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우에노 리사, 언니 아사미 누르고 여류기성전 결승행…둘 다 친한파이자 전투적 기풍
우리나라에도 김채영-김다영이라는 친자매 기사가 있긴 하지만 도전권을 놓고 자매기사가 다투는 건 우에노 아사미와 우에노 리사가 처음이라 더 화제를 모았다.
#언니는 전투파 ‘해머소녀’
자매는 일본 바둑계의 전설 중 한 명인 ‘괴물’ 후지사와 히데유키 9단의 아들인 후지사와 가즈나리 8단 문하다. 가즈나리는 현 일본 여자 랭킹 1위 후지사와 리나 6단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딸의 라이벌들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키운 셈이다.
재미있는 점은 가즈나리가 딸인 후지사와 리나는 직접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후지사와 리나는 일본 관서기원 소속 프로기사 홍맑은샘이 세운 홍도장에서 7세 때부터 공부해 프로에 입문했다. 바둑교실을 운영하긴 했어도 친딸을 가르치긴 어렵다고 해서 다른 곳으로 보냈다는 후문이 있다.
언니 우에노 아사미는 2018년 1월 프로 입단 2년 만인 16세 4개월에 여류기성전에서 셰이민 6단을 꺾고, 일본 여자바둑 사상 최연소 타이틀 홀더가 됐다. 당시 붙은 별명이 ‘해머소녀’. 지켜보는 모두가 깜짝 놀랄 정도로 격렬하고 전투적이라고 해서 붙여졌다.
전투적 기풍은 철저히 ‘수읽기’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본인도 기본적인 정석을 잘 모른다고 인정할 정도다. 한 인터뷰에서는 아마추어 고수들도 줄줄 꿰고 있는 ‘눈사태 정석’도 잘 모른다고 할 정도로 정석을 외우는 타입이 아니다. 정석을 모르니 철저히 수읽기로 승부를 가져가는 것이고, 그렇다보니 매번 타협하지 않고 싸울 수밖에 없다. 바둑팬들은 항상 난타전을 펼치는 우에노 아사미의 바둑에 열광하는 것이고.
그렇다고 무작정 싸우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성적도 받쳐주기에 인기가 따른다. 우에노 아사미는 2019년 제28기 용성전 본선에 진출하여 16강에서 다카오 신지 9단, 8강에서 무라카와 다이스케 9단, 4강에선 쉬자위안 8단(당시)을 꺾고 결승까지 진출했다. 이 3명은 모두 일본의 7대기전타이틀을 보유했던 톱클래스 기사들인데, 일본에서 남녀 기사가 모두 참가하는 종합기전에서 여류 기사가 결승에 오른 것 또한 최초여서 당시 엄청난 화제가 됐다(결승에선 이치리키 료 9단에게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우에노 아사미의 활약은 2023년에도 이어져 25세 이하 남녀 기사가 참가하는 일본 신인왕전에서 여자 기사로는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우에노 아사미는 현재 신인왕전·여자입규배·여자명인전·약리전 우승으로 4관왕이다.
#자매의 강력한 라이벌은 스미레
언니보다 다섯 살 아래인 우에노 리사는 지난해 49승 19패의 성적으로 일본 다승랭킹 1위를 차지한 유망주다. 지난해 10월 여류본인방전에서 생애 첫 타이틀에 도전했으나 타이틀 보유자 후지사와 리나에게 2승 3패로 석패한 바 있다.
기풍은 핏줄대로인 듯 호전적이다. 스승인 후지사와 8단에 따르면 “굳이 그렇게까지 공격해야 하나” 싶은 장면에서도 공격을 한다고 한다. 장점이자 단점이라는 이야기다.
도전자결정전은 예상 외로 동생 우에노 리사의 승리로 끝났다. 관록에서 앞서는 언니가 우세하지 않을까라는 것이 예상이었지만 보기 좋게 빗나갔다.
우에노 리사는 승리 후 가진 인터뷰에서 “언니와의 대결이라고 해서 특별한 준비는 없었다. 속기라서 대비책이 필요 없었고 의식하지도 않았다”면서 “다만 대국 일주일 전쯤 언니와 쇼핑을 가서 대국 때 입을 옷을 함께 구입했다”며 웃었다.
우에노 자매는 친한파 기사다. 국제대회 출전이 많기도 하지만 한국 기사들과의 교류전에도 빠지지 않고 참가한다. 지난해 한국 국가대표와의 교류전에 참가했을 때 ‘한중일 여자 기사들의 차이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언니 아사미는 “일본에 비해 한국은 형세판단이 좋은 것 같다. 또 중국은 전투가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고, 동생 리사는 “언니와 같은 생각”이라면서도 “한국바둑의 포석이 인공지능과 가장 가까운 것 같다. 중국바둑에서는 그런 점이 그렇게까지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꽃길만 걸을 것 같은 자매에게도 숙제는 있다. 동생 리사보다 세 살 어린 나카무라 스미레 3단의 존재다. 2023년 13세 11개월 만에 여류기성에 올라 기존 우에노 리사의 기록을 경신한 스미레는 자매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자 넘어야 할 목표다.
마침 스미레가 올 3월부터 활동 무대를 한국으로 옮길 예정이어서 이들은 한국과 일본에서 따로 경쟁을 펼치게 됐다. 우에노 아사미 22세, 우에노 리사 17세, 나카무라 스미레 14세. 이들의 승부는 이제부터가 진짜다.
유경춘 객원기자