 이 두 지점을 기존 대표 점포인 압구정점과 달리 2030세대와 가족 단위 고객을 위한 매장으로 특화 구성했다. 더 현대 서울은 팝업스토어와 체험형 매장, ‘힙’한 감성의 매장을 등을 입점시키고, 판교점은 국내 최대 규모 식품관과 음식점, 체험형 매장 등을 들여와 가족 단위 고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덕분에 2023년 현대백화점 16개 점포의 총 매출액은 전년보다 2100억 원 늘어난 9조 6160원을 기록했다. 특히 판교점과 더 현대 서울의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각각 14.7%, 16.6% 껑충 뛰었다.
이 같은 진단에 대해 한화갤러리아 관계자는 “젊은 고객 유치를 위한 새로운 공간 조성을 고민 중”이라며 “지난해 4월 서울 명품관과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신사동 부지와 건물을 매입했는데 해당 부지에 최근 트렌드를 반영하는 동시에 명품관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을 만들어 2026년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백화점 출점 계획은 없으며 파이브가이즈 외에도 다양한 사업 분야의 신사업을 검토 및 구상중”이라고 덧붙였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