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협회 수차례 B팀 내보내는 등 홀대…짧은 준비기간 탓 고전하기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수식하거나 성과를 이야기할 때 나오는 말이다. 이처럼 대표팀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아시아 내 강호로 군림했고 세계무대에서도 성과를 거둬왔다.
그럼에도 이상하리만치 아시안컵에서는 뚜렷한 성과가 없었다. 국내에서 개최한 1, 2회 대회(1956년, 1960년)가 마지막 우승이었다. 이후 4회 준우승으로 체면치레를 했지만 그마저 1990년대 이전 세 번의 준우승이 몰려 있다. '아시아 호랑이'를 자처하는 한국 축구는 그간 왜 아시안컵에서 고전해왔을까.
#아시안컵 홀대했던 한국 축구
1980년대 중반을 전후로 한국 축구는 꾸준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국내 프로축구 리그가 창설되고 국가대표팀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등 체계가 잡힌 덕분으로 분석된다. 월드컵의 경우 1986년 대회, 올림픽은 1988년 대회부터 빠짐없이 본선에 참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축구는 이 기간에도 아시안컵 예선에서 탈락을 경험한 적이 있다. 아시안컵을 바라보는 대한축구협회의 태도 탓이다. 협회는 1992년 6월 열린 아시안컵 예선에 대학과 실업 무대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을 위주로 파견한 것이다. B팀 격 대표팀이 나선 당시 예선에서 대표팀은 방글라데시를 상대로 6-0 대승을 거뒀으나 태국에 1-2로 무릎을 꿇으며 본선에 나서지 못하게 됐다.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1988 아시안컵 예선에도 협회는 B팀을 내보냈다. 같은 시기 국내에선 과거 '박스컵'으로 불렸던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최순호, 김주성, 정용환 등 당대 축구스타들은 이 대회에 참가했다. 반면 아시안컵 예선에 나선 'B팀'은 바레인에 패하고 남예멘을 상대로 비기는 등 고전 끝에 가까스로 본선 진출을 이뤄냈다. 4년 뒤 축구협회는 이와 유사한 '작전'을 꺼내 들었으나 본선 진출 티켓을 놓친 것이다.
2004 아시안컵 본선 또한 대표팀이 최상의 전력을 구축하지 못한 대회로 꼽힌다. 대회 기간이 2004 아테네 올림픽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협회는 A대표급 자원 일부를 올림픽 대표팀으로 선발했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일원인 유상철, 이천수, 최태욱 등은 아시안컵이 아닌 올림픽에서 뛰었다. 대표팀은 2004 아시안컵에서 8강에 머물렀다.
#불협화음 또는 태도불량?
우승을 노리던 대표팀이 스스로 무너진 대회도 있었다. 대표팀의 아시안컵 도전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결과를 받아든 때는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1996 아시안컵이다. 당시 대표팀은 조별리그부터 불안한 모습(1승 1무 1패)을 보였고 이어진 8강에서 이란에 2-6으로 대패하며 대회를 마무리했다. 이는 '식스투 참사'로 불리며 최근까지 이란팬들의 놀림감이 되고 있다.
1994 미국 월드컵에서 2무 1패로 가능성을 보인 이후 불과 2년밖에 흐르지 않은 시점이었으나 참사가 일어난 것을 두고 일각에선 '선수들이 태업을 벌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박종환 감독의 강한 지도방식에 선수들이 불만을 품은 것이라는 추측이 오간 것이다. 박 감독이 대표팀을 오갈 때면 일부 선수들이 숙소를 이탈하는 등 갈등을 벌인 과거가 언급되기도 했다.
이를 두고 당시 선수로 활약했던 한 축구인은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들이 고의로 경기에 졌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태업까지는 아니지만 그때 대표팀 분위기가 좋지 못했던 것은 맞다고 본다"는 말을 남겼다. 팀 내 고참급 선수, 코치진의 역할에 대한 아쉬움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동남아 4개국에서 공동 개최된 2007 아시안컵에서 핌 베어벡 감독이 이끈 대표팀은 4강에서 승부차기로 패한 이후 3, 4위전에서 일본에게 승리, 최종 3위에 올랐다. 기대했던 우승은 아니었으나 숙적 일본을 상대로 승리했기에 미소 속에 대회를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이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대회 중 일부 선수들의 음주 사실이 밝혀져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긴 것이다. 이들은 대회가 한창 진행되던 중 술자리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늦은 시간까지 술자리가 이어졌다는 발표는 충격을 안겼다. 결국 음주 파문의 주축들은 축구협회로부터 징계까지 받았다.
#대회 개최 시기로 인한 어려움
하계 올림픽과 같은 해에 열리던 아시안컵은 2004년 대회를 마지막으로 개최 시기를 1년 앞당겼다. 다음 대회는 2007년에 열렸고 월드컵 이듬해로 대회 기간이 고정됐다.
아시안컵이 올림픽과 겹치는 일은 없어졌지만 월드컵 폐막과 대회 시기가 가까워지며 한국 대표팀에는 또 다른 부작용이 발생했다. 대표팀은 월드컵 이후 기존 감독과 재계약에 이르는 경우가 없었다. 월드컵 일정이 마무리되면 장기간 팀을 이끌던 감독이 떠나고 새 감독이 선임됐다. 새 감독은 짧은 기간 내 아시안컵이라는 큰 대회를 치러야 했던 것이다. 2007년부터 2019년까지 네 번의 대회 모두 비슷한 상황이었다.
지난 세개 대회에서 사령탑으로 나섰던 조광래, 울리 슈틸리케, 파울루 벤투 감독 모두 월드컵 이후 여름을 전후로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이듬해 연초 아시안컵이 열렸기에 이들이 대회를 준비한 기간은 6개월 남짓이었다. 대표팀에 자신의 색채를 입히기까지 시간이 충분치 않았던 것이다. 특히 슈틸리케, 벤투 감독의 경우 외국인 지도자로서 국내 선수들을 파악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이번 2023 아시안컵에서 대표팀이 우승에 대한 많은 기대를 받는 이유도 이 지점에 있다. 2023년 여름 개최가 예정됐던 이번 대회는 중국이 개최권을 반납하면서 개막 시점이 2024년 1월로 미뤄졌다.
이에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약 10개월에 가까운 준비 기간을 보장 받을 수 있었다. 이 기간 A매치 11경기가 열렸다. 예정대로 중국에서 아시안컵이 열렸다면 클린스만호는 4~5경기 정도만을 치른 채 대회에 임했어야 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부임 초반 친선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해 비판을 받았다. 6경기째에서 첫 승을 거두며 안정적인 경기력을 이어오고 있다. 전임 감독들과 달리 여유로운 준비 속에서 팀을 만들어온 클린스만 감독이 한국 축구에 우승 트로피를 안길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